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강이 아버지의 원수 최원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답답한 노릇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있었다. 분명 최원신의 앞을 가로막은 딸 혜원의 말에 흔들린 것도 있다. 그러나 단지 최원신만 죽인다면 단순한 복수는 가능하겠지만 아버지 박진한이 뒤집어쓴 대역죄의 누명은 끝내 벗겨줄 수 없기에 윤강의 선택은 후련하지 못했지만 합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윤강의 실수였다. 아니 실패였다.
죄를 부인하는 최원신의 말을 뒤집을 증인들을 확보하고 왕의 친국에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최원신에게 뇌물을 받은 민영익의 약점이 윤강의 치밀함보다 강력했다. 잡아들인 두 증인을 소위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해 자백을 끌어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결국 좌상 김병제의 협박에 무릎을 꿇은 민영익으로 인해 아버지 박진한의 복수도, 복권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앞서 수인이 의금부에 아버지 정회령과 함께 끌려와서도 끝내 윤강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인륜과 효도라는 측면에서는 혜원이 옳겠지만 사랑과 정의라는 부분에서는 수인에게 무게가 옮겨진다. 어쨌든 혜원은 진실을 버림으로써 아버지를 지키고 대신 윤강을 잃었다. 그렇지만 내심 혜원이 혈육 대신 진실과 정의를 택하기를 바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드라마의 전개와 결말은 작가의 의중대로 갈 수밖에는 없겠지만 조금은 아쉬움감이 없지 않다. 그로써 혜원의 캐릭터가 발전할 기회를 잃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윤강과 최원신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죽을 수밖에 없는 개인적, 정치적 관계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결말부분에 결국 해피엔딩을 포기할 수 없는 구조라면 그 해피엔딩의 그림자에 혜원의 비련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잔인하긴 해도 더 극적인 구도가 가능했다.
윤강을 배신하고, 진실을 저버린 혜원에게 이제 남은 선택은 많지 않다. 아버지 최원신과 동류의 인물이 되거나 아니면 속세를 등지는 정도이다. 그렇게 정리되기에는 그동안 혜원이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유지해왔던 존재감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윤강과 수인의 사랑에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 역시 불만이다. 물론 작가로서 혜원이라는 캐릭터를 버리지 않고 발전시켜나갈 복안이 서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비련에서 멀어진 혜원의 캐릭터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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