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단원고 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40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김영오씨의 건강상태는 매우 악화되어 이 시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20일 오후 청와대로 향하다 청와대 앞 분수광장 횡단보도에서 경찰 병력에 의해 막힌 이후 기력을 더 상했다고 한다. 김씨는 2시간을 대치하다 민원실에서 대통령에게 21일 오후 3시 면담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작성해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농성 39일째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전날 청와대 앞에서 경찰과 충돌로 인해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바쁜 대통령’, 임명장 수여와 현장 순시?
김씨는 면담 신청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하고 가난한 나를 방한 중에 대통령보다도 더 많이 만나주셨다"며 "대통령이 한 번은 만나줄 거라 기대하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민 대변인은 김영오 씨에게 그런 의사를 전달했느냐는 질문에는 "따로 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해보면, 세월호 특별법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설 일이지 박근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게 된다. 이쯤 되면 대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생각하는 ‘국가’는 무엇이고 ‘통치’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유족들과 만났을 때 "언제든 다시 만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유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다른 국정 일정이 있어서 바빠서 그렇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21일의 일정을 검색해보면 박 대통령은 오전에 청와대에서 신임 주일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오후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순시했다. 이어서 수도방위사령부 지휘소를 방문하고 격려했다. 청와대는 "군 통수권자가 수방사 지휘부를 방문한 것은 지난 1991년 이후 약 23년 만"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질적인 업무를 위한 일정들이 아니다. 임명장 수여와 현장 순시와 방문 격려를 이날 반드시 대통령이 해야만 했을까. 청와대에서 흡사 유족을 피해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 업무(?)가 되어 버렸으니 조금 있으면 또 해외순방 일정이 잡힐 것도 같다.
▲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진행 중인 21일 오후 수도방위사령부 내 합동작전본부를 방문,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피해자’ 비판하며 ‘가해자’ 편드나?
새누리당은 "유가족의 수사권, 조사권 요구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이라며 더 이상의 재협상이 없음을 명백하게 했다. 새누리당이 전가의 보도로 들이대는 원칙은 형사법상 자력구제 금지 원칙, 즉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수사·기소할 수 없다는 원칙이라고 한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문명국가라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재단하고 심판하고 기소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 발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에 따르면 진상조사위 구성은 여야 추천 각 5명, 대법원과 대한변협 추천 4명, 유가족 추천 3명으로 총 17인이 진상조사, 재발방지 대책, 보상 및 배상 등의 3개 분과의 일을 맡게 된다. 이리 보면 유족의 역할은 추천으로 보더라도 3/17에 지나지 않으며 이중 ‘가해자’를 맞닥트릴 일도 진상조사의 차원 뿐이다. '유족이 추천한 진상조사위원'의 활동이 '피해자가 가해자를 재단'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는 이상함을 넘어서 황당하다. 이들은 나름의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며 설령 진상조사의 차원에서 '가해자'를 수사하더라도 검찰의 수사지휘권과 법원의 영장발부 아래에 놓인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킨 선장 등 선원, 당시 구조작업에 나선 해경 등의 직접적인 잘못은 검찰 수사에서도 충분히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좀 더 심층적인 진상규명은 20년 이상 된 선박을 운항할 수 있게 한 정부, 불법 증·개축을 묵인한 정부의 선급(船級) 위임기관인 한국선급, 부실한 검사와 점검으로 일관한 해수부 위임기관인 한국해운조, 안개에도 출항허가를 내주고 소극적 구조로 일관한 해양경찰,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이런저런 지시사항을 내려보낸 국정원 등의 일상 업무를 뒤지면서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상을 실질적으로 조사하려면 적어도 수사권은 필요하다는 것이 유족들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가해자-피해자’ 도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 도식은 새누리당의 표현을 빌리자면 ‘단순교통사고’에서나 성립할 뿐이다. 그리고 굳이 이 상황에서 유족들을 ‘피해자’로 부른다면 정부기관들은 ‘가해자’ 내지는 '피의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논리를 역으로 차용하면 그들이 내세운 대안은 '가해자를 가해자가 임명한 이들이 조사·수사·기소하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연합뉴스)
진상조사의 정확한 의미
