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남에서 해냈다. 7.30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 곡성에서 당선되면서 그는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전남에서 처음으로 탄생하는 새누리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원이 되었다. 호남 전체로 따지면 1996년 15대 총선 때 전북 군산을의 신한국당 강현욱 전 의원 이래 18년 만이다.

3전 4기, 이정현의 도전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1984년에 광주항쟁 당시 광주시장이었던 구용상 전 민정당 의원의 비서가 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 민정당 후보로 광주 시의원에 출마해 1.2%를 득표했고 17대 총선(2004년)에선 광주 서구을에서 0.7%(720표)를 얻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되겠다’는 '이정현의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보였다.
하지만 이정현 의원은 18대 국회(2008년~2012년) 때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예산결산특위 위원, 여수 세계박람회지원 특별위원, 새만금 특별위원회위원, 광주 유니버시아드 유치위원회 위원을 거치며 호남의 예산을 확보하고 지역현안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19대 총선(2012년)에선 다시 한번 광주 서구을에 나와 비록 낙선했지만 40%에 육박하는 39.7%를 득표해 대구 수성갑에서 선전한 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새누리당을 가장 혐오하는 전남이었지만 지역의 예산을 챙겨준 이정현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정현에 대해 말하면서 박근혜를 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 볼 때, 이정현 의원은 ‘박근혜의 입’으로 통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7대 총선 낙선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한 후 많은 이들이 박근혜의 곁을 떠났지만 이정현 의원은 여전히 ‘박근혜의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로부터 선대위 고위직을, 김문수 경기도지사 측으로부터 정무부지사직을 제의받았으나 모두 고사했다. 결국 그는 박근혜 대통령 옆에서 2012년 대선 기간 동안 공보단장, 당선 이후 인수위 정무팀장을 거쳐 임기가 시작된 이후 청와대 홍보수석이 됐다. 홍보수석에서 사임한 건 지난 6월의 일이다.
▲ 31일자 조선일보 2면
이정현은 어떻게 지역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나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란 맥락을 등에 없고,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이정현 의원의 선거운동은 철저하게 지역개발을 강조했다. 그가 '예산폭탄론'과 '지역발전론'을 내세우며 "일단 국회로 보내주시고 안 되겠다 싶으면 2년 뒤에 갈아치우면 된다"는 논리를 펴자 지역민들에게 솔깃한 구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비리전력자를 후보로 낸 상황, 통합진보당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새누리당 밖에 없었다고 분석될 수 있다.
즉 전남 순천 곡성 유권자들이 이정현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징벌적인 투표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겠다는 실용적인 투표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한다면 이정현 의원의 당선을 ‘선거혁명’이라느니 ‘역사를 바꿨다’라고 말하기는 민망해 보인다.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당선되는 것, 새정치민주연합이 영남에서 당선되는 것만으로 지역주의 타파라고는 볼 수 없다. 지역주의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이 각 정당을 평가하는 다른 기준을 억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의 지역주의는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영호남에선 약간의 이념화를 거친 상태였다. 가령 영남은 햇볕정책을 찬성하지 않지만, 호남은 찬성한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전남 순천 곡성의 이정현에 대한 선택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징벌적인 투표의 측면을 빼자면, 그 이념화의 측면을 퇴행하여 노골적인 지역이기주의로 되돌아간 것에 가깝다. 그렇게 본다면 ‘퇴행’을 ‘극복’이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31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지역주의 아닌, 지역이기주의의 발로일수도
말하자면 영호남 사람들도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만을 고집하지 않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새정치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가 박정희 컨벤션을 말하며 선전한 것도 흡사한 현상이다. 호남에서 징벌적 투표와 지역개발 두 가지 이유로 새누리를 선택했듯, 향후 영남의 몇 개 지역구에서 새누리에게 경각심을 주고 지역에 도움을 주겠다는 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 정당의 텃밭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활동을 한 이들은 흔하지 않기에, 이런 식의 전개는 서로의 영역에 ‘점 하나’나 ‘점 두 개’ 정도 찍는 효과에 그칠 것이다. 또 지역개발을 ‘우리 지역에 예산 끌어오기’와 동일시하는 태도는 동남권 신공항 선정 관련 잡음에서 보이다시피 지역 간 갈등을 초래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전남 순천 곡성 지역민들도 ‘예산폭탄’의 단물을 맛보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이정현의 도전’의 성공은 일회적인 것으로 끝날 가능성도 높다.
이정현의 전략은 어쩌면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의 그것과 흡사했다. 오랫동안 경남도지사를 지낸 김혁규는 열린우리당에 넘어간 이후에도 여당을 찍어야 지역에 도움이 될 거라 주장하며 열린우리당의 세를 확장하고자 했다. 김혁규의 주장은 당시 보수언론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민주정부 시절 대통령 최측근이 ‘예산폭탄’ 운운했다면 보수언론이 과연 가만히 뒀을까. 이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여주는 상황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31일자 한겨레 3면 기사
일방적 찬양과 그러려니 폄하의 사이에선 이정현
이정현의 도전의 의미를 그 자체로 폄하할 것은 없다. 야권 역시 야권 정치인이 영남지방에 도전하는 것을 평가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특히 이정현의 당선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그간 호남이라는 ‘집토끼’를 홀대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란 측면이 있는 만큼 반성도 필요하다.
물론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후 친노세력이 부산·경남에 줄곧 문을 두드린 것과는 달리 이정현의 도전엔 가치의 측면은 없었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친노의 PK 공략이 3당합당 이후 상실된 영남 민주화세력과 호남 민주화세력의 복원에 그 뜻이 있었다면, 이정현의 도전은 앞서 언급한 김혁규 식 지역이기주의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 도전하기 시작한 시기와는 달리, 이 시대의 사람들에겐 ‘분열된 민주화 세력의 복원’이라는 뜻조차 매우 구태의연하게 보인다는 사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민주화라는 말 자체가 일각에선 폄하의 의미를 지니게 된 세태에, 여타 지역을 공략하는 ‘진정성’은 이정현의 ‘예산폭탄’이나 김부겸의 ‘박정희 컨벤션’ 같은 즉자적인 것으로 수렴되고 있다.
결국 이정현식 호남 공략을 극복하는 문제 역시 민주화 이후 야권이 가져가야 할 가치지향이 무엇인가의 문제로 수렵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대안적 삶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예산폭탄’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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