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청해진해운회장의 아들 유대균씨는 은신을 하면서 치킨을 먹었는가 만두를 먹었는가 해산물을 먹었는가. 유대균씨는 과연 태권도심판 박모 여인과 함께 은거하며 무슨 일을 벌였는가. 적어 보기만 해도 세월호 보도 참사나 공익성과는 무관할 이런 질문들이 종편방송에 횡행하고 있다. <채널A>가 유대균씨가 검거 전날 ‘뼈없는 순살치킨’을 시켜먹었다고 ‘단독’을 내니, 질세라 <TV조선>은 “나는 치킨을 싫어하고 해산물을 좋아한다”라는 유대균씨의 증언으로 ‘단독’을 친다.

‘단독’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저널리즘의 앙상한 몰골에 대해 진보언론 뿐만 아니라 일부 보수언론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30일 <중앙일보>는 30면 양선희 논설위원의 <언론부터 정신 차리자>란 제목의 칼럼에서 종편 방송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
▲ 30일자 중앙일보 30면 기사
양선희 논설위원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일부 종편의 뉴스 프로그램만 살짝 보자. 뉴스는 유대균과 박수경이 덮었다”라며 종편 뉴스 프로그램을 직접 언급하면서 “그들은 전문성이 아닌 추측, 팩트가 아닌 상상에 근거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수다’를 요즘 애들 말로 ‘입으로 털기’에 바쁘다. 명예훼손과 성희롱의 경계를 넘나든 건 말할 나위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30일 <국민일보> 23면에 실린 [친절한 쿡기자] 코너의 김민석 기자도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박수경씨와 유씨가 검거된 25일 이후로 수많은 가십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종편을 비롯해 일부 언론들은 ‘뛰어난 미모’ ‘연인설’ ‘살찐 이유’ 등을 들추며 누가 더 선정적인가를 두고 겨루더니 이제는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는 내용을 크게 부풀려 ‘특종’이라고 말합니다. 29일 TV조선이 ‘유대균은 치킨을 싫어 한다’고 반박하고 나서면서 ‘치킨 주문’을 두고 진위 맞대결까지 펼쳐진 웃지 못할 상황이네요”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은 피의자 인권과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 보도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양선희 논설위원은 “한 예로 대부분의 언론은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파괴했다. 일반 피의자 얼굴은 공개해선 안 된다. 한데 박수경은 수갑 찬 손까지 그대로 노출시켰다. 언론이 여기서 지적했어야 하는 건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포토라인 앞에 내던진 수사당국의 무책임이었다”라며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유대균·박수정의 사생활에 관한 추측이 아닌 수사당국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양선희 논설위원은 “유병언과 유대균이 중요한 건 그들의 사생활이 아니라 ‘세월호 사건’의 주요 피의자이기 때문이다 (...) 물론 1차 책임은 유병언에게 있다. 배를 불법 증축하고 과적을 조장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런 불법이 우리 바다를 누비도록 환경을 조성한 당국과 어린 생명들이 수몰되는 순간에도 멀뚱멀뚱 구경만 했던 해경의 책임이 그보다 더 가볍지 않다”며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유씨 일가로 몰아가는 행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양 논설위원은 “유병언은 죽었다. 이런 정국에 언론의 할 일은 죽은 유병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미모의 태권도 심판에 대한 말초적 관심을 부추겨 정부가 적폐와 책임을 슬쩍 비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국민일보> 김민석 기자 역시 “10년 전만 해도 단독 혹은 특종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볍지 않았습니다.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이유이자 평생을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기록이었습니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은 아직도 의혹으로 남았습니다. 이럴 때 진실을 밝히는 특종이 터진다면 그 어느 누가 ‘기레기’라고 욕할 수 있을까요”라며 세태에 대한 비판을 마무리지었다.
▲ 30일 국민일보 온라인 기사 캡쳐 사진
양선희 논설위원과 김민석 기자의 견해엔 더 보탤 것도 없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일부 종편 방송들의 보도행태가 결코 탁월한 지성을 가져야 인지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 이미 ‘한국 사회 노년층의 포르노’가 되어 버린 <TV조선>과 <채널A>의 모습은 쇠붙이만 먹으며 거대해졌다는 ‘송도 말년 불가사리’의 일화를 연상시킨다. 유대균씨가 닭을 먹는지 만두를 씹는지 해산물을 즐기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익적 기능 없이 ‘쇠붙이만 쳐먹으며’ 사회를 어지럽히는 저 두 ‘불가사리’(不可殺)를 어떻게 처지할지에 대해 중지를 모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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