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세월호특별법 처리 합의에 유가족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재협상을 촉구하면서 유가족들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불거지고 있다. 지면을 가지고 있는 언론으로 보면 20일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포문을 열었고 같은 날 석간 <문화일보>가 좀 더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내일은 <조선일보>가 유가족 책임론을 정면으로 제기할 상황이다.

여야가 양보해 합의했는데, 유가족이 과도하다는 주장이야말로 과도하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여야 합의안을 접하고는 여야가 각기 양보한 안마저도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는 물음을 SNS 공간 등을 통해 던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과도한 것을 요구하고 있어 야당이 이를 감당하느라 쩔쩔매고 있다는 식의 서술도 간간히 눈에 띈다. 일부 네티즌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인 것처럼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정청래, 우원식, 배재정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6일째 단식농성중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여야가 합의한 안을 볼 때 새누리당이 양보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상설특검법에 규정된 특검후보추천위 7인 중 여당이 추천할 수 있는 위원 2인에 대해 사전에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추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야당 측 추천 2인에 유가족 측에 우호적인 대한변호사협회 추천 1인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특검후보추천위에서 유가족 측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이완구 원내대표의 주장이다. 이완구 원내대표가 이 내용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설명하는 동안 김진태 의원과 김태흠 의원 등이 ‘굴종’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이완구 원내대표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는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할만한 일이다.

핵심에서 비껴난 새누리당의 양보, 새누리당 뜻대로 될 수밖에 없는 특검

문제는 그 이들의 ‘양보’가 이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을 전혀 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야당과 유가족의 사전동의를 받더라도 최소한 중도적인 인사 2인을 추천하려고 할 것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합의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취지의 답변을 했다. 새누리당이 이 중도적인 인사 중 최소 1명만 구워삶을 수 있다면 특검후보추천위에서 다수를 점할 수 있다. 모양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특검후보추천위가 유가족 측에 가까운 인사 1명, 비교적 정부여당에 가까운 인사 1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제출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 중 정부여당에 가까운 인사를 특별검사로 낙점하는 것으로 이 시나리오는 완성된다.

혹여 이러한 절차를 통해 야당 성향의 특별검사가 탄생한다 해도 의구심은 남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 추천 당시 특검 후보는 2명 모두 야당 성향이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9일 김무성 대표를 만나 야당이 여당 몫으로 특검 후보를 추천하게 해달라는 입장을 제시한 것도 이 내곡동 사저 특검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형식으로 특검을 진행하더라도 진상을 명확히 밝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내곡동 사저 특검은 위와 같은 결과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사실상 야당이 특검을 추천하더라도 싸움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근거다.

수사권 막기 위해 '고조선 8조법'까지 들먹였던 새누리당

유족들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애초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고 기소권 문제는 특검으로 푸는 것이었다. 진상조사위원 중 1인에 특별사법경찰의 지위를 부여하면 이것이 가능하다는 게 새정치민주연합 측 주장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러한 제안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가해자를 수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완구 원내대표의 입에선 “문명국가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왔고 새누리당 의원총회 자리에서는 ‘고조선 8조법’ 얘기까지 나왔다는 후문이다.

▲ 지난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실을 압수수색하는 국정원 직원들. 상자에 국정원 마크가 선명하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게 과연 그렇게까지 거부감을 나타낼 일인지 의문이다. 특별사법경찰권을 수사기관 외에 부여하는 것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철도 안전 및 치안을 담당하는 철도특별사법경찰이나 식약처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산림청의 산림특별사법경찰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이러한 예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역시 사법경찰관의 권한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형사소송법’ 197조와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과 '대한민국의 근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특별사법경찰관도 당연히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압수수색 등의 절차를 위해서는 검찰이 영장을 청구해 법원이 이를 발부하는 형태를 피해갈 수 없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굳이 찾으려면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오히려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내비쳐온 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다. 이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모두 보장되는 세월호특별법을 주장하면서도 기소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진 새정치민주연합 측과 긴밀하게 소통해왔다. 양당 원내대표가 전격적으로 세월호특별법 처리에 합의한 지난 7일,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재차 촉구하면서도 “특검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면 특검의 중립성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라도 도출해보라”고 발언했다.

다시 여야 원내대표가 재합의한 19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일 오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형태의 진상조사위 구성을 주장하면서도 특검후보추천위의 여당 측 위원을 야당에게 양보하거나 진상조사위가 추천하는 방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0일 오전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다수의 시사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여당인 새누리당과 신뢰를 쌓는 과정을 거친다면 충분히 대안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22일 오전 열리는 국무회의에 참석하며 이성호 안전행정부 2차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족이 정파적? 새누리당 믿지 못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

오히려 그간 유가족들의 신뢰를 무너뜨려온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의 주요 인사들은 세월호 참사를 ‘조류독감’이나 ‘교통사고’ 등에 비유하거나 유가족들을 향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를 구성할 당시 ‘여야가 요구하는 모든 증인은 간사 협의를 거쳐 반드시 채택한다’는 내용의 국정조사계획서에 합의해놓고도 ‘간사 협의’ 부분에서 어깃장을 놓으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주요 증인 채택을 사실상 사보타주 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정치인 출신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집권여당의 무책임한 태도에 그들을 믿지 못하는 입장이 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박근혜 대통령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정치적 입장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님을 표명하며 국회의 대립구도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복해서 보여왔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스마트폰 메신저를 이용해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유통시켰다는 의혹을 받는가 하면 교묘한 수법으로 세월호특별법의 무력화를 시도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은 7일 사실상 독단적인 결정으로 당내외를 뒤흔드는 사고를 쳐놓고도 마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고압적 태도로 일관했다.

유가족들을 정쟁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여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이제라도 뒤늦게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발언한 것을 최소한의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비극적이다. 프로답지 못한 정치에 맞장구나 치는 우리의 언론 현실은 그야말로 절망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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