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사실상 '마비' 상태다. 유족들을 설득할 방도도 없고, 그렇다고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할 용기도 없다. 그런데 질타 받는 ‘무능한 제1야당’이 나자빠지자 이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정부 여당’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재합의 이후, 여론은 정부 여당의 편으로 눈에 띄게 기울고 있다. 대다수의 언론 역시 유족의 반대를 부각하며, 유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여론만 정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거나 묵살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입장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일을 해줬어야 했다. 그들이 나서서 유족들의 요구를 관리하거나 묵살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고, 정부 여당을 지극히 싫어하는 30% 정도의 국민들의 비판이 새정치연합을 향해 ‘무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청와대나 여당이 직접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선거 때가 아니면 유권자 만나기를 무서워하는 이들이다. 40일 단식한 국민 한 사람이 무서워 경비원을 내세워 막고 대통령은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현재 합의된 수준의 세월호 특별법도 진상규명을 충실히 할 것이란 약속은 야당이 아니라 정부 여당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항의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한다.
그들은 다시 이 상황의 화살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하길 기대해야 한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처한 상황이 외통수다. 그래서 미적미적 일어나지를 않고 있다. 그러자 자기 잇속 차리기에 ‘유능하다’고 소문난 이 정부 여당이 멋쩍은 상황이 됐다. 야당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유족들을 직접 만나서 설득할 용기는 없다. 원래 그런 용기와 야성이 없는 세력이다. 평범한 사람 만나는 걸 귀족이 자기 옷에 똥물 튀기는 것 마냥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 22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22일자 신문들은 ‘야당이 마비된’ 상황에서 한 템포 쉬어가는 분위기다. ‘무능야당’을 열심히 씹어 돌리던 이들이 이제 이 정국에서 할 말은 별로 없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두 당파를 선도하는 두 신문만이 돋보인다. 22일자 <조선일보>는 1면, 3면, 4면 기사에 이 사안을 다뤘다. 1면 기사 제목이 무려 <세월호法, 이젠 결단 내려라>다. 같은 날 <한겨레>도 공교롭게도 1면, 3면, 4면 기사에 이 사안을 다뤘다. <한겨레>의 1면 기사 제목은 무려 <“박 대통령이 응답하라”>이다.
재미있게도 야당이 마비되니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 대통령이 유족을 다시 만나 “이 특별법으로도 사안을 진상 규명해달라. 나를 믿어달라”고 말하면 이 상황은 종료될 수 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사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은 아니다. 그런 부분에 관해 근본적인 결손이 있는 듯하다. 아마도 청와대나 여당은 그걸 알고 있으니 빙빙 둘러가는 것일 게다. 그런데 빙빙 둘러가려 했다면 야당을 저렇게 나자빠지게 내버려두면 안 됐다.
▲ 22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다른 언론들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지면 편집 비중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비해 현격하게 적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마비된 상황에서 할 말이 많지 않은 것이다. 오직 <조선일보>와 <한겨레>만이 ‘결단’을 요구했다. 그런데 <한겨레>가 요구한 결단은 내용이 뚜렷하다. 대통령이 나서란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요구한 결단은 실체가 안 보인다. 기사를 봐도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없다.
<조선일보>는 대체 누구에게 결단을 내리란 것인가. 내심을 짚자면 물론 야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일어나서 유족의 요구를 묵살하고 새누리당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면 그들만이 욕을 먹고 이 사태는 종료된다.
▲ 22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여당은 할 수가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있기 때문에 야당이 저항한다면 일이 안 된다. 결국 야당이 마비되면 대통령이 설득에 나서는 게 제일 빠르지만 대통령이 불능인 걸 그들이 더 잘 알고 대통령에게 뭔가를 요구할 배짱도 없다. 진보언론이 뭐가 안 되면 ‘무대’(김무성 대표)의 결단을 요구했듯, 이제 보수언론은 박영선을 향해 “일어나세요, 용사님!”이라고 외쳐야 할 판이다. 그런데 박영선 의원은 이제 그런 말이 씨도 안 먹힐 정도로 지도력에 손상을 받았다.
결국, <조선일보>는 할 말이 없다. 3면 기사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들어가는 건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핏대를 올렸지만 논점이 없다. 기사 내용 대부분이 기소권에 관한 얘기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이라도 줬다면 유족들도 그 특별법에 합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싱싱하지도 않은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
▲ 22일자 한겨레 3면 기사
새정치민주연합이 마비되면, 집권여당이 직접 유족들과 같은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관리하면 된다. 그들의 ‘약속’은 훨씬 힘이 있을 것이다. 정치는 그렇게 일을 풀어나가는 행위다. 그런데 그 부분에 관해 근본적인 불능이 있으니, 야당이 마되비니 역설적으로 할 일이 없다. 그들 말대로 대의제 정치가 근본적 불능을 드러낸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을 향해 이 상황을 어찌 수습하려고 하느냐고 묻고 싶다. 대체로 이런 경우 그들이 알고 실천하는 문제해결의 방식은 항의하는 이들의 현장에 경찰을 투입해서 두들겨패고 끌어내는 것 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여론이 지금은 우호적이라지만 이 사안에 대해 그런 행위까지 용인해줄까. 그래서 장담하건데, 이 상태로 며칠 지나면 어쩌면 <조선일보>조차 <한겨레>를 따라 ‘대통령’을 호출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