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재보궐 선거는 진보세력을 포함한 야권의 패배로 끝났다. 2012년 대선에서부터 총선, 지방선거, 이번 재보궐 선거까지 선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극우·보수세력들의 의석수만 늘어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새누리당은 158석으로 거대 여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의 주도로 국회에서는 대기업과 재벌들을 위한 법안들이 다수 처리될 것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보수정당들이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해 정치를 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은 아닐 텐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50~80대 노인층이나 농촌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계층·지역이라고 평가받는 곳에서 또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질수록 이 같은 이상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뉴스타파>,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베블런 효과로 설명

<뉴스타파> 김진혁 PD <미니다큐 Five minutes>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 편은 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준다. 김 PD가 주목한 부분은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베블런 효과’였다.

해당 다큐를 짧게 소개하면 이렇다. 경제학자 베블런이 미국 사회와 경제를 관찰하고 분석해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당대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유한계급론>을 출간한다. 상품 가격에 따라 수요가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었다. 역으로, 가격이 올라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이다.

▲ 뉴스타파 김진혁 PD의 미니다큐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 편 캡처
이 같은 베블런 효과는 ‘계급’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돈과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유한계급’은 세상의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을 선호하는 보수주의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반면, 생산직 노동에 종사하는 가난한 하위 소득계층은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을 변화를 원하는 진보주의 성향을 갖게 되어야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이 다.

해당 다큐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베블런 효과를 제시한다. 다큐는 “당장의 일상과 생존만으로도 너무나 힘겨운 가난한 사람들은 변화(진보)를 위해서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고민할 겨를이 없다”며 “오히려 기존 방식에 적응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함으로써 기존 방식에 순응하는 보수주의 성향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다큐는 2014년 대한민국을 조명한다. ‘가장 진보적일 것이라고 예상되는 20대’는 높은 대학등록금과 저임금, 부족한 일자리, 비정규직 등 생존에만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끝으로, <미니다큐 Five minutes>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는 묻는다. “과연 우리사회에 진보는 가능한 걸까?”.

▲ 김진혁 PD의 미니다큐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 캡처
“가난할수록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도 문제”

김진혁 PD의 <미니다큐>는 7·30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의 패배로 회의에 빠진 이들 사이에 빠르게 회자되고 있다.

해당 다큐를 소개한 <뉴스타파> 최승호 PD의 페이스북에는 “당장 다음 달 카드빚 걱정과 먹을거리 걱정이 있는데 어떻게 다음 세대를 걱정하겠는가”라는 글과 함께 계급적 자각이 필요하다는 덧글을 달았다. 또, “그래서 노동자 민중들 간의 연대가 필요하고, 복지의 확대, 교육불평등의 해소 요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조희연 교육감의 자사고 폐지에 자사고 엄마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놓지 않기 위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데 일반고 학부모들은 아무 소리도 안 하는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고 다른 사회적 이슈에 적용해 논의를 넓혀가는 모습도 보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화돼가는 현상에 있어서 미디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가난할수록 정보를 얻지 못하니(이런 결과가 나온 것)”, “제한된 미디어만 접하게 되는 다른 걸 수용할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종편만 보다보니 일종의 세뇌가 되고 그것이 믿음 체계가 되어버려 다른 말을 수용할 능력이 상실된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7·30재보궐 선거는 끝났다.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과 세월호 참사라는 야권에 유리한 지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선택은 ‘새누리당’이었다. 이 같은 현상에 있어서 <뉴스타파>의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라는 베블런 효과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대한 요구가 들끓는 때는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임계점일 수 있다. 한국사회 내 기득권 세력이 그 임계선상에서 줄을 잘 타고 있는데, 그 선상을 어떻게 낮출 수 있는 것인지 그 고민 말이다. 해당 다큐에서 설명하듯, 당장의 생존만으로 힘겨운 가난한 사람들이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의 문제를 파악하고 고민하게 만들 '대안정당'은 언제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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