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가 중소 개별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에 대해 불법적인 재송신을 멈추라며 재송신료 협상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지상파는 2010년 이후 의무전송채널인 KBS 1TV, EBS를 제외한 지상파 3개 채널에 대한 저작권 명목으로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IPTV사업자, 스카이라이프에게 가입자 당 280원(아날로그케이블 제외)을 재송신료를 받고 있다.

KBS는 지난 1일 각 지역 개별SO에게 <KBS 2TV 재송신계약 체결 요청> 공문을 보내 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담당자를 일주일 내로 지정, KBS 협상담당자에게 연락을 달라 요청했다. 협상담당자인 KBS 콘텐츠사업부 관계자는 27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회사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 아무 것도 말씀드릴 수 없다”며 “(협상담당자를 지정했다고 연락한 개별SO가) 몇 곳 있고, 안 온 곳도 있다”고만 말했다.

MBC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총 3차례에 걸쳐 개별SO에 협상요청 공문을 보냈다. MBC는 “언론에 보도된 바와 달리 개별SO의 여건을 고려해 열린 조건하에서 재송신계약 협상을 진행 및 체결하고자 하고 계약시기에 따라 계약조건의 차등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며 “계약협상에 응하지 않고 불법재송신을 계속할 시 부득이하게 법적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압박을 반복했다.

▲ MBC가 8월 중순 개별SO에 보낸 협상요청 공문. 밑줄은 미디어스.

SBS는 아예 지난 4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SBS는 몇몇 개별SO에게 공문을 보내 “현재 지역에서 무단 재송신하고 있는 지역민방 채널에 포함된 당사 프로그램은 당사가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다”며 “귀사는 당사의 동의 없이 당사의 방송프로그램을 이용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재송신의 방법으로 무단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BS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배상하라 촉구했다.

대기업 소유의 유료방송사업자들은 KBS 2TV, MBC, SBS 등 지상파 3개 채널을 재전송하는 대가로 가입자당 월 280원 수준을 받아왔다. 지상파 논리대로라면 6월 말 기준 사실상 ‘지상파 3개 시청료’가 포함된 유료방송요금을 내야 하는 시청자(아날로그케이블가입자 제외)는 총 1820만 명 정도다. 이렇게 되면 지상파는 연간 1834억5600만 원(=1820만 명×280원×3개 채널×12개월)을 얻게 된다.

지상파 입장에서는 아직 개별SO를 접수 못했다. 개별SO는 6월 말 기준 10곳으로 가입자는 총 193만3947명(대수기준)이다. 이중 지상파 시청료를 내야 하는 디지털방송 가입자는 61만3182명이다. 지상파 3사 입장에서는 개별SO 매출 중 61억8087만 원(=61만3181명×280원×3개 채널×12개월)은 ‘미수금’인 셈이다. 개별SO까지 협상에 끌어내면 3사는 각각 최대 20억6천만 원을 더 확보할 수 있다.

개별SO가 지상파에 줘야 할 돈은 평균 6억2천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상파는 물론 ‘개별SO에게는 덜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결합상품 가입비율이 낮고, 디지털전환율(31.7%, 전체 케이블 45.3%)이 낮은 개별SO 입장에서 억 단위의 재송신료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개별SO들은 대부분 일 년에 많아야 2~3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재전송료를 주려면 요금을 올려야 한다.

올해 수백억 원 적자가 예상되는 MBC, 비상경영을 선포한 SBS, 수신료 인상에 실패한 KBS에게는 60억 원도 아쉽다. 3사는 브라질월드컵에 이어 인천아시안게임 ‘특별시청료’를 유료방송사업자에 요구했다. 더구나 방송광고 규제완화에 대한 비판여론이 강하고, 방송산업 주도권이 플랫폼사업자에게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 내부에는 ‘챙길 수 있는 것은 지금 다 챙겨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지상파가 개별SO에게까지 재송신료를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행태는 공영방송 또는 지상파의 공적 책임에 어긋난 행위다. 익명을 요구한 케이블SO 관계자는 “설마 사정이 안 좋은 개별SO에까지 요구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개별SO는 대기업 MSO가 덩치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돈 안 되는 지역’에서 지상파를 재전송하고 있는 만큼 지상파가 오히려 개별SO를 배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도 유료방송사업자의 지상파 재전송 효과는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여러 차례 이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으나 사업자 간 협상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케이블SO 관계자는 “지상파 콘텐츠는 물론 유료방송에 큰 도움이 되지만 케이블이 지상파를 재전송하면서 누리는 효과도 있다. 이걸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것이 근본해법”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없다는 게 사업자들 의견이다. 그러나 수신료가 주요재원인 공영방송 KBS와 공적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MBC, 공공자산 전파를 무료로 사용하는 민영방송 SBS가 개별SO에게 ‘저작권’을 이유로 거액의 비용을 요구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전형적인 사업자의 모습이다. 지상파가 마지노선을 넘어 유료PP, N분의 1이 되는 길을 선택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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