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노다메의 주인은 분명 따로 있었나 보다.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노다메 칸타빌레, 한국판 제목 칸타빌레 로망스의 노다 메구미 캐스팅이 돌고 돌아 배우 심은경에게 안착했다.

심은경은 한국판 노다메 캐스팅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가상캐스팅 1위에 빛나던 인물이다. 거론 초기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그녀지만, 동시간대에 촬영하는 영화가 있어 정중히 거절하며 심은경표 노다메는 무산되려나 싶었다.

이후 연예계를 뒤흔든 노다메 지론은 다소 얄미울 정도로 한국 여배우들을 점검하고 또한 평가했다. 심은경과 비슷한 기대치로 관심을 모았으나 역시 무산되고야 말았던 아이유, 안쓰럽다 싶을 만큼 거의 사회 현상 수준으로 비난을 들었던 소녀시대의 윤아.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 것이다. 이걸 보면 무슨 짓을 해도 반지의 주인은 다 따로 있나 싶다.

윤아 캐스팅을 향한 불만이 워낙 컸던 탓인지 어부지리로 심은경 노다메는 큰 호응을 받게 되었다. 물론 심은경의 노다메를 기대하게 되었던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깊은 연기 내공을 가진 아역 배우 출신의 심은경은 이미 흥행 대박 영화 ‘수상한 그녀’의 여주인공으로 그녀만의 개성과 관객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심은경은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소녀의 얼굴에 할머니의 영혼을 가진, 나문희의 청춘을 연기했다. ‘어린 신부’의 문근영이 그랬던 것처럼 거의 심은경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수상한 그녀’에서 그녀는 A부터 Z까지 가진 자신의 매력을 엑기스 뽑아내듯 차례차례 선보였다.

특히 94년생이라는 어리디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마치 변사의 호령 같은 구성진 말투는 묘하게 할머니풍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품의 생동감을 더했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흥행 척도는 심은경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할머니를 연기해주느냐에 달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티즌의 그 까다롭기 짝이 없던 노다메의 기준이 심은경에게만큼은 너그러웠던 이유는 탄탄한 연기력과 그녀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발랄한 개성이 엽기적인 4차원 소녀 노다메를 맡기기에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막상 뚜껑을 열고나면 심은경마저 가혹한 노다메 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우려가 앞선다.

노다메의 벽이 이토록 완고한 이유는 이미 이 작품을 그 이상으로는 해낼 수 없게 제대로 그려낸 우에노 주리라는 배우의 노다메 바이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 배우 우에노 주리는 이른바 만화 말투라 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입으로 내뱉고 만화 속 포즈를 그대로 흉내 내도 신기하리만큼 어색하지 않은 노다메의 대가였다.

우에노 주리가 표현한 노다 메구미의 완성도는 오히려 원작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보다 뛰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까탈을 부릴까? 싶어 의아스러워도 일단 노다메 칸타빌레 속 우에노 주리의 연기를 보고나면 이토록 가혹한 노다메 기준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만큼 그녀의 표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판국에 한국 배우 심은경이 아무리 그럴 듯하게 우에노 주리를 흉내 낸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성에 찰리가 없다. 이미 우리는 노다메의 최대치를 감상했기 때문이며 아무리 똑같이 베껴낸다고 해도 이미테이션은 이미테이션일 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심은경이 목표로 삼아야 할 노다메는 우에노 주리의 노다메가 아니라 심은경의 노다 메구미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분명 잘 만든 교본을 참고는 해야겠지만, 결코 우에노 주리가 심은경의 바이블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우에노 주리의 노다메가 심은경의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결국 흉내 내기나 코스프레에 그칠 뿐이다. 큐빅이 발버둥을 친다 해서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는가?

차라리 필자가 기대하는 것은 우에노 주리의 엽기적인 4차원 캐릭터 표현력이 아닌, 자신의 벽을 깨지 못하던 한 소녀의 성장기를 보다 성숙하게 그려낼 심은경의 연기력이다. 노다메는 뜻밖에 참 슬픈 캐릭터다. 타고난 천재성을 갖고 있지만 일상에 취해있었던 그녀는 극도로 변화를 두려워해 스스로 만든 우물을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을 기다리는 세계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 노다메가 또 하나의 천재 치아키 선배를 만난다. 그의 천재성을 동경하던 마음은 곧 두려움이 되어 혹여 이 사람을 세계에 뺏길까 번민하게 한다. 자신의 천재성을 일상의 편안함과 맞바꾸기 싫어 그저 세계를 외면하기만 했던 노다메. 비행기 사고 트라우마로 일본을 빠져나갈 수 없었던 치아키.

두 천재가 서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아름답게 성장한 순간. 자신의 품을 빠져나가려 하는 치아키에게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쳐주는 노다메의 크레딧 롤은 이 드라마의 집대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면이었다.

심은경이 기억해야하는 것은 노다메가 그저 엽기적인 캐릭터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엽기적이고 만화 같은 이미지만을 기억해서는 영영 우에노 주리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차라리 노다메가 가지고 있는 그 이상의 성장드라마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그 이상의 감동을 선물하는 것이 심은경표 노다메를 기억시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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