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데릭슨

여러분이 공포영화를 싫어하시더라도 <인보카머스>를 보셔야 할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의 감독으로 내정된 스콧 데릭슨이 연출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간만에 만나는 공포영화에다가 주연인 에릭 바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콧 데릭슨이 이 영화를 어떻게 연출하고 있을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실은 그가 <닥터 스트레인지>의 감독으로 발표됐을 때 원작과 캐릭터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케빈 파이기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초자연적인 면을 더할 영화라고 했습니다. 이에 부합하듯이 스콧 데릭슨은 지금까지 <헬레이저 5>를 시작으로 <지구가 멈추는 날>을 제외하면 일관되게 공포영화에 전념했습니다. 특히 초자연현상을 다룬 오컬트 무비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더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래서 새삼스레 <인보카머스>를 꼭 봐야 할 필요까진 없었지만, 이번엔 유심히 그의 연출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제 관람의도야 어쨌든 스콧 데릭슨의 <인보카머스>는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공포영화였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각본이 일찌감치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실화고 어떤 것이 각색인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것을 극복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했다는 것이 눈에 역력하게 띄고 있는 데 반해서 애석하게도 그리 성공적이질 않습니다. 더욱이 각본과 스콧 데릭슨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것도 <인보카머스>에는 꽤 큰 결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로 가는 길목에서

<인보카머스>는 이라크 전쟁으로 영화의 문을 엽니다. 이윽고 참전했던 전직 군인들이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거나 연루되고, 그들의 내면에는 악마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것만 봐도 영화 전체가 전쟁이 현실에서 어떤 부작용과 폐해를 낳고 있는 지에서 영감을 얻고 출발한 은유를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인보카머스>는 공포영화와 더불어 스릴러로서도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이 영화를 보면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담았던 데이빗 핀처의 <세븐>과 엑소시즘 영화의 결합을 쉽게 연상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허투루 소비하고 있습니다. 스콧 데릭슨은 스스로 각색에 참여했는데도 인물의 심리 묘사에 더 공을 들이지 않고 공포의 생성과 전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국내 개봉제목인 <인보카머스>는 극 중에서 라틴어로 '관문'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원제를 번역하자면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이 자체가 결국 엑소시즘에 관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일종의 작은 스포일러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대체 흔하디흔한 엑소시즘 영화를 왜 또 만드는 거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마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당장 스콧 데릭슨의 전작인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도 실존인물이 주인공입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인보카머스>는 종교와 구원에 대한 아주 현실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이며 원작을 쓴 장본인인 서치 형사는 각종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걸 현장에서 보며 신의 존재 따위는 부정합니다. 우리가 흔히 가지는 의문인 "신이란 존재는 이 꼬락서니를 보면서 즐기는 변태인가?" 따위의 회의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응징을 가장한 분노의 폭발로 인해 죄책감을 간직하고 있는 자이기도 합니다. 서치 형사를 도와서 초자연적인 범죄를 해결하는 신부는 으레 볼 수 있음직한 성스러운 자가 아닌 대신, 소위 말하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참담하게 허우적대다가 간신히 종교에 의지해서 인간 구실을 하게 됐습니다. 더욱이 신부의 과거는 영적인 타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으로 와 닿는 것이라서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인보카머스>의 이런 캐릭터 구성은 분명 흥미롭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나오는 종교의 가치와 의미에도 한번쯤 귀기울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콧 데릭슨은 이것에 큰 비중을 두지도 않고 무성의하게 다루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서치 형사와 신부가 공통적으로 가진 내면적 갈등과 해소가 영화를 이끌고가야 하는데 그것이 누락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인보카머스>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공포가 심리를 집어삼키면서 본연의 잠재력을 자멸시켰습니다. 자칫 종교적 색체가 짙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려했던 것도 같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렸습니다.

서사의 표현과 전개에서 미숙하고 군더더기를 잘라내지 못한 반면에 스콧 데릭슨의 공포를 생성하고 전달하는 능력만큼은 여전히 탁월합니다. 마지막 엑소시즘 장면을 비롯해서 촬영과 조명, 미술과 더불어 섬뜩한 분장까지 더해지면서 <인보카머스>는 공포영화에 필요한 시각적인 요소만은 성공적으로 완성했습니다. 비단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공포에 있어서만큼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의외의 액션도 제법 만족스러웠으니 <닥터 스트레인지>는 좀 더 나은 연출로 임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과 기대는 남겼습니다. 일단은 이걸로 됐습니다.


덧 1) 에릭 바나는 메이저 영화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활동은 미미하네요.

덧 2) 시종일관 도어즈의 노래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콧 데릭슨의 이런 센스는 맘에 들었습니다. 짐 모리슨의 묘지에 두 번을 방문했을 만큼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Break On Through, Riders On The Storm, People Are Strange, Soul Kitchen>이 악마와 서치 형사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본문에서 말했다시피 워낙 서사를 등한시한 경향이 있어서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더욱이 'The Doors'라는 그룹의 이름이 앨더스 헉슬리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온 것이고, 이것은 <인보카머스>의 주제와 명백하게 연결고리를 가지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반대로 도어즈가 몽환적이고 퇴페적인 음악을 선보이면서 당대에 어떤 그룹으로 비춰졌었는지, 짐 모리슨이 악마주의자라는 의심을 받고 갖은 기행을 일삼았던 전력 등을 고려하면 관객에게 악마의 추종자가 선사하는 음악 따위로 비춰질 여지가 상당합니다. 심지어 짐 모리슨은 마약과용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서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도어즈는 히피 문화의 선봉장에다가 반전을 노래했던 그룹이라는 것에서도 <인보카머스>와 통하지만 역시 그대로 버려졌습니다. 팬으로서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아마 스콧 데릭슨이나 음악감독이 도어즈의 광적인 팬이거나 고도의 안티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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