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민주화 이후 영남 기반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광주전남지역에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7.30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해 당선됐다. 최종득표율도 49.43%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40.32%)를 크게 앞섰다. 투표율도 51.0%로 선거가 치러진 지역 중 가장 높았다(전국 평균은 32.9%).

31일 광주전남지역 신문들은 모두 이정현 당선자의 이름과 사진을 1면에 크게 실었다. 편집도 비슷했다. ‘이정현이 지역구도 철옹성을 깨고 역사를 새로 썼다’, ‘새정치는 몰락했다’는 내용이다. 전략공천 논란에 배우자 재산 축소 신고 의혹이 겹친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득표율 60.6%로 당선됐으나 투표율(22.3%)은 낮았다. 신문에서도 구석으로 밀려났다.

호남지역 7개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이렇다. <이정현, 한국정치 새 역사 쓰다>(광남일보), <이정현, 한국 정치사 새로 썼다>(광주매일신문), <지역구도 철옹성 자전거 타고 넘다>(광주일보), <새누리당 이정현 순천·곡성 당선…새정치 ‘몰락’>(남도일보), <새누리 이정현 새정치 아성에 ‘말뚝’… 텃밭 붕괴>(무등일보), <이정현 대한민국 역사 새로 썼다>(전남매일), <새누리 이정현, 지역주의 철옹성 뚫었다>(전남일보).

▲광남일보 7월31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광주매일신문 7월31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광주일보 7월31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광주전남지역 신문들은 새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짚으면서도 이정현 후보 당선이 ‘지역구도 타파’라며 추켜세웠다. 광주일보는 “이정현 후보의 당선은 야권의 심장이자 텃밭인 전남에서 지역구도 타파가 실현됐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평가”라고 보도했다. 광남일보는 “마침내 광주·전남에서 국민들이 바라던 선거혁명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무등일보는 “단순히 국회의원 1석을 잃은 게 아니라, 텃밭에서 그것도 새누리당에게 졌다는 점에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무론 지역의원들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이자 치명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남매일은 “특히 이 후보의 당선은 오랜 굴레인 ‘호남 고립’ 현상에서 벗어나 통합의 시대로 가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광주전남지역 언론들은 그 동안 여론조사에서도 ‘예산폭탄론’(또는 ‘힘 있는 일꾼론’)을 내세운 이정현 후보가 앞서왔고, 선거 막판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총력 지원에도 지역발전론 표심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봤다. 광주매일신문은 “이정현 후보의 ‘예산 폭탄’ 공약이 지역민 사이에 파괴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했다. 신문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략공천 잡음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도 야권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봤다.

▲남도일보 7월31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무등일보 7월31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광주매일신문은 당선요인을 분석하며 “(이정현 후보의) 당선은 정권 실세에 대한 기대감과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지역민의 실망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며 이정현 후보가 현 정권의 실세라는 점에서 “지역 정서와 맞지 않는 새누리당 후보이긴 하지만 지역 입장에서는 이 후보가 국회에 진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많다는 점이 결정적인 당선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마케팅’을 최소화하면서 ‘힘 있는 일꾼론’을 내세운 것도 당선요인으로 꼽힌다. 전남일보는 “중앙당의 지원을 포기하고 나홀로 유세를 한 것도 지역민들에게는 동심을 이끌면서 박근혜 정권의 실정이 그에게 오버랩되는 것도 차단했다”며 “이 당선인은 그의 치명적 약점인 ‘박근혜 프레임’에 갇히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정현은 박근혜를 팔지 않는 정권의 진짜 실세’로 보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광주전남지역 언론은 이정현 당선자가 그 동안 영호남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여러 번 낙선에도 다시 호남지역에 출마하는 등 ‘진정성’을 보인 것이 승리요인이라고 봤다. 광주일보는 “1995년 광주시의원 선거, 2004년 총선, 2012년 총선 등에서 잇달아 낙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3전4기의 도전에 나선 그의 진정성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무등일보는 이정현 당선자의 어린 시절, 정계 입문 과정, ‘호남예산 지킴이’로 불리던 18대 국회의원 당시 의정활동을 모아 인물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광남일보도 비슷한 내용의 인물기사를 실었다. 전남매일와 무등일보, 은 3면 전체를 ‘이정현’으로 채웠다. 전남일보는 이정현의 승리와 권은희의 상처를 위아래로 배치했다.

이정현 당선자에 대해 일부 ‘위인전’ 수준의 과도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권은희 당선자(광주 광산을)에 대한 평가는 초라하다. 전남매일은 당선이 유력했다면서도 “문제는 전략공천에 대한 지역민의 반감과 남편의 부동산 임대업 논란 등으로 인한 득표율이었다”고 보도했다.

전남일보는 <권은희,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원칙 없는 전략공천 논론으로 시작한 이번 선거는 전국 최저 투표율에 득표율까지 낮아 ‘이기고도 진 선거’,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게 지역정가의 평가”라고 보도했다. 전남일보는 “야권이 ‘광주의 딸’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는데도 60%(60.61%)를 간신히 넘긴 득표율을 기록”한 점을 들며 “권 당선인에게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이정현 당선자는 1958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순천과 광주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동국대 졸업 후 1984년에 민정당에 입당했다. 1995년에는 광주시의원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2002년에는 이회창 대선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역을 맡았다. ‘박근혜의 입’ 역할을 한 것은 2004년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 시절부터다. 그는 18대에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오기 전후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전남매일 7월31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전남일보 7월31일자 1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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