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애초 해운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이 언론에 얼굴을 내비친데 이어 ‘철피아’ 비리로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이 등장했고,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에 대한 입법로비 등 의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계륜, 김재윤 의원이 또 화제가 된 데 이어 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출판기념회를 통해 돈을 받은 혐의의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언론에 등장했다. 4선 중진인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은 철도 납품 비리와 관련해 아예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이 이렇게 ‘달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세월호 정국 이후 정권이 일종의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참사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존재로 ‘관피아’를 지목하며 이를 척결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이후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선거에서 사실상 여당이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내자 세월호 국면에 대한 출구전략으로서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의 입법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이 12일 밤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면전환이나 지지층 결집, 국정운영동력 확보를 위해 정권이 검찰의 ‘칼’을 활용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과거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으로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속된 것도 이러한 예로 볼 수 있는 사례다. 이명박 정부 ‘박연차 게이트’ 수사 중 벌어진 비극도 정권의 입장에서는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양승조 의원 등 12명 및 전직 의원 1명이 대한치과의사협회로부터 ‘쪼개기 후원금’을 받았다는 혐의도 보도되고 있는 것에서는 2010년 강기정 당시 민주당 의원 등이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건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청목회 사건은 청와대 대포폰 문제 등으로 불거진 민간인 불법 사찰 재수사 여론 등을 무마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산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여당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비주류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당권을 장악한데다 최근 주요 당직 인선에서 김무성 대표와 가까운 이들이 대거 요직에 진출하는 등의 곤란한 상황이 벌어져 이에 대한 대응에 나선 것 아니겠냐는 얘기다. 여당 내 ‘친김세력’이 조직 장악에 나선 상황에서 대다수의 의원들이 자유롭지 못한 출판기념회 등의 문제를 건드려 일종의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는 게 이런 해석의 주요 내용이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연합뉴스)

김무성 대표를 둘러싼 의혹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등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지난 새누리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모 대학 총장이 김무성 대표에게 로비를 시도해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될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학에 김무성 대표의 딸이 교수로 임용돼있다는 사실도 드러나 논란은 더욱 심화됐다. 김무성 대표의 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문제다. 이런 문제들은 ‘교피아’ 문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로서는 ‘사정 정국’에 대해 아무래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됐다.

정권의 기획에 따라 검찰이 주도면밀하게 움직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식의 이러한 해석들은 일견 타당한 면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청와대가 검찰의 칼을 어느 수준까지 섬세하게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는 남는다. 칼이 너무 예리하거나 너무 무딘 경우에는 여당의 주요 정치인을 비롯해 청와대까지 모두가 상처를 입는 결과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다소 경쟁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우려를 더하게 한다. 지난해 4월 전통적으로 이런류의 사건을 담당하던 대검 중수부가 해체됐다. 과거 중수부가 맡던 역할은 서울중앙지검 특수 1, 2, 3, 4부가 맡게 됐다. 이번 정국은 사실상 중수부 해체 이후 첫 정치인 수사로 볼 수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조현룡 의원 등의 ‘철피아’ 관련 비리를, 특수2부는 신계륜, 신학용 의원 등 ‘교피아’ 관련 비리를, 특수3부와 특수4부는 각각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국가보조금 유용 혐의와 이동통신설비 사업 등에서의 민관유착 비리 등을 수사하고 있다.

앞서의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의 해운비리와 관련해서는 인천지금 해운비리특별수사팀이 담당하고 있고 양승조 의원 등의 대한치과의사협회 쪼개기 후원금 관련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담당하고 있다. 검찰 내부의 이런 저런 관계들을 감안하면 다들 수사에 상당히 집중해야 할 입장인 셈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해 중수부를 해체한 직후 “성과 위주의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드러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를 지향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과도한 검찰의 횡포를 경계한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정권과 보조를 맞춰 정치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벌이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수부 해체 이후 검찰 조직의 각개약진을 경계한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 김진태 검찰총장. (연합뉴스)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검찰을 더 초조하게 만드는 요소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이후 검찰 조직의 혼란을 수습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맡은 탓인지 이성한 경찰청장이 경질되는 와중에도 직을 보전한 바 있다. 하지만 최재경 당시 인천지검장이 유병언 전 회장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하는 등 검찰 조직을 향한 여론 역시 상당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이 이번 기회를 빌어 조직의 위신을 세우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더욱 큰 문제는 최근 불거진 김수창 제주지검장의 ‘음란행위’ 혐의다. 일부 언론은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떡값 검사’, ‘성추문 검사’, ‘혼외자 총장’에 ‘음란 검사장’까지 등장했다며 검찰 조직 전체의 위신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결국 검찰로서는 어떻게든 이 모든 굴욕을 덮을만한 ‘한 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처지가 결국 정권 입장에서 ‘양날의 검’이 되는 것은 아닌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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