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가 트랜드였던 2014년 상반기 안방극장에서 유독 케세라세라 커플, 에릭과 정유미를 기다렸던 건 생각지도 못하게 치정극의 남녀주인공을 잘 소화해냈던 두 사람과 두 사람의 연기에서 발견한 자연스러움이었다.

예상대로 2014년에 재회한 에릭-정유미 커플의 연애의 발견은 놀라우리만치 리얼한 연애 스토리를 담아냈다. 이미 사랑을 해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연인 사이의 관계 형성과 드라마의 수위를 넘어선 생생한 표현력은 로맨스에 목마른 시청자의 갈증을 채워주었다. 이미 전작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친근한 감성과 입체적인 캐릭터로 주목을 받은바 있는 연애의 발견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로맨스의 달인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리얼하기 짝이 없는 연애 이야기와 달리 그 밖의 소재를 향한 디테일은 현격히 완성도가 떨어진 것이라 실망을 주었다. 연애의 발견은 예민하고 가냘픈 동물인 토끼를 소품으로 등장시켜 잘못된 상식으로 동물 학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긍정의 아이콘인 한여름(정유미 분)이 구토 현장에서 새끼 토끼를 발견해 안아든다. 여자의 옛 남자 강태하(에릭 분)은 더럽다고 진저리를 치고, 옛 연인의 냉랭한 성격이 불만이었던 여름은 싫다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새끼 토끼를 품에 안긴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을 새끼 토끼를 향한 포용력으로 구분하려는 것이 이 드라마에 토끼가 소품으로 등장한 목적이겠지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새끼 토끼의 쓰임새는 거의 소모품을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유미는 여리고 예민한 새끼 토끼를 쉴 새도 없이 주물럭거리며 손때를 태웠다. 거부하는 에릭에게 수시로 토끼를 떠넘기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기저기로 내동댕이쳐지는 새끼 토끼의 안위가 무척이나 걱정 되는 장면이었다.

토끼가 질색인 남주인공은 급기야 테이블 위로 토끼를 내동댕이치기까지 한다. 토끼는 호기심이 많으나 초식 동물의 특성상 겁이 많고 극도의 예민함을 가진 생물이다.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할 어린 토끼가 받았을 두려움이 절로 연상되어 드라마 속 연인의 관계 진전에는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토끼가 더럽다고 질색 팔색을 하는 강태하의 난리에 술에 잔뜩 취한 한여름은 목욕을 시켜줄 테니 데리고 있으라고 제안한다. 여자의 한손에 몸을 제압당한 채 강제로 물줄기를 맞으며 두려운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토끼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결국, 발버둥 치던 토끼가 빠져 나오려고 하자 한여름은 고함을 지르며 높은 곳에서 토끼를 내동댕이친다.

토끼는 알아서 그루밍(몸 단장)을 하는 동물이다. 늘 혀로 몸을 닦는 토끼는 항상 깨끗한 몸을 갖고 있어 배설물을 제외하면 냄새도 나지 않아 목욕을 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토끼가 몸단장을 하지 않아 더러워진 채라면 그것은 몸이 아파 스스로 그루밍을 하지 못할 만큼 허약한 상태라는 증거다. 목욕은커녕 즉시 병원으로 향해야 하는 긴급 상황인 셈이다.

토끼를 물에 젖게 하는 것은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이며 심하게는 감기와 같은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도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것이 최선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토끼와 목욕은 상극인 것이다. 심지어 드라마 속에 출연한 토끼는 젖을 뗀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새끼 토끼였다.

토끼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입을 모아 말하지만, 사실 토끼는 반려 동물로 인간과 함께하기에 그리 적합한 생물이 아니다. 토끼는 주인이라는 개념이 없고 훈련이 되지도 않는다. 예민하고 연약해서 스트레스를 줄곧 달고 산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이토록 많은 토끼들이 키워지고 심지어 그 수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공원 곳곳에 버려져있는 까닭은, 기가 막히게도 SF 판타지에 가까운 토끼 소재의 일본 만화에서 비롯되었다. 원 제목은 센타로의 일기지만 우리에겐 ‘당근 있어요’라는 해적판 제목이 더 익숙한 이 만화는 작은 토끼와 만화가 주인이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다룬다.

강아지보다 더 친숙하고 똘똘하며 주인과 교감을 나누는 각별히 작은 토끼의 모습은 한국에 애완 토끼 붐을 일으키며 존재하지도 않는 ‘미니 토끼’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만화 속에 등장하는 손바닥 크기의 성체 토끼는 만화적 상상력이 불러낸 허구의 존재다. 지하철 길바닥에 미니 토끼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작은 토끼들은 어미젖을 채 떼지도 않은 새끼 토끼들이다.

