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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직행하는 슬로건들…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있다 없다?화려한 수사 속 행동력 빈곤…통일준비위 목적도 의문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08.18 17:27

박근혜 정부는 내치에 비해 외교정책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국민들의 평가도 그랬고 전문가들의 평가도 그랬다. 그러나 최근 <중앙일보>에서 ‘한국 외교의 위기’를 거론하는 등 전문가들의 평가가 슬슬 박해지는 상황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박근혜 정부는 외교 문제에 있어 굉장히 많은 슬로건을 던져댔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구상’까지, 다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다. 13일엔 북한에게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참여정부가 만들었다가 정권 교체 이후 폐기된 ‘한반도 평화체제’까지 운위했다.
 
하지만 한국의 동북아시아 외교정책의 핵심이자 걸림돌인 대북관계가 풀리지 않으면서 저 화려한 수사들은 모두 공허해졌다. 15일 광복절에서부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인 오늘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 정부가 사실상 대북정책 문제에 있어 손을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내용을 보니…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6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저는 우선적으로 한반도의 생태계를 연결하고 복원하기 위한 환경협력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남북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산림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사업을 확대해 가야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69주년 광복절 경축사 내용을 보자.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있다’고 보는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주목할 것이다. “저는 우선적으로 한반도의 생태계를 연결하고 복원하기 위한 환경협력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산림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사업을 확대해 가야 합니다. (...) 오는 10월 평창에서 개최되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 북측 대표단이 참여하기를 희망합니다. 여기에서 남북한과 국제사회 전문가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환경 공동체 형성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생의 통로도 열어가야 합니다.”
 
또한 박 대통령은 북한과 일본의 태도를 지적한 후 동북아 정책에 있어 다음과 같은 ‘큰 그림’을 그린다. 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동북아는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입니다. 원자력 안전문제가 지역주민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EU가 석탄철강분야의 협력을 통해 다자협력을 이루고 유럽 원자력 공동체(EURATOM)를 만들었듯이,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되어 원자력 안전협의체를 만들어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북한과 몽골도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큰 그림’만으로 점수를 주기엔 구체적인 업무 추진을 위한 행동이 너무 미진하다. 박 대통령은 같은 경축사에서 “이제 북한은 분단과 대결의 타성에서 벗어나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로 나와야 합니다. 스스로 핵을 포기한 카자흐스탄과 개혁과 개방을 선택한 베트남, 미얀마 등은 이웃나라들과 협력하며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한반도 생태계 복원을 위한 환경협력의 통로를 제안하기 전에 한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읽을 수 있는 대북정책의 함의는 ‘북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지원할 수 있다’이다. 
 
계획을 제출해도 실행을 할 수가 없는 상황
 
이렇게 된다면 이는 북한 붕괴 내지는 격변사태만 기다리던 이명박 정부의 방관적 대북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북한은 17일 인민군 총참모무 대변인 성명으로 연례적으로 열리는 UFG(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군사연습을 예년에 비해서도 훨씬 강도 높은 ‘선제타격’ 운운하는 수사로 비난했다. 17일 <노동신문>은 아예 박근혜 대통령의 경축사를 비난하며 "인천에서 곧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게 되는데 그것을 앞두고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군사연습의 총포성을 요란하게 울리는 것이 평화에 대한 위협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비난했다. 
 
   
▲ 부가 남북관계가 호전돼 '여건'이 마련되면 연내라도 호혜적 경협 차원에서 개성~평양 고속도로 및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사업 등을 검토하겠다고 18일 국회에 보고했다. 통일부는 제2차 남북관계 발전 기본계획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보고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대형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계획을 처음으로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DB)
 
