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주커버그가 빌 게이츠에게 케네디 일가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닥터드레가 에미넴을 지목해 전 세계의 유명인에게 퍼지고 있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국내에도 상륙했다. 도전을 받아들인 사람은 무려 세 명의 수행자를 지목할 수 있어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와 연예 기사 헤드라인은 해당 연예인의 이름과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합산하느라 숨 가쁘다.
이광수, 유재석, 유연석, 최민식, 이영표, 추성훈, 엑소의 수호, 클라라, 성유리, 김제동 등.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국내에 보편화 된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써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다하는 유명인은 대부분 이 챌린지를 받아들였다. 배우 주원은 과감하게 KBS 드라마 국장을 지목했고 문보현 KBS 드라마국장 또한 기쁘게 이를 받아들였다.
사람이 여럿이니 챌린지 방식도 가지가지다. 초기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지목 받은 개그맨 김준호는 정장을 입고 경건하게 양동이를 집어 들었다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동료들의 물 폭탄 세례에 얼이 빠졌다. 마치 수행을 쌓는 도인처럼 경건하게 앉아 조목조목 챌린지의 취지를 되짚어준 뒤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에이핑크의 정은지와 개그맨 이국주의 단아한 모습은 인상적인 반전이었다.
▲ 한국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 협회 홈페이지 화면. http://www.kalsa.org/

이에 행사 자체에 의문을 품는 연예인 또한 있었다. 배우 이켠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을 강한 표현으로 꾸짖었다. 이켠은 유행처럼 번지는 아이스버킷 동영상에 마음은 이해하지만 취지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지적을 했었다.
얼음물 양동이를 뒤집어쓰는 행위 자체가 ‘차가운 얼음물이 닿을 때 근육이 수축되는 고통 (루게릭 증상)을 묘사한 건데 다들 재미 삼아 즐기는 것 같다.’고 마치 놀이 같은 이 행위에 경건과 엄숙을 덧붙여줄 것을 권고했다.
분명 현재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기존의 도네이션 문화에 비해 낯설 만큼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부 절차는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것이었으니까. 슬프고 경건하고 엄숙한. 그에 비해 이 얼음물 샤워 도전은 눈물어린 호소는 간데없고 유머와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루게릭 병을 알리는 취지의 퍼포먼스를 자신의 이미지 개선, 혹은 홍보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유명인 또한 눈에 띈다. 챌린지를 수행한 사람이 세 명을 지목할 수 있다는 챌린지의 규칙이 연예인 친목 놀이의 일환처럼 보여 진다는 지적 또한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루게릭 환자와 그 가족들은 도리어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질타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맞서 부디 계속해서 이 챌린지를 이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 아버지는 제가 3살 때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루게릭 병)로 돌아가셨습니다.’로 포문을 연 어느 네티즌은 간곡하게 이 챌린지의 불꽃이 꺼지지 않기를 부탁하고 기원했다.
제 아버지는 제가 3살 때 ALS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36세이셨고 저의 어머니는 33세이셨습니다. 그게 30년 전의 일이었고 지금 제가 그때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ALS를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건 당신이 ALS에 걸린다면 일어날 일들 입니다. 근육이 서서히 부분 부분 멈추기 시작합니다. 제 아버지의 경우는 먼저 손 한쪽을 못 쓰게 되셨고 그 다음 팔, 그 다음 다른 쪽 팔을 못 쓰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걸을 수가 없게 되셨고, 음식을 못 삼키고, 숨을 못 쉬고,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중략) 지난 몇 주 동안 일어난 일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웠습니다. 그 많은 동영상들을 보면서 저는 엉엉 울었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 모든 게 완전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릴 웨일과 테일러 스위프트, 오프라, 저스틴 팀버레이크, 위어드 알과 빌게이츠가 ALS에 대해서 말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중략) 이것이 멍청한 선전용 놀이라고 해도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그저 유행에 따라서 관심을 끌기위해 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할렘쉐이크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 남은 일생동안 ALS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 아이스버켓 질병있잖아."라고 해야 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제발 계속 얼음물을 여러분들의 머리위로 부어주세요. 제발 계속해서 기부해주세요. 제발 계속해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얼음물 샤워는 루게릭 증상을 표현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애초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보편화된 것은 미국의 골프 채널 ‘Morning Drive’에서 출연진 모두가 각기 원하는 단체를 지목해 얼음물을 뒤집어쓰면서부터다. 이후 11년간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Anthony를 위해 얼음물 샤워 챌린지에 도전한 아내와 딸의 영상이 또 다른 루게릭 환자에게 전달되면서 구체적인 챌린지 취지와 퍼포먼스의 형태가 정의된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이켠이 지적한 ‘루게릭 환자의 증상과 닮은 얼음물 샤워를 놀이처럼 접근하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희화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지적이다. 현재 이켠 또한 자신의 글을 지우고 얼음물 샤워 챌린지에 동참함으로서 쏟아지는 네티즌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나는 처음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것을 목격했을 때 이 콘텐츠를 만든 사람은 천재가 아닐까 라고 감탄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는 21세기 현대인이 열광하는 것, 그들을 주목 시킬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다. 친분 과시, 유명인의 동참, 힙스터의 놀이 문화, 군중 심리, 나는 좀 특별한 사람이라는 과시욕 이 모든 것을 SNS를 통해 전파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분명 이 챌린지를 엄숙하게 접근하는 사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소 루게릭병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이 남들 다 하는 SNS 놀이의 일환으로 마치 게임 같은 이 퍼포먼스에 끼어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하리? 라는 생각이 든다. 희귀병 환자들의 바람은 잊히지 않는 것이다. 루게릭이라는 병을 입에 담지도 못하는 조심성은 그들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감성 놀이에 미쳐있는 힙스터이든 관심을 구하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이든 연예인의 친분 과시든지 간에 설령 그런 사람이라도 이 챌린지를 놀이처럼 수행하게 하여 ALS를 상기시키는 것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 왜 엄숙하지 않느냐고 취지를 망각했냐고 힐난하는 것이야말로 도리어 이 천재적인 취지에 얼음물을 끼얹는 민폐가 아닐까.
재능 기부라는 말이 있다. 시간을 내어 기꺼이 머리 위로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자신들의 본인의 영향력을 도네이션해준 연예인들. 그럼에도 해외 유명인사의 사례와 비교하며 셀러브리티들의 허세 놀이다, 미국 유행을 뒤쫓는 것 같아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비난을 듣는 것을 보니 국내 연예인들이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인생의 낭비라는 SNS, 그리고 군중심리와 과시욕, 셀러브리티를 쫓고 싶은 동경심, 유행에 민감한 현대인들. 삐딱하게 보려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요소요소를 자극해서 만들어낸 퍼포먼스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현대인을 가장 수월하게 이끌 수 있는 방법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무엇인가. 그 비뚤어진 과시욕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으로 고안해낸 이 챌린지의 창시자가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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