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매실과 하나가 된다. 초록 매실. 긴장하지 마. 난 조매실이야.”

히트송이나 국민드라마가 아닌, 참 특이한 계기로 제2의 전성기를 얻는 연예인이 있다. 후배 개그맨 이국주의 코스프레로 느닷없이 의리 열풍의 수혜자가 된 김보성. 하지만 이 사람에 비하면 김보성의 사례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무려 15년가량을 초록매실의 올가미에 얽혀있었던 조성모가 도리어 그 트라우마를 역이용해 재기의 발판이라는 기회로 삼았다. 바로 13년 혹은 15년만의 귀환이라 불리는 조매실의 재탄생이다.

조성모가 2차 초록매실 광고를 찍게 된 것은 바로 SNL 코리아의 초대손님으로 등장한 그가 풍자와 자학을 콘텐츠로 삼은 이 방송에서 그의 오랜 놀림거리였던 ‘조매실 사건’을 등한시 할 수 없었음에서 비롯된다.

어느 영리한 기획자가 아이디어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SNL 코리아 트위터에는 초록매실 광고주가 보낸 화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우리도 이럴 줄 몰랐어요…”라는 말줄임표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운 이 화환에는 ‘초록매실 광고주 드림’이라는 from이 당당히 박혀있어, 이게 실제 상황이었음을 짐작하게 해 우리를 까무러치게 했다.

초록매실 팀은 SNL 코리아에서 13년 만에 그의 트라우마를 부활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처럼 위트 있는 화환을 보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축하의 의미가 아닌 사죄의 의미를 담은 이 화환은 그저 말로만 전하는 사과가 아니었다. 초록매실 광고주는 도리어 2014년판 초록매실 광고를 다시 찍어보자는 제의를 전해 또 한 차례의 화제가 됐다.

광고주는 기업의 나이스한 이미지를 얻음과 동시에 광고가 나오기도 전에 제품이 화제가 되어서 좋고, 조성모는 오랜만에 대중에게 자신의 입지를 다지며 2차 전성기를 되새길 수 있는 데다 수입 문제마저 해결되니 그야말로 트라우마를 역이용하여 상부상조하게 된 셈이다.

트라우마마저 콘텐츠로 만든다! 조성모는 24일 방송되었던 tvN의 SNL 코리아 ‘피플 업데이트’에서 “인터뷰를 할 때 ‘매’자 얘기만 나와도 인터뷰를 거부했다. 심지어 초록색 배경으로는 사진도 안 찍었다.”는 말로 충격을 주었다. 우리가 쉽사리 던진 혐오가 당사자에게는 10년 이상을 극복할 수 없었던 상처가 되었다.

“공개적으로 말하고 나니 오히려 속이 편안하다.”라고 밝혔던 조성모의 2014년판 초록매실 광고의 주제는 이열치열 작전이다. 15년 전보다 더 느끼하게, 더 오글거리게-를 전면에 내세운 듯 한층 느글거리는 이미지로 예쁜 남자를 전면에 내세워 불태운다. 혐오를 희화화하여 도리어 블랙코미디로 둔갑시킨 것이다.

놀라웠던 것은 하얀 침대보에 싸여 예쁘게 웃으며 “널 깨물어주고 싶어.”라는, 초록매실 특유 코멘트를 날리는 조성모의 모습이 어쩜 그리 15년 전과 다름이 없는지.

생각해보면 그리 욕을 들어먹을 만한 광고가 아니었음에도 왜 그토록 조매실은 미움을 받았던 것일까. 아마도 그건 예쁜 남자를 향한 근원적인 혐오가 밑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얼굴 없는 가수로 노래 하나에 승부를 걸었던 조성모는 뜻밖에 외모 또한 귀공자처럼 잘생겨 더 큰 화제를 모았었다. 전략에 전략 하나를 더한 셈이다.

마치 색시처럼 조근조근한 말투와 수줍은 표정 등으로 여성 팬의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 조성모의 팬덤이 굳건했던 이유는 그가 드림팀에서 보여주었던 놀라운 체력과 남성미가 여성성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예쁜 남자 이준기가 영화 왕의 남자 공길로 천만 관객을 끌어안았지만 직접적으로 여성성을 상품화하는 석류 광고를 촬영한 이후 빗발치는 비호감 세례를 피하지 못했던 사례를 떠올려 봐도, 남성미를 완전히 내버린 ‘예쁜 남자’를 향한 근원적인 혐오는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예쁜 남자 컨셉을 지탱할 수 있는 전략은 어디까지나 팽팽한 남성미의 끈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치마 입은 남자 김원준이 파워풀한 댄스와 왕자님 같은 가사로 나머지 축을 지탱했던 것처럼 한 통신사 광고에서 주크박스에 앉아있던 강동원이 예쁜 남자의 이미지 외에 여심을 잡는 남성미 또한 동시에 갖추었다는 사례를 돌이켜 볼 때 예쁜 남자 전략은 잘 이용하면 약이 되지만 온전히 그쪽으로 치우치면 혐오가 된다.

조성모에게 13년간의 트라우마를 안긴 초록매실 광고는 분명 전략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15년 만에 돌아와 트라우마마저도 콘텐츠로 내세운 2014년판 초록매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잘 만든 전략의 끝판왕이라 부를 수 있을 터이니 이 바닥은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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