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퇴진했다. 대선주자였던 손학규 상임고문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7.30 재보궐선거 참패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제1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전면적인 불신을 드러낸 선거결과이기 때문에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 후폭풍이 야권 지지층이 바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를 묻는다면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

조기 전당대회, 실시될 것인가

7.30 재보선이 끝난 이후엔 2016년 4월 총선까지 약 20개월 동안 큰 선거가 없다. 어쩌면 당을 혁신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으나, 갈등요소가 많다. 먼저 조기 전당대회가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였다. 이때까지 6개월 남짓한 기간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갈지 조기 전당대회를 실시할 지부터가 갈등거리다.
조기 전당대회가 없을 거라고 보는 쪽은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권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지난 3월 민주당과 안철수 측이 통합하면서 5:5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안철수 쪽 인물들이 채워지지 않아서 현재 지역조직이 구성이 되어 있지 않다. 전당대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결국 예정대로 내년 2월 전당대회를 목표로 당권주자들이 경쟁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체로 전당대회로 결정된 당대표의 임기는 2년이 된다. 그렇다면 다음 전당대회의 승자가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런 고로 새정치민주연합 내 각 계파들이 내년 2월 전당대회를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란 게 이들의 생각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왼쪽)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3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비대위 구성 비상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기 전당대회가 있을 거라고 보는 쪽은 다르게 본다. 정치권 사정을 아는 다른 관계자는, “말씀하신대로 지역조직이 구성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당헌·당규가 그렇게 엄밀하지 않다. 비대위원장이 다르게 해석하거나 바꾸어 버리면 그만이다. 안철수 쪽 인물들이 없다고 하는데, 이참에 쇄신을 말하면서 외부 인사들을 꾸역꾸역 채워넣으면 금방 끝나는 문제다. 조기 전당대회를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조기 전당대회를 하더라도 이렇게 결정된 당대표는 임기를 끝까지 채우면 다음 총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경우 당권경쟁보다는 당장의 전당대회를 어떤 인원들과 함께 할 것인가가 당면한 문제가 된다.
이 경우 비대위원장이 누가 되느냐가 다시 문제가 된다. 당대표가 사퇴한 이상 대표 직무대행을 맡게 된 건 박영선 원내대표다. 다른 최고위원들은 당내에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임명된 이들로 직무대행의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박영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 되겠다. 합의 하에 비대위원장을 만들어 내어 그에게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조기 전대가 없을 거라고 봤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박영선 원내대표는 다른 사람 지명할 것 없이 본인이 비대위원장을 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의원들도 거기까지는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비대위원장이 된 박영선 원내대표가 외부 인사들을 채워넣는, 그러니까 당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식의 조기 전대를 할 정도의 리더십을 가질 수 있겠느냐.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구조에선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당권 경쟁은 어떻게 되나
그렇다면 조기에 하든 내년 2월에 하든 당권 경쟁을 하게 된다면 누가 주자로 나올까. 정치부기자들은 박지원 의원과 정세균 의원이 뜻이 있어 보인다고 전한다. 덧붙여 문재인 의원이 나설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한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유병언 청해진 회장의 사체 발견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의원의 도전 가능성은 일종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한 정치부 기자는 “좋든 싫든 ‘비노’가 지도부에서 빈 자리에 ‘친노’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차라리 어설프게 관리형 대표가 나서지 말고 친노에서 대선주자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 의원이 직접 나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성공하면 좋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대선 전 교체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위 ‘친노’ 진영의 입장에선 바로 그렇기에 ‘대선후보 문재인’을 위해 이 선택을 피해가려고 할 수 있다. 역시 친노성향의 정세균 의원과 문재인 의원이 함께 나왔다고 모종의 단일화를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박지원 vs 정세균’의 그림은 당 내부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경쟁일지 몰라도 야권 지지층의 입장에선 답답함을 넘어 홧병까지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야권의 한 지지자는 “구악 대 구악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라고 평가했다. 굳이 지지층의 생각 뿐만이 아니라, 정치부 기자들 역시 이 경쟁구도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탄생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계파를 없애자고 말들은 하지만 결국엔 계파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기존의 양상을 반복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경우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에 비해서도 선거 직전에 대표가 됐는데도 공천 과정에서 모종의 실험을 했다. 경기 평택을 공천에서 철저하게 지역 당원의 의사를 수렴하는 공천을 하여 ‘거물급’ 정치인인 임태희가 아닌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았던 젊은 유의동 후보가 공천이 되었다. 유의동 후보는 지역에서 3선을 한 새정치민주연합 정장선 후보를 꺾고 결국 당선되었다. 김무성 대표는 이준석 새바위원장에게 “향후 총선에서 전략공천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상태다.
▲ 새정치민주연합 설훈(왼쪽부터), 정세균, 강기정 의원이 지난 7월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찬 모임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재보선의 한 지역구의 사례가 2016년 총선에서 전면적으로 통과되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김무성 대표 약속의 의지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대표가 된 이가 그러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상황은, ‘박근혜 퇴진 이후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과 비슷한 모습일 것’이란 우리의 희망사항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현재 객관적으로 얼마나 한심한 상황인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당권 경쟁 이전, '486 책임론'까지 등장
▲ 4일자 한겨레 5면 이철희 소장의 칼럼
전면적인 인적 쇄신과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한겨레>와 <프레시안> 등에서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들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2003 체제’ 혁파론이다.
이철희 소장은 4일자 <한겨레> 5면에 실린 <‘2003 체제’를 혁파하라>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은 김원기·이해찬 등 친노그룹과 정동영·천정배·김한길·신기남·정세균 등 소장그룹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당은 이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노선·정책·전략도 그대로다. 비유하면 ‘03년 체제’라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치열한 고민과 갈등 끝에 ‘03년 체제’를 만들어냈지만 선거 승패, 정당 지지율 등에서 심각한 한계를 노출했다. 10여년 지속되고 있는 이 체제는 2004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 승리 외엔 각각 두 번의 총선·대선에서 참 무던히도 졌다. ‘03년 체제’는 2007년 대선 패배, 늦어도 2008년 총선패배 후 혁파됐어야 했다. 그 때 새로운 노선과 정책,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는 일대 혁신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게 물리적 이치 아니던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로움이 낡음을 대체하려는 치열한 시도, 세대교체는 없었다. 당내 486이 반성할 대목이다. (...)“
‘486 책임론’에 대해선 야권 지지자들도 공감하는 편이다. 한 야권 지지자는 “김한길, 안철수가 무능하긴 했지만 당권 잡은지 몇 개월 안 된 그 사람들만 사라지면 정상적인 야당이 오는 게 아니다. 박지원이나 손학규가 뒤로 물러서고 486세대 의원들이 나서면 표면상으론 더 젊어 보이겠지만 유권자들은 그들을 더 지겨워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철희 소장이 <프레시안>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2000년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486세대가 십 수년이 지난 후 어떤 가치지향의 틀로 묶이지 않고 이 계파 저 계파로 나뉜 채 집단적 탄핵의 대상이 된 현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 외부의 다양한 반응들에 주목하여 ‘다 내려놓는다’는 심경의 쇄신을 펼치지 못한다면 2016년 총선과 2017년의 대선도 명약관화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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