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나 여주인공은 자주 민폐에 빠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래야만 보는 이의 애간장을 끓게 하고 결국에는 남자 주인공의 희생과 영웅적 판타지를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노림수도 실패하고 그냥 여주인공이 민폐로 남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특히 사극이라는 배경에서 클리셰에 갇힌 여자 연기자들은 민폐를 벗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사극톤이라는 특유의 연기 걸림돌 때문에라도 여자 연기자들은 힘들다.
그런데 조선총잡이에서는 그런 민폐의 공식이 없어 좋다. 그것을 상징하는 대사가 12회 전혜빈에게서 나왔다. “조선의 여인네로 살 생각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이다. 관습과 통념으로부터의 과감한 독립선언이나 다름없다. 전혜빈은 역할을 작지만 그런 분량보다는 훨씬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급기야 이준기에게 직격탄으로 프러포즈를 하면서 남상미와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케 하는 등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다.
심지어 이준기의 정체가 일본인 한조가 아니라 3년 동안 오매불망 잊지 못했던 정인 박윤강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오히려 그 사실을 가슴에 꼭 묻어두고 그림자처럼 돕는 모습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렇게 민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간만의 캐릭터 수인의 모습은 어느덧 남상미가 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현대극에서의 남상미와 크게 다른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치마저고리 입은 남상미가 훨씬 자연스럽다. 어쩌면 너무 늦게 사극을 하지 않은 것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서 숨길 수 없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다. 박윤강은 수인을 지키기 위해서 떠나라고 할 수밖에는 없다. 이때 수인은 아주 적절한 수위의 간절함과 단호함으로 윤강의 진심을 시험한다. 윤강은 이미 내친김이니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자 두말 않고 돌아서고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며 윤강에서 멀어진다. 이 장면이 정말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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