그저 만화의 내용만을 생각해 미니 토끼라는 이름으로 토끼를 키워본 사람들은 만화 캐릭터만큼 토끼가 마냥 귀엽지도 똑똑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다 큰 몸집은 중형 강아지 수준이다. 토끼에 대한 교육이나 사전 준비 없이 그저 한순간의 충동으로 토끼를 키운 사람들이 무참히 내버리고 간 결과물이 현재 도시의 공원 곳곳을 채운 고아 토끼들의 존재 이유다.

만화책의 영향력이 이정도인데 전국 방방 곳곳에 전파를 흩뿌리는 공중파 드라마는 또 어떠하겠는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토끼는 목욕을 시켜도 되는 동물’이라고 인식 된다면 그렇게 희생당할 토끼의 수는 과연 몇 마리가 될까.

방송이 나가고 이에 분개한 시청자의 반응은 예상보다 거셌다. 해명의 필요성을 느낀 KBS 드라마국 관계자는 이것은 이미 한 달 전 촬영분이고 해당 장면은 충분한 안전 조치를 취한 채 촬영 되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현재 토끼는 건강한 상태로 제작진 중 한 명에게 키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제작진 또한 토끼가 물에 젖어서는 안 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서 주의를 기울였고 2회에서는 강태하가 토끼를 병원으로 데려가 주의를 듣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변명 또한 더했다. 그리고 분명 2회에서는 해당 장면이 방영 되었으나 그 사실을 알고도 토끼 목욕을 강행한 제작진의 태도에 더욱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해당 장면은 토끼라는 따뜻하고 포근한 매개체를 통해 상반된 두 사람의 상성과 연인을 대하는 태도, 헤어진 이유를 돌이켜보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촬영되었을 것이다. 그저 귀엽다는 이유로 냉큼 토끼를 집어 들어 사전 지식도 없이 목욕을 강행하고 본인은 키우지도 않으면서 그 책임을 싫다는 사람에게 떠넘기는. 한여름의 무방비한 절대 긍정과 그에 희생당했을 강태하의 곤욕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새끼 토끼가 희생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방송으로 나오는 장면은 그게 촬영의 전부가 아니다. 하나의 장면을 찍기 위해 제작진은 수십 차례에서 많게는 수백 차례의 몇 시간가량을 찍고 또 찍고를 되풀이 한다.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토끼를 데리고 원하는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도대체 얼마만큼을 혹사 시켰을까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군다나 토끼에게 물을 끼얹는 장면을 어떻게 안전하게 찍을 수 있단 말인가. 물에 젖은 토끼가 CG가 아닌 이상 안전 조치라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충격적인 동물 학대와 석연치 않은 관계자의 해명에 분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시에 분개해주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안심하기도 했다. 절망 속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이다.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로 익숙하지 않은 토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작은 미물이지만 당하는 고통에 진심으로 동정하며 시정 요구를 하는 사람들의 반응.

제작진 또한 이를 유난으로 물리지 않고 진심어린 사과를 통해 존중의 의사를 밝혔다. 연애의 발견 제작진은 공식 사과문을 통해 “어떤 이유에서든 어린 토끼를 물로 씻기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젖게 만든 것은 제작진의 무지와 부주의의 결과임을 통감합니다.”라고 변명이 아닌 사과를 했다. 아래는 연애의 발견 제작진의 공식 사과문 전문이다.

지난 1회 방송 중 길에서 주워온 토끼를 씻기는 장면과 관련하여 많은 시청자분들로부터 동물의 취급에 대한 지적과 우려가 있었습니다. 토끼는 <연애의 발견>에서 1회성 소품이 아닌 극중 인물들을 잇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또한 아끼고 보호되어야 할 소중한 생명체임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어린 토끼를 물로 씻기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젖게 만든 것은 제작진의 무지와 부주의의 결과임을 통감합니다.

제작진은 해당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토끼의 케어에 대한 그릇된 정보와 지식을 줄 수 있다는 점, 어린 생명을 다루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시청자분들께 불편함을 드리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향후 동물과 관련된 제작과 표현에 더욱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다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생명 존중이 뒷받침되지 않은 ‘불가피한 이유’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차후 그 어떤 영상물에서도 고통 받는 동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관계자가 잘 키우고 있다는 새끼 토끼의 안위가 부디 사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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