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성품이나 개인 윤리, 신심은 잘 받아들이고 선전하지만, 교황의 사회개혁과 교회개혁 프로그램은 철저히 외면하는 행태가 교회 안에서 벌어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미 보수 세력에서 그런 움직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김근수 저 <교황과 나>의 한 구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한국 사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이 예측은 교회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관통하게 되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현지시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종교와 정치의 차이를 떠나 사람의 잘못 때문에 사람이 죽은 일에 대한 추모 행동의 정치적 당파성을 따져 묻는 현실은 참혹하다.
교황은 이에 대해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소개했다. 교황은 이 질문에 대해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노란 색 세월호 리본을 착용한 채 미사 등 각종 행사에 나섰다.
세월호 리본을 착용하는 것은 진상조사위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는 형태의 세월호 특별법에 찬성하는 일과는 범주가 다르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교황에게 가서 ‘중립’을 말했다. 교황은 그런 의미의 중립은 지킬 수 없다고 답했다.
교황이 떠난 다음날인 19일 신문도 ‘교황 일색’이다. 신문사별로 몇 면씩 ‘교황 특집’을 했을 뿐더러, 칼럼니스트들도 앞 다투어 해당 주제로 칼럼을 기고했다.
▲ 19일자 조선일보 8면 기사
그러나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교황의 메시지를 휴머니즘에 국한시키는 것을 넘어 경제효과를 계산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9일자 8면 기사에서 교황 방문의 경제효과를 상세하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경제도 '비바 파파(Viva Papa·교황 만세)'… "교황 特需, 5000억원 효과">란 제목의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100시간의 방한 기간 동안 한국 경제의 구석구석에 온기(溫氣)를 불어넣었다. 새 경제팀의 경제 활성화 정책과 교황 방한이 맞물려 내수(內需) 회복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방한의 경제효과를 본 여러 주체들의 목소리를 전한 후 “전문가들은 교황 방한의 경제적 영향을 극대화하려면 후속 조치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김경숙 한국관광학회장은 ‘충남 당진 솔뫼성지나 서산의 해미성지 등 교황이 찾은 충청권 천주교 성지(聖地)를 전 세계 천주교 신자를 포함해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대표 문화 자원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교황 방문지를 중심으로 '힐링 순례길'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까지 했다.
<동아일보> 역시 <프란치스코 밥상-순례길 생길듯>란 제목의 5면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교황이 방한 기간에 방문한 장소와 맛본 음식 등으로 인한 경제적인 파급 효과가 커지고 있다. 다만 관련 업체와 기관들은 소박함을 강조하며 물질주의를 경계하는 교황의 뜻을 받들어 적극적인 마케팅은 자제하고 있다”라고 썼다.
또 <동아일보> 기사는 “교황의 동선을 관광상품화하는 움직임도 있다. 충남도는 교황이 다녀간 당진시 솔뫼성지와 서산시 해미읍성 등의 88.1km 구간을 순례길로 만들 계획이다. 이른바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로 키우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충남도는 민간 여행사와 함께 주요 지역을 연계한 상품을 당일, 1박 2일, 2박 3일 등으로 개발해 다음 달 25일부터 내놓을 계획이다. 충남도는 전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의 여행사들도 초청해 국제적인 명소로 키우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산시도 교황이 이번에 식사한 육쪽마늘이 들어간 한우등심구이 등의 식단을 ‘교황밥상’으로 만들어 상품화할 계획이다”라며 경제효과를 이끌어 내려는 이들의 노력을 소개했다.
<중앙일보>는 이미 교황이 방한하던 14일, <돈이 도네요 … 고마워요, 프란치스코>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여 SNS 등에서 질타를 당한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엄연히 존재하는 움직임을 기사에 소개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빈곤 문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 정신을 설파하고 교회가 더 가난해질 것을 요구한 교황에 대해 경제신문도 아니라 중앙일간지가 경제효과를 계산하고 나선 현실은,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옛 조상들의 격언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기적의 신화를 이룩한 한국은, 교황이 보여준 공감의 신비마저 '죽어가던 내수경제를 벌떡 일으킨 이적'으로 칭송할 태세다.
종교적 ‘힐링’조차 금세 경제적으로 계산하는 보수언론의 습속은 한국 사회가 교황의 가르침을 따르기에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그리하여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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