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군인권센터가 4월에 사망한 육군 28사단 포명연대 의부무대 소속 윤 모 일병의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가혹행위에 대한 군 수사 내용을 발표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4일 언론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이 문제가 비중 있게 보도되었다. 특히 보수언론으로 분류되는 ‘조중동’ 역시 관련 사설을 게재했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윤 일병과 다른 군대 내 인권 침해 사례들을 특집기사로 소개했다.

4일자 <조선일보>는 <兵士 학대 숨기려고만 하니 누가 軍을 믿겠는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군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해 5월 2일 선임병 5명을 상해치사죄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단순 폭행으로 숨졌다는 애초 발표를 바로잡는 수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라며 군 당국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서 “군이 한사코 진실을 감추려고만 드니 무슨 사고가 터졌을 때 군의 진상 조사 발표를 믿지 않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군이 정말 가혹 행위를 막으려면 그 실태를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열린 자세를 갖고 가혹 행위가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과 대책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총기난사 이은 구타 사망, 육군 수뇌부 책임 지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군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병영문화 쇄신을 약속했지만 공염불이 되고 있다. 땜질식 처방을 해온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가혹행위와 집단 따돌림, 관심병사 실태에 대한 전면적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병영을 새로 세운다는 자세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 4일자 조선일보 2면 기사
한편 같은 날 <동아일보>는 <한민구 장관, 야만적인 군 가혹행위 근절에 직을 걸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윤 일병 사건 뿐만 아니라 이날 자 매체가 집중보도한 이모씨 자살 사건까지 언급했다. <동아일보>는 “육군은 윤 일병 사건 이후 올해 4월 한 달 동안 전 부대를 대상으로 가혹행위의 실태를 조사해 가담자 3900여 명을 적발해 냈다. 군 내부에서 구타와 가혹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라면서, “국방부는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마음 놓을 만한 대책을 내놓아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사설을 넘어 지면 편집에서도 보수언론들의 해당 사안에 대한 관심은 돋보였다. 가장 비중이 큰 보도를 한 것은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1면에 <짓밟히는 兵, 외면하는 軍>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2, 3면에 시리즈 기사를, 5면에 관련 기사를 배치했다. 시리즈는 [제2의 윤일병을 구하라]란 제목으로 향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엿고, 2면엔 <선임 70명 군번 못외우자 “넌 인간 샌드백” … 정신 망가져>란 제목으로, 3면엔 <이상행동에 병원 대신 영창… 증세 더 악화>란 제목으로 군 전역 이후 자살한 이모씨의 사례를 다뤘다.
<조선일보> 역시 시리즈 기사는 아니었지만 특집 기사를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1면 <온몸에 멍든 대한민국軍>이란 제목의 기사와 2면 <뇌종양 兵士 방치, 장교는 上官 협박… 軍 안으로 곪았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역시 윤 일병 사례를 넘어 기존의 다른 군 인권 침해 사례를 보도했다.
▲ 4일자 동아일보 2면 기사
<조선일보> 보도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군 인권 문제들이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진단이었다. 2면 기사 <뇌종양 兵士 방치, 장교는 上官 협박… 軍 안으로 곪았다>엔 이런 대목이 있다.
군 당국은 그동안 “일제(日帝)시대 군대의 잔재(殘滓)인 구타는 거의 근절됐고 가혹 행위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지만 군내 실상은 오히려 정반대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지난해 발표한 ‘군 인권 실태 연구 보고서’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사 305명 중 ‘군대 내에서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8.5%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 조사 때보다 2.5% 늘었다.

남이 구타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병사(17.7%)도 2005년(8.6%)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구타를 목격한 후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인 52.7%가 ‘못 본 척했다’고 했다. 가혹 행위를 당한 경험자도 2005년 9.6%에서 작년 12.5%로 늘었다. 특히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의 86.8%가 당한 후에도 ‘그냥 참았다’고 했다. 가혹 행위를 당하거나 목격한 병사들로부터 신고(보고)를 기다리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고질적인 군내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것만으로 단정짓기는 어려우나, 군 인권 문제는 2000년대에 비해서도 악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 원인 중 하나가 어쨌든 군 인권 개선을 정책 의제 중 하나로 담고 있었던 민주정부의 시책이 보수정부 출범 이후 중단되었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가능할 것이다.
▲ 4일자 조선일보 2면 기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책상을 몇 번이나 치면서 한민구 국방장관을 질책했다는 내용이 기사가 될 정도로 윤 일병 사건은 보수정부에게도 신경쓰이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이는 이 사건의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31일 오후 CBS 라디오 <CBS 시사자키>에 출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대에서) 사망한 사건을 많이 접해 본 여타의 다른 법률가들도 ‘이게 사실이냐’고 저희에게 반문할 정도였다. 1970년대에도 이런 사건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보수언론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상황은 향후 군 인권 문제 해결과 군대 개혁을 위해 긍정적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비해서는 적극적인 지면 편집을 하지 않은 <중앙일보>도 칼럼을 통해서는 해당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4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의 <영혼 없는 국방부는 박살내야>란 제목의 칼럼도 상당히 높은 수위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은 이 글에서 “영혼 없는 국방부를 못 믿겠다는 분위기다”라면서 “군을 바꾸려면 사소한 것에서 대규모 실험까지 망설일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4일자 중앙일보 30면에 실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의 칼럼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의 제안은 대단히 구체적이었다. 이 위원은 “우선, 더 이상 대장 출신의 국방부 장관은 보고 싶지 않다. 유럽에는 여성 국방부 장관도 수두룩하다. 그 어느 막강한 군대, 그 어느 선진국에도 문민통제는 확고한 원칙이다. 언제까지 우리 군만 갈라파고스섬처럼 남겨 둘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군 문제에 관한 한 상당히 진보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은 “마지막으로, 매우 사소하지만 사병들의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하는 것이다. 사병이 다루는 비밀이 뭐 대단할 게 없다. 이미 친북주사파들이 국회 국방위에서 온갖 기밀서류를 훔쳐보고, 정보사령부 준장이 차 안에서 외간 여자와 나뒹굴다 얻어맞는 세상이다. ‘보안’과 ‘생명’ 중 당연히 생명이 우선이다. 차라리 사병들이 휴대전화로 가혹행위를 찍어 사이버에 올리도록 해야 한다. 세상과 소통하면 극단적 선택도 막는다”라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대통령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군 최고통수권자다. 멀쩡한 자식들을 맡겼으면 잘 관리해 주는 게 기본적 예의다. 솔직히 임 병장·윤 일병 사건은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그나마 정치감각이 돋보이는 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 그래,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분노한 민심에 쇼라도 해야 한다”라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칭찬하면서, “더 이상 군의 자가(自家)수술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납세자를 대표하는 국회에 군 개혁위원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그게 바로 문민통제다”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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