18일 통일부는 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호응하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2차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 2014년도 시행계획을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서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경제협력 확대' 항목에서 ▲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평양 고속도로 ▲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 ▲ FAO 북한 수산업 지원 ▲ 남북해운 활성화 검토 등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보면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북한에서 반응하지 않으면 휴지통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는 제안들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행보를 보여야 할 텐데 박근혜 정부가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박지원이 전한 북한 상황,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야당 쪽에서 움직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 정부 시절 통일부장관이었던 임동원 전 장관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를 맞아 17일 방북하여 개성공단에서 북한의 조전과 조화를 받았다.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지원 의원은 “(북측이) 김대중 대통령의 조화를 개성공단에서 수령했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가족 대표인 김홍업 전 의원과 김대중 평화센터 실무자를 보내겠다라고 했다”면서 “그랬더니 (북측에서) 김양건 비서가 나오기 때문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의원이 왔으면 좋겠다는 답신이 왔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의원은 “(본인이) 김양건 비서를 수차례 만나서 많은 대화를 했던 사람이라 편하게 말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했다”면서 “통일부에 연락했더니 적극 협력해줘서 (개성공단에)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 17일 오후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옆 북측 개성공단 총국사무소에서 환담을 마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홍업 전 의원과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북한은 이날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화환과 조전문을 전달했다. (연합뉴스)
 
또 박지원 의원은 북한 측의 반응에 대해 “(북한은 항상) 푸념을 한다. 즉 한미군사훈련, 북한 핵폐기의 요구 그리고 우리 언론들이 자기들을 비난하는 문제에 대해 자기들 시각에서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박지원 의원은 임동원 전 장관과 함께 북측에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은 먼저 핵을 폐기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먼저 핵폐기 한다는 빗장을 풀어버렸지 않은가”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 측에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기조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이긴 하나,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지점도 있다. 박지원 의원은 “실천 가능성 있는 것을 지도자가 결단해 달라”는 북한 측 반응을 소개하면서 “그 의미는 제가 받아들일 때, 5. 24 경제제재조치나 금강산 관광재개 등을 결단해 주면 자기들도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은 “(북한 측이) 과거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는 무엇인가 대북관계를 해 보려고 한다고 하는 진정성은 느끼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러 조화를 전달하겠단 의사를 전한 북한 측이 박근혜 정부에 모종의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 기대의 최소한을 충족시켜 주지 않을 경우 정국의 변화가 올 수 없음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한 통일준비위인가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5. 24 경제제재조치나 금강산 관광 같은 문제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주장할 수 없어진다. 동북아시아 외교문제에 대한 그 화려한 수사와 구상들도 공염불이 된다. 
 
‘통일대박’을 외치며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내세우며 야심차게 추진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대체 뭐 하자는 조직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이 과연 존재하느냐에 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이 기구는 중장기적으로 닥칠 통일이라는 충격파에 대응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곧 북한이 붕괴될 거란 정세판단 하에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통일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남북 교류화해협력의 증진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 길이 없다.
 
만약 이 기구가 첫 번째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면 통일 이후를 위한 세수확보와 미래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계획 수립 차원에 한정되게 된다. 두 번째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면 북한으로선 매우 언짢은 상황이 되고 남북관계 경색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의 정세판단대로 곧 북한이 붕괴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이 기구가 세 번째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면, 적어도 기구의 목적에 세 번째 목표를 포함하기라도 한다면 5·24 대북 제재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어야 한다.
 
   
▲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7일 통일준비위원회의 첫 회의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민간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이 문제를 꺼내자 “통일준비위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일축했다고 한다.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구상과 정신을 어떻게 실천할지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안을 논의해 달라”는 의제를 제시했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드레스덴 구상이 흡수통일의 의사가 없다고 강변해왔다. 흡수통일의 의사가 없다면 통일준비위는 북한 붕괴를 의도에 둔 조직은 아니다. 
 
드레스덴 구상이란 것도 실행하려면 결국 북한의 협력이 필요하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고, 그렇다면 상대의 편의를 우리의 제안과 바꾸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모종의 원칙론에 선을 긋고 자신들은 올바른 관점을 제시했다고만 강변하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은, 이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저 문건 수준에서만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다를 뿐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박지원 의원과 임동원 전 장관의 북한에 대한 설득이 효력을 지니려면, 박근혜 정부가 ‘화려한 수사 속 행동력 빈곤’ 상태를 벗어나야만 한다. 이대로 임기를 허송세월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무대책’이었단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요란한 수레’과 과연 ‘짐’을 옮길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남한의 시민들과 북한의 당국자들은 궁금해 하고 있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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