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유능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철저한 무능이 두드러진 선거였다. 전략공천은 각 계파의 이해관계의 합산으로 진행되었고, 잠재적 경쟁자들을 몰아내는데 치중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 돌출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만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렇더라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그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가 단지 그것만이었다 보기에는 패배의 강도가 충격적이다. 공천을 잘 했다면 이길 수 있었던 지역구로 떠오르는 곳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새로운 역사를 쓴 전남 순천곡성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광주 광산을 권은희 공천이 수도권 민심에도 영향을 미쳐 지지자 결집을 방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측면은 있다. 애초 7월이나 8월 재보선이 여름휴가와 방학으로 인한 청년 유권자들의 이탈로 인해 야권에 유리한 적이 없었다는 맥락도 있다.
▲ 31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새정치 문제... 표피적 이유 넘어선 근본적 위기론
하지만 이와 같은 표피적 이유들만 나열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맥락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들이 새누리당의 신예들에게 맥없이 패한 이유를 전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당장 2016년 4월 총선까지 20여개월 동안은 제대로 된 선거가 없다. 이 기간 동안 정부 여당은 정책적 드라이브를 걸 거라고 예측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계파 간 책임공방에 휩쓸릴 거라는 예측이 든다면 문제는 근본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11:4라는 변명할 수 없는 9:6과 같은 애매한 스코어로 인해 ‘정신승리’하는 상황보다 혁신을 위해선 나은 것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들고 나온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권심판론이 새누리당의 ‘경제 살리기’만큼도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야당 의원들이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유권자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못했다는 증언이 있다.
▲ 31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결국 야당으로선 정권심판 내지는 책임론만을 말할 게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대개조의 다른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 방향 속에서 세월호 특별법의 의미도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었기에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이 내세운 ‘과도한 보상’이란 프레임에 빠져들었고 무능한 야당이 일하려는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양당의 텃밭인 영호남의 불균등한 지역인구, 청년세대의 비율이 갈수록 줄어드는 세대별 인구구성, 분단체제, 관료·재벌·주류언론 등 기득권 세력이 새누리당과 사실상 한 몸이라는 현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조가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는 실정이다. 야권의 거듭되는 패배에 사람들은 이제 한국 사회가 양당제도 아니고 과거 일본의 자민당 체제와 같은 1.5당 체제로 나아갈 것이라고 좌절하고 있다.
이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제1야당세력이 ‘반새누리’ 이상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계파투쟁이 격렬해지고, 유권자들이 그 투쟁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도 찾기 어렵고 계파 역시 가치를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
▲ 31일자 한겨레 2면 기사
민주화 이후, '돈'에 대항할 무언가를 못 찾았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제1야당 세력이 공유하는 가치가 ‘반독재민주화’만으로 충분했다. 1997년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교체’와 ‘경제개혁’을 내세웠고 DJT 연대라는 지역연합의 틀 속에서 간신히 승리했다. 2002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와 시민참여를 내세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때그때의 시대적 과제를 반영했을 뿐 장기적인 비전이 될 수는 없었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경제개혁’은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세웠더래도 문제가 없는 구호다. 상대당의 텃밭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지역주의 타파라면 그것은 이번에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역시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때그때의 시대적 과제로 2012년에 민주당이 내세운 것이 ‘정권교체’일 것이나 그것은 실패하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시민들에게 노골적으로 경제성장과 ‘잘 먹고 잘 살기’에 대한 판타지를 부여하는 정당이다. 그들이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기 위해 내세우는 ‘과도한 보상’이란 프레임이 잘 먹히는 이유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경제적 이득이 얼마나 누리기 힘든 쾌락이며 제로섬 게임인지를 학습하게 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 31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노골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게 다소 천박하다는 지점에서 그칠 뿐 다른 방식의 삶의 양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내세우는 것이 복지국가이지만 이 역시 새누리당 측으로부터 “공짜 점심은 없다”며 논박될 뿐이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우는 복지국가도 새누리당과 양상은 다르지만 철저하게 돈의 문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제1야당을 여당과 구별하게 해준 햇볕정책 역시 대북지원 금액의 지점에서 평가받아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결국 공존이나 공생과 같은 삶의 원리, 예산 분배만이 아니라 인권적 측면도 고려하는 새로운 복지국가의 상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앞으로도 새누리당과 경쟁하는데 버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실을 깨닫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가 누가 있을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