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아들은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해맑은 얼굴로 ‘잘 갔다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떠났다. 사고 소식을 듣고 팽목항에 갔을 때, 그는 아들이 죽었다는 것보다 더 많은 아픔들을 목격했다. 모두들 아이들이 살아있기만을 바랐고, 무사히 구조해주기만을 원했다. 거짓말인 것을 알았지만 애써 믿고 기다려 온 시간도 어느덧 넉 달 째. 자신이 겪는 아픔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지 않아, 아이를 보내고도 표현 한 번 제대로 못 해 봤다는 어머니는 기자회견 내내 울먹였다.

22일 오후 7시,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주최하는 <유민아빠 살려내라 특별법 제정하라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가족들은 40일 간의 긴 단식에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살려내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천명한 ‘특별법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7반 고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는 “대통령이 약속하신 그 많은 말씀과 많은 눈물은 저희 유가족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 하지만 지금은 실망을 가득 안고 있다”며 “저희는 유민아빠까지 잃고 싶지 않다. 애들 영정사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권미화 씨는 “유민아빠가 단식 포기하고 저희와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동참하게 대통령님이 약속을 지켜주시면 고맙겠다”며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너무 힘듭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유가족들을 더 아프게, 더 힘들게 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정말 진실하게 국민을 감싸 안고 이 나라가 다시 거듭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 학생 아버지 최경덕 씨가 22일 오후 7시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가족대책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편에 있는 단원고 2학년 7반 오영석 학생 어머니 권미화 씨는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팩트TV 생중계 화면 캡처)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 학생 아버지 최경덕 씨는 마치 ‘왜 이렇게 유가족들이 나서느냐’는 보수언론의 질타에 답하듯 “대통령이 특별법 약속을 지켜 유가족들이 유가족답게 조용히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저도 유민아빠도, 여기 계신 엄마아빠들은 유가족처럼 살고 싶다. 아이들 떠나보낸 저희 집사람을 위로하면서, 그리고 저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조용히 유가족처럼 살고 싶다”고 말문을 연 최경덕 씨는 “하지만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아 한이 되게 만들어 버린 사람들 때문에 저희는 조용히 유가족처럼 살 수 없다”고 밝혔다.

최경덕 씨는 “왜 저희를 이렇게 극한으로 내모는지 알고 싶다. 유민아빠가 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자식 잃은 아빠가 왜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라며 “저희는 위로받고 싶고 조용히 살고 싶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던) 대통령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약속했는데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나”라며 “자식 잃은 아빠 유민아빠를 사지로 몰면 안 된다. 저희는 힘없는 아빠 엄마들이다. 제발 아이를 추모할 수 있게, 나도 좀 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라고 전했다.

▲ 권미화 씨, 최경덕 씨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사진=팩트TV 생중계 화면 캡처)

기자회견 이후,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과 권미화 씨, 최경덕 씨는 오후 7시 20분께 청와대에 유가족들의 뜻이 담긴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했다. 다른 유가족들 역시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경찰병력에 막혔다.

유가족들은 “가족들을 왜 막는지 설명을 해 주고 막아야 할 것 아닌가”, “못 가는 이유를 (경찰에서) 누가 와서 얘기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항의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사망자 수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망언이 알려진 지난 5월처럼 유가족들이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밤샘 농성을 벌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박근혜 대통령님께 촉구합니다.

단식 40일째 병원에 실려 간 유민 아빠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모를 리가 없으실 것입니다. 온 국민이 살려야 한다고 걱정했던 유민 아빠가 매일같이 찾아갔던 곳이 청와대니까요.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시군요. 대통령의 침묵이 유민 아빠를 죽어가게 한 이유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유민 아빠 주치의가 그랬습니다. 유민 아빠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요. 단식을 같이 시작했던 우리 가족들이 이미 한참 전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고, 이제 유민 아빠 한 사람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유민 아빠한테 같이 살아서 싸우자고 가족들이 한참을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유민 아빠는 여전히 특별법 제정 소식을 들어야 미음이라도 먹겠다고 합니다. 가족들 마음이 미어터집니다. 유민 아빠를 살려야 하는데, 유민 아빠가 단식을 그만두지 못하는 마음을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 가족 모두 4월 16일 이후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울함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으니 밥 한 술 마음 편하게 넘겨보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왜 국회와 정부는 가족들의 마음을 이토록 모르는지, 억울합니다. 왜 우리는 참사 희생자의 부모가 되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호소를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까? 참사의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던 대통령님은 귀를 막고 가만히 있다가 교황님 앞에서 한 번 웃으시면 그만인데, 우리는 왜 아직까지 길에서 자고 밥을 굶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배신감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구조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팽목항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도대체 누가 최선을 다해 구조를 했습니까. 그 말을 믿고 잠시라도 안도했던 우리가,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을 청와대로 부른 대통령님은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발을 빼려는 것 말고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새누리당이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가족의 뜻을 반영한 특별법 제정에 머뭇거리는 것만 우리 눈에 보입니다. 전원이 구조될 것처럼 떠들던 거짓말에 속은 배신감, 철저히 진상을 규명할 것처럼 호언하던 거짓말에 속은 배신감, 우리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참사 이후 지금까지 목소리 작고 힘없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를 부축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단식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 역시 우리와 함께 하는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님은 죽어가는 우리를 한 번도 살렸던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끝내 우리를 죽어가게 두시려는가 봅니다.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 앞에 진실과 안전을 약속하기 전에는 이를 악물고 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도 유민 아빠를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님만이 유민 아빠를 살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침묵으로 우리를 죽이지 마십시오. 귀를 열고 우리 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어떤 것인지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말씀해주십시오. 그것만이 유민 아빠를 살리는 방법입니다. 대통령님의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2014. 8. 22.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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