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방송사들을 저마다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특집뉴스를 선보여 그날을 돌아보았다. KBS는 <KBS 파노라마>를 통해 24~25일 이틀 간 기획물을 내보냈다. 25일 방송된 <고개 숙인 언론>은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오보와 선정적인 보도로 드러난 ‘언론의 민낯’을 다뤘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묵묵히 진실을 기록하고 있는 독립 PD 집단 ‘416 기록단’(뉴스타파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등 제작)의 임유철 PD가 <KBS 파노라마-고개 숙인 언론> 편을 보고 리뷰를 보내 왔다.

▲ 지난 25일 방송된 'KBS 파노라마 - 고개 숙인 언론'

KBS가 자사 보도에 대한 반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다. 우리 416기록단도 언론보도에 대한 취재를 해왔고, 언론이 왜, 어떻게 오보를 생산하게 되었는지, 현장 기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만약 KBS가 스스로 반성을 제대로 한다면, 우리가 취재한 내용과 영상은 그냥 묻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KBS 파노라마>를 시청하면서 초반 5분 만에, 시청을 멈추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다큐를 끝까지 봐야만 비판을 하든 칭찬을 하든 판단할 수 있기에, 최대한 끝까지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힘든 관람이었다.

<KBS 파노라마-고개 숙인 언론>은 반성 프로그램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주 정중하게 보아도, 이건 변명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어디에도 자사 보도의 반성은 없었다. 그저 이 정도 미안함을 표시하면 반성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으로 읽혔을 뿐이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던 ‘고장난 재난주관방송사’

KBS는 재난주관방송사다. 때문에 재난 발생 시에 많은 시청자들이 KBS로 채널을 돌린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세월호 구조인력 중 KBS TV 및 라디오를 시청한 사람은 상당했다. 문제는 KBS의 뒤늦은 오보로 이들 구조인력이 모두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전달받은 효과가 발생했다는 데 있다.

KBS의 오보는 모든 구조인력을 3~4시간 동안 가만히 대기하게 만들었다. 재난 시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 왔던 재난주관방송사가 세월호 참사 때는 고장이 났다. 그런데도 KBS는 반성 프로그램에 이런 내용을 담지 않았다.

▲ KBS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타 방송사에서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가 정정된 이후에 뒤늦게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그뿐만 아니다. KBS는 17일부터 사고해역에 유일하게 배를 정박하고 현장을 24시간 기록할 수 있는 특혜도 부여받았다. 현장에서 구조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KBS의 뉴스에서는 오랫동안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KBS 파노라마>는 여타 언론의 오보에 편승하며 변명만 나열했다. 다른 언론도 오보를 생산했다며 이번 참사 보도에 두각을 나타낸 JTBC와 <한겨레>를 오보 진원지에 끼워 넣었다. 소설을 써 냈던 종편은 언급하지 않았다. 기계적 중립으로 본질을 흐린 셈이 됐다. 여타 언론도 이러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인가?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목적이 반성인지 변명인지 되묻고 싶어지는 지점이다.

416 기록단이 취재한 KBS 현장 기자들의 증언에는 KBS가 오보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실히 드러났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항의 이후 기자들이 반성문을 쓰고, 보직을 그만 두고, 양대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 결국 사장이 교체됐다. 그러나 새 사장이 취임한 지금까지도 오보를 생산하는 구조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KBS 오보 시스템은 여전히 가동 중인 것이다.

희생자 가족의 항의 방문이 있던 밤, KBS 기자와 PD 어느 누구도 가족들 곁에서 함께 하지 않았다. 그저 먼발치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증언이 인터넷에 떠돌 뿐이다. 이후 KBS 기자들이 로비에 모여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능욕을 반성했지만, 이들 젊은 기자들의 피눈물은 방송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이들의 눈물이 KBS를 공정보도로 이끌어 갈 생명수가 아닌가?

