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청소년의 ‘꼰대’, 한국사회의 ‘가부장’을 자처했다. 여성가족부는 24일 성인콘텐츠 인증 정책을 결정했다. 여가부는 애초 ‘로그인할 때마다’ 성인 인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연 1회 인증’으로 돌아섰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이제 성인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터넷 콘텐츠 사업자는 연 1회 이상 이용자의 나이와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이러한 본인확인제도에 대해 관련 인터넷 업계에서는 성인 이용자의 불편과 이에 따른 회원 이탈 우려, 인증비용 부담을 호소했다”며 “지난 18일 인터넷상에서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완전히 금지되고, 인증기술 발달에 따라 타인의 정보 및 계정을 도용할 가능성이 낮아진 점, 성인 이용자의 불편과 콘텐츠 산업의 위축 우려 등을 고려”해 제도 개선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 2월 이후 사업자는 이용자가 회원가입 때나 최초로 성인콘텐츠를 이용할 때 주민번호를 활용한 성인인증을 해왔다. 그런데 인터넷 상 주민번호 수집이 완전 금지되면서 이 같은 인증이 불가능해졌고, 여성가족부는 대안으로 ‘로그인할 때마다 인증’ 방식을 검토해 왔다. 보수시민단체들도 청소년 보호를 명목으로 이 방식을 주장했으나 여가부는 시행 하루 전 입장을 번복했다.

보수지와 업계지의 평가는 정반대다. 국내 콘텐츠사업자들이 구글과 비교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규제완화를 주장해 온 전자신문은 25일자 사설에서 여가부의 결정은 인터넷상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금지되고, 타인의 정보를 도용할 우려가 낮아진 현실을 인정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전자신문은 김희정 장관이 시행 하루 전 산업계와 비밀회동을 갖은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하나마나 된 ‘19금’ 성인인증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성가족부가 그 동안 사업자들의 불만제기에도 기존 입장을 지켜온 여성가족부가 간담회 직후 갑자기 원칙을 버리고 사업자 편에 섰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온라인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한 ‘19금(禁) 콘텐츠’”에 대한 인증 규제완화로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보호 원칙이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지는 콘텐츠사업자의 시각이고, 보수지는 보수적 가부장을 대변했다. 문제는 두 개의 입장에는 본인확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여성가족부의 방침은 이미 위헌결정이 난 인터넷실명제를 유지하겠다는 내용이다. ‘검열제도보호법’으로 비판받아 온 청소년보호법, 정부 주도의 콘텐츠 등급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다. 보수도 업계도 국가의 강제를 용인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이미 위헌결정이 난 인터넷실명제를 성인인증과 청소년보호라는 다른 명목으로 연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도 콘텐츠를 연령에 따라 분류하기도 하지만 본인 확인을 하지는 않는 곳이 많다”며 “정부가 가부장의 역할을 하면서 청소년의 권리와 가정과 사업자의 자율적인 규제 가능성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국가가 본인확인을 강제하는 것도 문제고, 프라이버시 침해도 크다”며 “국가가 콘텐츠에 대한 접근방식을 고민하지 않고 단일하고 일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청소년과 가족, 그리고 업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율규제를 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직접 가부장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국가가 곧 부모’라는 전근대적 인식이다. 아직 멀었다.

▲ 전자신문 2014년 8월25일자 사설
▲ 중앙일보 2014년 8월25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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