진상조사는 법적 치죄의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백번양보해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의 일종’으로 본다 하더라도, 이 사건엔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어서는 이면의 문맥들이 있다. 선박을 부실하게 만들고 구조를 세월호 참사는 윤리적이거나 법리적인 차원에서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 의해서만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개인들의 법적으로도 문제없고 윤리적으로도 용인될만한 소소한 행동들이 모여 구조적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국민정서를 반영하여 선원들을, 유병언 일가를, 구조에 소극적이었던 몇몇 해경들을 기소하고 벌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일부 기소는 무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법적으로도 문제없고 윤리적으로도 용인될만한’ 행위들이 어디서 발생했고 그 행위들의 누적이 어떻게 세월호 참사라는 참극을 구성해냈는지는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일은 진상조사위가 해야 할 일이고, 그 진조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최소한 수사권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수사권이 없는 조사기관이 얼마나 무력했는지는 과거의 의문사진상규명위나 과거사위 등의 활동이 보여준 바 있다. 과거의 참사에서 유족들은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았다는 이들이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피해자의 가해자 조사’가 아닌 ‘국가권력에 대한 민간통제’
정말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것만이 문제’라면 유족이 추천하지 않고 유족이 신뢰하는 다른 이들이 추천권을 가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수사권은 물론 기소권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래봤자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조사대상이 정부나 경찰일 경우에도 그리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해선 안 된다'며 당사자를 거부한 이들은, 아마도 시민사회 운동세력이 나서면 '불순한 외부세력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당사자도 안 되고 외부세력도 안 된다면 대체 뭘 어찌하란 말일까.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야만’이 아니다. ‘민간의 감시와 통제를 결단코 거부하는 국가권력과 관료집단’일 뿐이다. 지난 몇 달 간 그들이 ‘관피아’니 ‘과거 정권의 적폐’니 하는 것들이 그런 식으로 형성되고 강화된 것이다.
▲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세월호'에 멈춰선 한국정치>란 제목의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를 보고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영화에서 설국열차의 엔진은 신성하고 영원하다고 선전된다. 그것은 계속 달려야 하며 멈출 수가 없다. 그래야 외부의 맹렬한 추위로부터 내부 구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입장에선 세월호 참사도 천안함처럼 북한 어뢰에 피격되서 발생한 것이라고 우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부 단체들이 싱크홀을 북한이 판 땅굴이라고 상상하듯이 말이다. 북한 위협이나, 무한경쟁의 국제정세에서 우리는 뒤를 안 보고 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 18일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에서 동공(洞空. 빈 공간)이 5개 추가로 발견돼 현장 관계자가 설명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석촌지하차도에서 발견된 2곳의 동공을 조사하던 중 차도 종점부 램프구간에서 폭 5.5m, 깊이 3.4m, 연장 5.5m 동공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 지역에서 확인된 동공의 수는 모두 7개로 늘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엔진', 멈춰세워 점검할 수 있다
<‘세월호'에 멈춰선 한국정치>란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왜 이런 정도 사건이 났는데, 잠깐이라도 멈추면 안 되는가? 왜 엔진을 세우면 안 될까? 영화에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위협이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강추위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영화에서 그 ‘신성하고 영원한 엔진’은 멸종된 부품을 보완하기 위해 아이들의 노동을 보충하면서 지탱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풍경도 그러하다. 아이들의 모습이 바닥으로 가려져야 하듯, 그들에겐 세월호 참사도 온 국민에게 중계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선정적인 언론환경은 온 국민을 우울증에 빠뜨릴 만큼 참사를 생중계했다. 그리고 이젠 ‘중계에서 다 봤는데 다른 진상이 어디 있나’라고 말한다. 바닥이 뜯기고 참혹한 민낯이 공개되자 그들은 ‘특별법’=‘보상’, ‘책임’=‘유병언’, ‘진상’=‘교통사고’이란 새로운 ‘바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바닥을 뜯어보자는 사람들에게 세월호만 있는 것도 아니니 계속 달려야 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위로를 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살던 대로 계속 살자'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렇기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참사를 맞이했단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엔진은, 멈출 수 있다. 대통령이 유족을 피해 숨바꼭질이나 다니고 집권여당이 말장난이나 하는 세상에서, 못 그럴 것도 없다.
▲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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