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 아래 3개 기자상을 석권한 KBS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검증보도를 중징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마치 문 후보자에 빙의된 듯, KBS 보도를 힐난하기 바빴고 3인 전부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다.

▲ 지난 6월 11일 KBS 뉴스9 보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김성묵)는 27일 KBS <뉴스9> 문창극 총리 후보자 검증보도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KBS는 지난 6월 12일 <뉴스9>에서 문 후보자가 과거 교회 강연 당시 “일본 식민지배는 하느님의 뜻”,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것,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등의 발언을 했다고 단독보도했다.

이날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 3인은 방송사 재승인 시 감점되는 법정제재 ‘관계자 징계’(벌점 4점)를, 야당 추천 심의위원 2인은 ‘문제없음’ 의견을 냈다. 3:2로 결국 ‘관계자 징계 및 경고’ 다수 의견으로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 회부됐다. 아직 전체회의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공직자 후보 검증보도 취지’ 강조한 KBS

KBS 측은 “(강연에서) 기독교 신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역사를 다뤄, 총리 후보자로서의 관점이 담겨 있다고 판단해 보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 공정성에 대한 판단은 관점에 따라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어,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지, 그것이 기능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취재팀은 민주적 의사결정 하에 정상적인 편집회의와 데스킹 과정을 거쳐 보도했다”고 밝혔다.

문창극 보도를 취재·보도한 김귀수 기자는 “(보도에서도) 분명히 강연 의도와 취지를 밝혔다”며 “(문 후보자는) 하나님의 뜻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한 여러 사례를 들고 논리를 전개한다. 일부에서 ‘악마의 편집’이라 지적한 녹취들은 발언 내용을 가장 적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워딩이라고 생각해서 발췌 보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재진은) 의도성을 배제한 채, 순수하게 역사인식과 관련한 문 후보자의 발언을 분석하려고 했고, 핵심 발언을 뽑아 썼다”고 덧붙였다.

“조선 민족이 게으르다” 등의 표현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 총리 후보자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강연에서) ‘게으르다’는 표현을 총 13번 한다. 비숍 여사와 윤치호 언급 3번이 인용이고, 나머지를 자신의 입으로 ‘게으르다’고 했다. ‘이조 500년은 게을렀다’, ‘게으른 DNA’라는 말도 자신의 말이었다”고 반박했다.

▲ 6월 11일 KBS 뉴스9의 문창극 총리 후보자 보도

용태영 보도국 주간은 “문 후보자의 발언은 그게 아닌데 KBS가 잘못 보도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KBS는 문 후보자의) 역사관, 철학,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과연 납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라며 “식민지배나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역사관 자체는 기독교 내에서도 논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곡이 아니라 (문 후보자의) 핵심 발언을 보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논쟁을 창출하고 논란거리를 던지는 것 아닌가. (KBS는) 논란거리를 던졌고 이후 동영상 전체가 공개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문 후보자에 대한) 다시 한 번 검증을 거쳤다고 본다”고 전했다.

반론권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도 소명했다. 김귀수 기자는 당시 공보 담당이었던 현 이석우 총리실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수차례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고, 거절당한 후에는 ‘고위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되는’ 문 후보자 발언과 글을 가지고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을 미리 알려 계속해서 반론을 받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제주 4.3 항쟁 폭동” 등의 주요 발언을 언급했으며, 퇴근하는 문 후보자를 만나 리포트에 문 후보자 녹취를 넣은 점도 강조했다.

“문 후보자는 기독교인으로서 종교 사랑과 나라 사랑을 보여준 것”

여당 추천 함귀용 위원은 KBS 전체 강연 내용을 잘못 요약했다며 훈수를 두거나, 보도의 공정성 및 객관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심의위원으로서의 위치를 잊은 채 ‘전지적 문창극 시점’의 발언을 늘어놓으며 KBS 측을 압박했다.

