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는 사실상 남자 취향의 드라마는 아니다. 특히나 이번 월요일부터 시작된 KBS의 ‘연애의 발견’처럼 노골적인 연애 지향의 드라마는 제목부터 왠지 기피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취향이 본래 아니었던 것처럼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 이유는 정유미. ‘연애의 발견’ 첫 회는 정유미로 시작해서 정유미로 끝났으며, 공효진 이후로 가장 강력한 러블리에 심장을 저격당하고 말았다. 정유미가 이 드라마를 통해서 정블리로 불리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케이블 티비에서 호평을 받았던 ‘로맨스가 필요해’로 호흡을 맞췄던 정현정 작가와의 두 번째 작업이 주는 익숙함 때문인지 정유미는 한여름이라는 캐릭터 속에서 훨훨 날았다. 모든 여배우가 꿈꾸는 러블리의 실현은 정유미에게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보였다. 그런 정유미의 허구를 속이는 감쪽같은 연기력 덕에 사실 있을 법도 하지만 그 현실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헤어진 남자와의 하룻밤이라는 설정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드리고 말았다.

한여름(정유미)은 드라마 작가인 엄마의 독특한 교육으로 인해 어릴 적부터 매우 독립적인 외형적 성격으로 무장되었다. 게다가 드라마상에서나 가능한 러블리한 여주인공의 특성을 모두 부여받았다. 야무지고 솔직하고, 명랑하고 긍정적이다. 또한 연애에 있어서는 매우 능동적인 여자이다. 현재 성형외과 의사와 2년째 연애를 하고 있으나 자신이 벌어놓은 돈이 없기 때문에 결혼보다는 연애만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본심은 이 남자를 그 이유로 인해 잃을까 전전긍긍이다.

바로 그 점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었다. 그 때문에 한여름의 애인 남하진은 엄마의 간청으로 선을 볼 수밖에 없었고, 그 소식을 듣고 선을 보는 현장에 잠입했다가 하필이면 오래 전에 헤어진 강태하(에릭)과 기구하게 재회하게 됐다. 그 장면에 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와 선을 보는 애인 남하진에게 화는 나지만 그럼에도 헤어질 마음도 없는 한여름은 애먼 강태하에게 퍼부어댄다. 그 바람에 휴대폰이 바뀌게 됐고 헤어진 전 애인 강태하와의 사고는 시작되었다.

결국 이런저런 일이 휘몰아치면서 하루가 지났고, 한여름은 대학시절부터 단골이었던 주점에서 혼자 술을 마신 것은 더 치명적인 복선이었고, 그럼에도 바뀐 휴대폰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현대인의 휴대폰 중독이 거든 대형사고가 시작되었다. 술에 취한 한여름은 강태하를 불러냈고, 강태하가 도착할 즈음 한여름은 길거리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나 예쁜 여자가 길거리에 술에 취해 잠든 모습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 개연성의 문제를 정유미는 러블리로 돌파해냈다. 그렇게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구토를 하다가 갑자기 작고 귀여운 토끼를 발견하는 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결되는데, 그때만 해도 이 상황에서 왜 토끼가 등장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이 토끼는 지금까지 이어진 우연들을 운명을 뒤바뀌게 할 결정적 매개체였다.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서 잠들 수는 있어도 아무데서나 생리작용을 해결할 수 없는 한여름은 결국 강태하의 집까지 가게 됐다. 그리고는 그냥 나왔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길에서 주은 토끼를 강태하에게 기르라고 강요하면서 대신 목욕을 시켜놓고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토끼를 목욕시키다가 손 안의 토끼가 뛰쳐나가고 그 바람에 샤워기를 놓쳐 두 사람이 흠뻑 젖었다. 그런 한여름을 수건으로 닦아주던 강태하는 문득 오래전 일들이 떠올랐고 그것은 한여름에게도 동시에 일어난 회상작용이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다음날 아침 한 침대에 놓인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대형사고다. 그러나 낯설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첫사랑과의 하룻밤의 묘사도 놓치지 않았고, 그것은 현재의 애인을 두고 외도를 저지른 한여름을 위한 친절한 변호였다. 그런 한여름에게 현재의 남친 남하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하룻밤의 사고가 사고로 끝나질 않을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연애의 발견’은 적어도 첫 회에 국한한다면 첫사랑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첫사랑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며, 그에 대한 미련이나 아련함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좀처럼 첫사랑과의 재회는 쉽지 않은 일이며 다시 사랑하는 것은 고사하고 우연히 마주치기도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에 대한 낭만적 욕망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커지기도 하는데, 이 ‘연애의 발견’은 러블리한 정유미의 재발견 속에 그런 첫사랑에 대한 시청자의 욕망을 끌어내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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