교황 방문으로 한국에는 새로이 천주교 바람이 불었다. 그의 행보에서 가장 눈에 띠었던 것은 아무래도 세월호 유가족 방문과 위로였다. 교황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은 비록 작은 크기였지만 그 의미는 시국선언보다 무거웠다. 질병은 의사가 고치는 것이겠지만 때로는 질병보다 더 치명적인 마음의 아픔은 종교가 치유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준 것이 바로 교황의 방문이었다.
그런 차에 듣고도 믿지 못할 말이 전해졌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염수정 추기경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세월호 유족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되며, 유가족들도 일부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한 것이었다. 추기경은 세월호 해법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픔을 해결할 때 누가 그 아픔을 이용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어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빠져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다면서도 그걸 이용할 수 있다며 정의를 이루는 건 하느님"이라고 부언했다.
추기경의 말을 듣는 순간 드는 생각이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말하기는 다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정의는 하느님이 이루지만 그것을 다시 망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참칭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중세의 가톨릭이 딱 그랬지 않은가. 염 추기경의 발언은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던 교황의 발언을 떠올리게 했고, 더욱 비교가 되게 했다.
누군가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추기경이 준 고통보다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유가족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지극히 여당측에 치우친 발언으로 유가족 아니 교황방문으로 정의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던 국민들에게 고통과 배신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준 희망을 추기경은 고통으로 바꿔버렸다.
추기경의 발언이 보도되면서 교황의 방문으로 천주교 붐이 일 것만 같았던 민심에 찬바람이 쌩하고 불었다. 딱히 종교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거나 혹은 냉담자들에게 일요일에 성당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이 교황의 방문이었다면, 염 추기경의 이번 발언은 그런 마음을 싹 돌려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정도로 희망 후에 찾아온 고통과 분노가 크다는 의미다.
도대체 자식들을 잃은 부모가 그 이유를 알고자 하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고자 하는 심정과 요구에서 무엇을 양보할 것이 있다는 것인가. 가수 이승환이 그랬다. 우리 국민은 참 불쌍하다고. 종교마저도 우리 국민을 불쌍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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