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폐지된 프로그램 <영웅호걸>에는 멤버들이 비보잉을 배우고 퍼포먼스를 펼쳐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당시 멤버들에게 비보잉을 가르치던 비보이들은 자신들의 고충에 대해 털어놓았었다.

비보이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하기가 불투명하다는 생계에 대한 고민, 삼십 대 이후에도 과연 비보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영웅호걸>이 3년 전 프로그램이니 당시 방송에 모습을 보였던 비보이 가운데에는 나이가 들어, 혹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한 비보이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같은 고민은 우리나라 비보이들만의 고민은 아닌 듯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스텝업: 올인>의 댄서들에겐 전작의 화려함은 뒤로 한 채 생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다. 나이키 광고로 5만 달러를 벌면 무엇하리오. 나이키 광고까지 찍었지만 이들 댄서에게 돌아온 건 안정적으로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 밀린 집세 아니던가. 댄서로 먹고 살기에는 비단 우리나라만 고달픈 건 아닌 듯하다.

이 지점에서 <스텝업: 올인> 댄서들의 딜레마를 읽을 수 있다. 이들이 좋아하는 건 춤이다. 다수의 자기계발서는 백이면 백,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력투구하라고 권하고 있다. <스텝업: 올인>의 댄서들은 자기계발서가 권면하는 좋아하는 일에 전력투구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헌신한 보상이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 생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궁핍에 시달리는 딜레마 말이다. 자기계발서의 권유를 따랐을 때의 보상이 아닌, 거꾸로 자기계발서가 하라는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의 어려움을 <스텝업: 올인>의 초반 시퀀스는 건드리고 있었다.

댄스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니 이들은 어떤 길을 갈까. 주인공 숀은 댄스홀의 바닥 청소를 해대고, 숀의 팀은 공중분해된다. <스텝 업 2: 더 스트리트>의 히로인 앤디는 모델의 옷을 책임지는 스태프로 전락한다. 귀여운 무스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엔지니어로 생계를 건사한다. 댄서들 모두 춤으로는 먹고 사는 게 해결되지 않으니 좋아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해야만 한다.

<스텝업: 올인>은 댄서들의 휘황찬란한 퍼포먼스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시각적인 쾌감 가운데에는 좋아하는 일이 반드시 생계를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는, 좋아하는 일과 현실의 간극을 차가우리만치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기계발서가 흔히 언급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권면이 <스텝업: 올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도리어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별개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 흔한 자기계발서가 주문하는 대로 살다가는 현실의 차가운 장벽 앞에 굴복당하리라는 걸 건드리기에 말이다. 이상이냐 현실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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