함귀용 위원은 “만약 ‘이 강연자가 청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100자 이내로 써라’라고 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의 종교 사랑과 나라 사랑을 보여주고, 나라 사랑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말한 것’이라고 요약할 것”이라며 “(KBS는) 이분(문 후보자)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발언만 담았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함귀용 위원은 교회 강연에서는 마지막 기도 내용이 핵심이라며 그 내용을 보면 “(문 후보자가)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의 종교를 사랑하고, 나아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KBS는) 일부만을 잘라 보도함으로써 이 보도만 봐서는 (문 후보자가) 그야말로 참 이상한 사람이 됐다. 방송의 힘이 이렇다는 걸 느꼈다”며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라고 하는 예수님 말씀도 ‘돌로 쳐라’라고만 한다면 의미가 완전히 잘못 전달될 수 있듯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첨언했다.

“방통심의위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이것이 과연 사실성과 불편부당성, 균형성이 있었던 보도였는가 판단해야 한다”던 함귀용 위원은 “한 개인의 인생이 망가뜨려진 보도이고, 방송 내용과 동영상은 너무나 괴리가 있기 때문에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본다”며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다.

고대석 위원은 KBS의 보도 태도를 거듭 문제 삼으며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다. 그는 “공직자에 대한 검증보도는 당연히 해야 되지만 한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KBS 소명에선) ‘역사의식’이란 말이 자꾸 나오는데 우리 민족에게 시련을 줬지만 극복했다는 전체 내용의 한 토막을 꺼내서 그렇게 편집하는 것은 아무리 ‘압축 과정’이라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귀수 기자가 “취재진 판단으로는 문 후보자는 시련을 주신 것도, 극복하게 한 것도 하나님이라고 말했다”고 거듭 해명했지만, 고대석 위원은 “(시련을) 극복했다는 건 왜 안 넣었냐?”, “(방송기자들은) 보도 기술자 아니냐. 풀 텍스트가 있을 때 나라면 저렇게 안 쓴다”, “기사를 이렇게 (왜곡해서) 쓰는 걸 그다지 본 적이 없다. 심각하게 공정성, 객관성을 훼손했다고 본다”고 맞섰다.

김성묵 위원장은 “단재 신채호 대한매일신보 주간 시절 쓴 20세기 신국민회 논설에 ‘한국인 놀고먹는 사람 많다’라고 나와 있다”고 언급하며 KBS의 보도 방식이라면 1970년대 함석헌 선생이나 단재 신채호 선생의 발언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어, “(KBS는) 의견 진술에서 잘못 없다고 얘기했는데, 강연 내용을 따왔어도 전달하는 데 잘못됐다면 저는 잘못이라고 본다”며 “(KBS 보도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를 만들어가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며 관계자 징계 의견을 냈다.

심지어 KBS 측의 입장 표명을 자의적으로 수용해 심의규정을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기도 했다. 김성묵 위원장 KBS 측의 반론권 보장 소명 내용 가운데 ‘보도 전 당사자 반론을 넣기 위해 매우 노력했으나 당일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고 한 점만을 부각해 “KBS도 반론권 보장이 안 됐다고 했으니 9조 2항(반론권 보장 여부)을 넣자”고 말했다. KBS의 문창극 보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 1항(보도 진실성 여부)과 2항, 제14조(객관성)를 위반했다는 것으로 정리돼 전체회의에 회부됐다. 다만,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의혹제기만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해 제20조(명예훼손 금지) 조항은 빠졌다.

반면 야당 추천 위원들은 KBS의 보도가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장낙인 위원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역사관 등 사실을 검증하기 위한 정상적인 활동을 압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인, 특히 총리 후보자 같은 공인은 역사의식이 교회 밖이나 안에서나 동일해야 한다고 본다”고 입을 연 박신서 위원은 “반론 제기 기회가 주어졌을 때 본인 철학을 밝히는 것은 본인의 몫인데 문 후보자는 (반론권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보류했다고 보기 때문에 (KBS 는) 공정성, 중립성 관련 부분을 충분히 소명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KBS가) 언론 본연의 감시견 기능을 한 것을 갖고 심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모순”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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