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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 대중이 교황에게 열광하는 이유[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4.08.04 11:10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금 그 어떤 전임 교황보다도 전폭적인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탈리아처럼 천주교가 여전히 강세를 누리는 국가도 있지만, 유럽은 20세기 들어 기독교와 천주교의 위세가 한 풀 꺾인 대륙이다. 예전에 교회가 있던 건물엔 펍(Pub)이나 다른 업종의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데 바티칸의 비주류인 남아메리카의 예수회에 속하는 교황 프랑치스코가 즉위한 후 유럽 몇몇 국가는 천주교 신자가 늘었다. 사람들은 SNS로 교황에게 환호하고, 심지어 ‘교황은 슈퍼맨’이라는 합성사진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전임 교황과는 달리 교황 프랑치스코가 천주교계를 넘어 전 세계 대중에게 폭넓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8월 4일 <SBS 스페셜> 방영분은 보여주고 있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얼마든지 부자로 한평생을 살고도 남았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편안함, 부자의 길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가난의 길을 택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평생을 살다 간 천주교의 성인이다.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된 현재의 교황 역시 아르헨티나의 빈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부활절이 되면 거리의 노숙자와 마약중독자의 발을 닦아주고는 그들의 발에 입을 맞춘다. 마약중독자 가운데에는 교황의 이런 낮은 자세에 감동해 마약중독자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갱생의 길을 걷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교황 프란치스코가 빈자들과 함께하는 청빈의 삶만 살지는 않았다. 교황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마피아를 파문한 것은 바티칸의 기득권, 반인륜적인 범죄와 결별하겠다는 의미를 담는다. 이전 몇몇 사제를 통해 마피아의 돈 세탁을 바티칸이 담당했다는 건 재원이 부족한 바티칸이 검은 돈의 유혹에 얼마든지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피아를 파문한다는 건 검은 돈의 유혹을 척결하겠다는 교황의 의지이자 동시에, 폭압으로 대중과 경찰의 생명을 위협하는 마피아의 검은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일갈하는 건 우상화와 착취에 대한 경고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최대한 많은 재화를 손에 넣는 것이다. 돈이라는 ‘맘몬’을 우상시하고 이를 위해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건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수단화한다는 걸 뜻한다. 교황이 자본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날린 것에 대해 교황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를 착취하기 쉬운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고발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교황 프란치스코가 폭넓은 인기를 얻는 작금의 현상은 그가 천주교의 수장으로서 대접받는 자리가 아닌, 빈자들과 함께하는 ‘청빈과 개혁’의 아이콘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이후 21세기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SBS 스페셜은, 종교가 엄숙주의를 탈피하고 낮은 자의 자리에 설 때, 더불어 낮은 자와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개혁을 촉구하는 선지자의 목소리를 낼 때 종교로서의 제기능을 다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종교에 대한 소리 없는 모본이기도 하다.

과거 천주교가 성당을 건축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 판매라는 말도 안 되는 작태를 벌이고 있을 때, 천주교에 분연히 반기를 든 개신교는 지금 한국에서 어떤 위상을 보이고 있는가. 개신교가 우리가 아닌 ‘나’를 강조함으로 개인주의적인 신앙, 기복주의와 결합하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담당하지 못해 조금씩 교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 개신교의 현실이다.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자리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습의 자리가 아님에도 변칙 세습의 작태를 벌이는 건 교회에서 섬기는 자리에 있어야 할 목사의 자리가 대접받는 자리에 있다는 걸 반증하는 고약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청빈과 개혁의 삶은 추락하는 한국 개신교의 개혁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롤 모델로 느껴지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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