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TV는 HDTV보다 최소 4배에서 최대 16배의 화질을 구현한다. 지금 추세에 봐서 UHD(Ultra High Definition)은 HD 이후 차세대 방송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Full HDTV의 경우 3m 거리에서 75인치 미만 화면에서는 해상도가 더 높아져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UHDTV는 보통 100인치 이상이라 분명 HDTV보다 깨끗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거실TV의 시청거리가 보통 2~3m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은 화면의 UHDTV는 Full HDTV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가 지난 4월 내놓은 보급형 UHDTV는 189~379만 원이지만 크기가 40인치에서 55인치라 제대로 된 UHD방송을 즐길 수는 없다. 더구나 천만 원을 호가하는 돈도 없고, 100인치 이상 TV를 들여놓을 거실도 없는 게 보통 시청자다. UHD방송은 먼 나라 이야기다.

전 세계를 통틀어 UHD 콘텐츠는 수십 분밖에 안 된다. 이런데도 케이블SO도 위성방송도 지상파도 UHD방송을 한다며 달려든다. 3D는 실패했지만 UHD방송은 차세대 기술표준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UHD방송을 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문제는 지상파다. 지상파가 UHD방송을 하려면 돈 말고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주파수다. 문제의 700㎒ 대역이다.

700㎒ 대역을 두고 지상파 방송사와 이동통신사가 서로 “내게 달라”며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와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의 대리전이 됐다.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과 디지털 전환을 위해 쓰인 방송용 주파수(698~806㎒)는 디지털 전환 완료 이후 ‘용도 없는 대역’이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700㎒ 대역 중 국가재난방송용으로 20㎒을 쓰기로 했다.

지상파와 이동통신사, 방통위와 미래부는 남은 88㎒을 두고 최근 설전을 벌였다.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달 ‘최시중 방통위’가 모바일광개토플랜을 기획하며 통신에 40㎒ 대역을 주기로 한 것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뒤, 싸움이 시작됐다. 지상파는 UHD방송과 난시청 해소를 위해 이중 54~66㎒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동통신사는 모바일광개토플랜대로 가자는 입장이다.

지상파는 KBS 1~2TV, MBC, SBS, EBS 등 지상파 5개 채널을 UHD로 내보내려면 채널당 6㎒씩 (전파 간섭 고려) 총 60㎒ 대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지역민방과 지역MBC 등을 포함해 9개 채널 80㎒ 대역을 주장했다. 반면 이동통신사는 모바일 트래픽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를 커버할 대역이 필요하고, 세계적으로 700㎒ 대역이 해외로밍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든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단순한 문제다. 이동통신 할당론과 지상파방송 유보론이 부딪힌다. 주파수를 이동통신사에게 ‘경매’로 넘기면 수천억 원의 돈을 걷을 수 있고, 수조 원의 경제효과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지상파방송 유보론은 지상파방송의 난시청 해소와 직접 수신율 제고를 위해 주파수를 할당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결국 방송과 통신,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 22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세미나. 이 세미나는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했다. (사진=한국방송협회)

고민수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22일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700㎒, 공공대역 설정의 필요성> 세미나에서 “700㎒ 대역은 유휴대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고 교수는 “이 대역은 지상파가 디지털 전환 이후 난시청 해소를 위해 마땅히 사용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주파수 분배표 상 용도로 보아)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이렇다. 현재 700㎒ 대역은 방송, 이동통신, 고정통신용으로 돼 있다. 우선순위는 없다. 고민수 교수는 “용도를 정한 (주파수 분배표) 제 5란을 보면 TV방송용이라고 표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난시청을 해소하려면 직접 수신율을 높일 수 있는 중계소가 필요한데 정부가 이를 위한 무선국을 충분히 허가하지 않았고, 주파수 또한 지정하지 않아 700㎒가 유휴대역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이동통신사는 ‘모바일 트래픽이 증가하고, 해외로밍이 700㎒ 대역으로 통일될 것’이라고 이 대역을 지상파에 주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상운 남서울대 멀티미디어학과 교수는 이통사에 할당을 하더라도 이통사가 달라는 대역에는 ‘무선마이크’ 사용 대역이 묶여 있기 때문에 실제 활용가능한 시기는 2021년 이후고, 700㎒이 해외로밍 대역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반박했다.

시청자의 90% 이상이 케이블과 IPTV, 위성방송으로 지상파방송을 시청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상파방송사는 직접수신율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상파 직접수신율은 7% 수준이다. 전파법에 따르면 방송사업을 위한 주파수 관리는 방통위 소관이지만 방통위는 미래부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이게 논란의 배경이다. 정보통신부 출신 미래부 관료들과 이동통신사들이 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 남서울대 이상운 교수 발제 자료에서 갈무리.

경제신문과 IT 전문지는 주로 이동통신사 편을 들고 있다. 디지털타임스는 20일 기사 <방송 ‘공짜 주파수’ 사용… 국가자원낭비 공감대>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저대역 황금 주파수를 사실상 공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비롯해 UHD 방송 대중화가 세계적으로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700㎒ 주파수 방송 할당은 국가자원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동통신사와 일부 언론이 강조하는 ‘경제효과’는 본질을 흐린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정미정 연구원은 “언론이 사업자들의 대립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고, 주파수 할당에 따른 경제효과를 비교하는데 통신서비스 소비자, 방송서비스 시청자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그동안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이 통신사업자 편향이었다고 지적했다.

700㎒ 문제는 지상파방송사와 이동통신사의 싸움이 아니다. 결국 무료보편 플랫폼으로서 지상파를 유지하느냐 마느냐 문제다. 물론 지상파사업자는 ‘유료방송사업자’인양 움직이고 있고, 지상파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UHD방송도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만약 이 주파수 대역을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면 무료보편 플랫폼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편이 백번 낫다.

지상파 플랫폼은 사실상 붕괴 상태다. 그러나 지상파는 DMB와 함께 마지막 남은 무료보편 플랫폼이다. 지상파 플랫폼이 없어지면 지상파는 정말 유료방송이 되는 속도는 빨라진다. 그럴수록 시청자만 피해를 본다. 정미정 연구원은 “지상파가 제 역할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의 지점은 다양하겠지만 설령 못한다고 평가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시스템 자체를 없애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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