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지: 거리의 반란>은 전편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자 재빨리 제작한 속편입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필두로 저예산 대비 큰 수입을 벌어들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제이슨 블럼이 이 영화를 내버려둘 리 만무했습니다. 마이클 베이까지 제작자로 가세했던 영화였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북미에서는 제작비의 일곱 배 가량을 기록했습니다.
전편의 리뷰에서 아쉽다고 했던 소재와 설정의 잠재력을 <더 퍼지: 거리의 반란>은 한껏 이끌어냈습니다. 도입부부터 권력을 쥔 정부 및 자본의 잠식에 의해 사회가 낳은 불평등과 부조리를 향한 목소리를 드높이면서 시작합니다. 은유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아주 노골적입니다. 일명 '빅 대디'라고 불리는 남자는 성조기가 붙은 모자를 쓰고 군대를 동원한 데다가 무시무시한 개틀링 건을 난사하고, 살인마저 용인하는 날이라고는 해도 고위 공무원은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오며, 누가 봐도 '체 게바라' 코스프레를 한 남자 - 그것도 흑인 - 은 '더 퍼지 데이'가 정부의 농간이라는 것을 설파합니다. 이 외에도 굳이 금융가를 걸으면서 처형당한 증권 브로커를 보여준다거나, 부유층이 더 퍼지 데이를 즐기는 방식 등에 있어 <더 퍼지: 거리의 반란>을 보면서는 정치적 투지가 불타오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더 퍼지>와 비교해서 <더 퍼지: 거리의 반란>이 달라진 건 또 하나 있습니다. 안락한 집을 무대로 했기 때문에 서서히 가해지는 균열이 긴장을 형성했던 전편과 달리, 이번에는 부제 그대로 위험천만한 거리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장르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즉 전편이 캐릭터의 심리를 접목시켜 스릴러로 출발했다면 이번엔 액션영화에 좀 더 가깝습니다. 프랭크 그릴로가 연기한 캐릭터는 <더 퍼지: 거리의 반란>에서 이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아들의 복수를 하는 것이 목표인 그를 중심으로 다른 네 명의 캐릭터가 모이면서 이 영화는 1980년대~1990년대에 유행했던 영웅의 구출담스러운 면모를 띱니다. 자연스레 영화를 즐기는 재미가 커질 수도 있지만 결국 이건 영화를 망치는 데 일조하고 맙니다.
<더 퍼지>가 적정선을 지키지 못하면서 결말에 다다를수록 싱거워졌던 것처럼 <더 퍼지: 거리의 반란> 역시 도통 절제의 미덕을 모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소재와 설정이 가진 잠재력을 발산하길 바랐으나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 문제입니다. 영화가 부자와 정부를 향한 관객의 반감과 반발심을 밑천으로 삼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솔직히 저라고 해서 다를 게 없으니 공감할 수 있었지만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바람에 도리어 몰입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무분별한 선동처럼 보일 지경이라서 주인공 다섯 명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치달으면서 <더 퍼지: 거리의 반란>은 전편처럼 개인의 선택에 달린 윤리적 화두를 던집니다. 물론 이것이 제 몫을 할 수 있을 턱은 없습니다. 내내 캐릭터(윤리)와 이야기(정치) 중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난잡하게 내달린 나머지 거추장스러운 강박증에 불과하게 보입니다. 설상가상 이 대목의 처리는 굉장히 어설프고 무성의합니다.
★★☆
덧 1) '이런 영화(?)'에는 입바른 소리를 입바르게만 하는 뻔한 캐릭터는 불필요하지 않나요? 제임스 드모나코는 연출에 조금만 세련미를 더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 2) 프랭크 그릴로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 이어서 또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호감도가 상승하네요.
덧 3) 여러모로 우리나라의 한창 시끄러운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영화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