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가 깔려 있고, HDMI단자가 있는 TV(또는 모니터)만 있으면 영화도 드라마도 볼 수 있는 시대다. 구글이 5월 한국에 출시한 OTT(Over The Top) 하드웨어 ‘크롬캐스트’, CJ헬로비전이 최근 내놓은 ‘티빙스틱’ 이야기다. 두 디바이스에는 ‘두 번째 TV’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모바일과 노트북을 리모컨 삼아 큰 스크린에서 영상을 볼 수 있을뿐더러, 스마트기기의 화면을 스크린에 그대로 복제하는 미러링도 가능하다.

약점도 있다. 크롬캐스트와 티빙스틱에는 지상파가 없다. 건별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늘면서 지상파는 천천히 추락 중이지만 ‘지상파 없는 안방TV는 의미가 없다’는 시청자들도 여전히 많다. 그런데 지상파는 바보가 아니다. 유료PP와 콘텐츠를 경쟁하는 시대에 언제까지‘갑’질을 할 수는 없다. 네트워크·플랫폼사업자에 밀린 지상파가 살아남는 길은 여러 플랫폼에 콘텐츠를 유통해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 것뿐이다.

▲ 크롬캐스트. (사진=CJ헬로비전)

12일 유료방송업계에 따르면, 지상파는 크롬캐스트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구글은 크롬캐스트 미국 출시 1년 정도인 지난 7월 미러링 기능을 추가했고, 우회적으로 지상파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러링 자체를 막을 수 없는 지상파 입장에서는 차라리 합류하는 게 낫다. 구글 관계자는 “크롬캐스트는 SDK(Software Development Kit,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가 오픈소스로 돼 있어 누구나 크롬캐스트를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상파 입장에서는 이제 미디어 트랜드를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지상파가 ‘광고총량제+중간광고’를 선물 받더라도 효과는 잠깐이다. 결국 콘텐츠가 팔려야 중간광고도 팔린다. CJ헬로비전이 지상파 콘텐츠 없이도 티빙스틱을 내놓은 이유도 여기 있다. 업계에서는 ‘결국 지상파가 딸려올 수밖에 없다’고 봤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당장 지상파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사용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콘텐츠 별로 경쟁하는 시대다. 그리고 유료PP들이 지상파를 포위하는 모양새다. 웹하드업체 위디스크에 가보면, 같은 날 방송하는 KBS <트로트의 연인>은 할인을 해 100캐시(100원 수준)에 내려받을 수 있는 반면 tvN <고교처세왕>은 할인 없이 1200캐시다. 지상파는 분명 드라마와 예능에서도 뒤지고 있다. 할인이 없더라도 지상파 콘텐츠 값은 1000캐시로 tvN보다 200캐시 싸다. 시청자 입장에서 지상파와 CJ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히려 CJ E&M 콘텐츠에 더 비싼 돈을 내기도 한다.

▲ 티빙스틱. (사진=CJ헬로비전)

이런 점에서 CJ는 영리하다. 크롬캐스트가 ‘지상파 우회시청’을 뚫자마자 CJ는 티빙 전용 OTT 디바이스를 출시했다. 지상파가 티빙스틱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상파가 누울 자리는 좁아졌고, CJ는 그 자리에 누워 지상파가 건너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CJ는 한 달에 CJ E&M 콘텐츠를 1만5천 원 이상 결제하는 2030세대와 유료방송 설치가 부담스러운 1인가구가 티빙에 가입하고, 스틱을 붙이도록 유도했다.

스마트기기와 단건 결제에 익숙한 사용자들에게 월 1~2만 원의 유료방송 요금은 부담이다. 차라리 코드커팅(cord-cutting)하고 그 돈으로 단건 결제를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인터넷만 깔려 있다면 포털사이트와 OTT서비스로 대체가능한 방송도 대다수다. 크롬캐스트와 티빙스틱을 사는 이용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TV 없이 TV를 보는 시대, 지상파는 아직도 플랫폼사업자와 싸우고 있는데 CJ는 지상파 없이 방송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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