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의원총회를 통해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결정하고 나서 정국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새누리당은 긴급최고위원회를 열어 새정치민주연합이 사실상 협상파기를 선언한 것이라고 기정사실화 하고 13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어 대응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말이 의견수렴이지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성토대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멘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이 12일 의원총회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협상을 주도하다 망신을 자초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은 ‘멘붕’에 빠진 모양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12일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책임도 져야 한다”면서 “야당이 대승적 차원의 양보를 다 해줬는데도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158석을 가진 새누리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형식은 여당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실제 내용은 “난 이제 모르겠다, 알아서들 해라”에 가깝게 들린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결정이 다행이라면서도 미덥잖은 제1야당의 태도에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는 12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짝퉁 특별법의 야합이 유가족과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깊은 상처를 주면서까지 확인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가족들을 이런 아픔으로 내몰았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원총회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가족들과 국민들께 사과 한 마디 없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유불리의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게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세상 만사가 모두 여야의 유불리에 영향을 미치니 그것을 이야기 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운을 떼보자면, 순전히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가 정부·여당에 불리하고 야당에 유리한 이슈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체제’의 문제로 지목되는 순간부터 이 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그런 운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오히려 세월호 참사 이후 무너지고 있는 것은 제1야당의 정치적 기반이다. 이는 이번 여야 협상 국면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와 이후 치러진 재보궐선거 모두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정국에 의한 제1야당의 선전이 점쳐졌었다. 그러나 그러한 아주 상식적인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이어졌다. 물론 선거에서의 패배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거공학을 넘어 새정치민주연합이 고수하고 있는 정치적 전략, 전망, 정체성 등이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정치공학은 늘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서 표류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제1야당의 태도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론을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당위와 끔찍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반사이익을 얻으려한다는 ‘역풍’에 대한 경계심 사이에서 제1야당은 갈팡질팡했다. 보수언론으로부터 ‘강경파’ 딱지가 붙여진 일부 의원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김한길-안철수 당시 지도부는 이상하리만치 소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아마 새정치민주연합의 관계자들은 2012년 총선 당시 한미FTA 재협상 촉구와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을 공격적으로 표명했다가 역풍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은 일을 상기했을 것이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테니 말이다.

선거 패배 이후 제1야당이 겪는 노선 논쟁은 늘 비슷한 구도다. 이제는 중도를 회복해 의회정치에 집중하자고 말하거나 야성을 회복해 이제는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허무한 주장들의 충돌이 반복된다. 의회정치에 집중하자는 논리는 여당의 정치에 협력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이어지고, 야성을 회복하자는 논리는 여당과 분명한 각을 세워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자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양측 다 이분법적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스스로 그 태도의 일관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늘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계파적 이익에 맞춰 판단을 달리하면서도 때가 되면 또 ‘의회정치’와 ‘야성의 회복’을 꺼내든다. ‘야권연대’에 대한 찬반논란은 덤이다. 말하자면, 늘 미봉책과 임기응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앞에 둔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운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제1야당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세월호 참사는 스스로 정치적 사건으로 전화됐다. 비극은 제1야당이 이 상황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세월호 참사의 정치를 ‘야당의 정치’로 받아안지 못한 데에서 시작됐다. 그것은 단순히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단식을 함께했다거나 국회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완전히 박살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가 제1야당의 요구가 되고, 제1야당의 요구가 바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가 되도록 만드는 과정 자체가 야당의 정치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는 상황을 그렇게 만들기는 커녕 스스로 독립적인 정치적 존재가 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행보에 끌려가면서도 새누리당과의 성실한 협상에 응하는, 즉 가랑이가 찢어지는 판국으로 휩쓸려 들어갔던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과 유은혜 의원 등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찾아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안은 근본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는 이유는 너무 강경해서도 아니고 너무 온건해서도 아니다. 우리 정치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돌파할 수 있을만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행을 바라며 그날 그날의 임기응변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야당이 세월호 참사를 앞두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이유는 대중들 사이에 만연한 정치적 냉소주의를 뚫을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냉소의 조류를 고려하자니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하는 신세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중들의 열정을 불러 일으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 일을 스스로 게을리해왔다는 얘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집권 경험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130석이나 되는 의석이 있어서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원인을 이명박 정부로부터 찾는 목소리에 대해 “그럼 민주정부의 책임은 없는가”라며 문재인 의원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새누리당의 비열한 반론에 사실은 답할 말이 없어서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가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협상안을 거부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면서도 박영선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해내겠다는 구차한 입장을 밝혀야만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어제까지 밀어붙이던 협상안을 포기하고도 같은 사람들 상대로 또다시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곤란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잘 될 리가 없다. 결국 정치권의 원로나 자칭 시민사회 인사 등 다른 동력이 붙어줘야 얘기가 된다. 이런 상황을 잘 알면서도 이러한 길을 선택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지난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유일하게 남은 ‘선출된 권력’이 퇴장하면 이후 혼란상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미봉책이다. 미봉책과 임기응변으로만 일관해야 하는 제1야당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새정치’는 불가능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