현장과는 다른 보도에 유가족들의 적대감이 높아져, KBS 기자들은 팽목항에서 자사 로고가 박힌 옷을 벗고 사복 차림으로 취재를 했다. 젊은 기자들이 게시판에 양심선언을 할 때, 오히려 팽목항에서 KBS 기자를 만나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했다. 희생자 가족의 항의가 있고 다음날, 방송사의 상징인 중계차를 팽목항에서 안전한 진도군청으로 철수시키기도 했다.

KBS 기술담당 직원들이 팽목항과 5분 거리에 있는 국립국악원을 숙소로 사용해, 수시로 팽목항을 오가야 할 실종자 가족들이 30분 거리의 진도체육관에서 머무른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 역시 <KBS 파노라마>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것을 반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방송에 등장한 KBS 직원들은 모두 자신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 상황에 놓인 미안함만을 말한다. 마치 국정조사에 나온 정부 측 증언을 보는 것 같았다.

같은 현장에 있었고, 같은 사안을 취재했다. 그래서일까. 최종적으로 결과가 판이하다고 해도 적어도 그 현장에 함께한 사람들끼리 느끼는 어떤 동지애 같은 것이 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눈과 귀는 같은 것을 보고 들었고, 취재 환경은 똑같이 열악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했던 누구라도 고생했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싶은 맘이 든 이유다. 그런데 <KBS 파노라마>는 그런 마음조차 달아나버리게 만든다. 정말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는 걸까? 아님 이 정도만 하자는 것일까?

가감 없이 현장을 기록한 다큐가 지상파에서 나올 수 없는 이유

<뉴스타파>의 세월호 100일 특집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를 본 많은 사람들은 "잘 보았다"거나 "고맙다"는 등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동시에 이런 인터넷으로 이런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질책을 하기도 했다. 왜 지상파로 방송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게 하지 않았느냐는 일종의 ‘항의’였다. “다음에는 지상파(편성)를 잡아 줄 테니, 2편은 지상파에서 방송하자”는 무모한 자신감을 보이는 시청자도 있었다.

<뉴스타파>는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제작에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했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지상파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기획부터 취재, 영상 편집, 대본 작성 등 모든 부분에서 프로그램 책임자가 ‘시사’라는 명목으로 관여하기 마련이다. 어찌 됐든 그들의 ‘채널’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걸고 방송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다큐의 목적은 약화되거나 달라진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른들을 믿고 기다리던 아이들은 그렇게… 차디찬 바다 속으로 잠기고 말았다”와 같은 표현이 “하나라도 더 구조하고 싶었지만, 세월호는 생각보다 빨리 침몰되었다. 해경도 넘어가는 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부실한 세월호는 아이들을 차디찬 바다에 가두어버렸다”로 윤색되는 식이다. 이런 경우는 흔하다.

똑같은 영상이 나가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내용은 180도 바뀐다. 이런 식으로 ‘다듬어지는’ 다큐는 세월호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게 된다. 방송사 입장에선 당연한 ‘시사’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의미다. 제작진을 깊이 신뢰했거나, 제작에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뉴스타파>는 모든 것을 제작진의 자율에 맡긴 것이 아닐까.

▲ 24일 방송된 뉴스타파 -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

또한 우리 제작팀의 명제인 ‘가족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결과물도 내보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상파가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방송사 간부들보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더 우선시하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416 기록단의 취재물은 채널에 따라 다른 질감으로 방송됐다. 기록한 주체는 같지만 <뉴스타파>의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과 MBC <다큐스페셜>의 <세월호 100일, 사랑해 잊지 않을게>는 내용이나 분위기 모두 확연히 달랐다.

<세월호 100일, 사랑해 잊지 않을게>는 MBC에서 방송된 까닭에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은 한 번도 언급되지 못했다. 더구나 <다큐스페셜>은 성향을 문제 삼아 PD가 갑자기 교체되는 등 방송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MBC라는 채널을 통해 세월호 100일 특집을 방송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라는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 지상파 방송사의 한계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까.

선수가 선수에게 묻는다… “과연 이게 최선인가”

다시 <KBS 파노라마>의 얘기로 돌아가자. 기대했던 <KBS 파노라마>는 결과적으로 최소한의 면피도 못할 정도의 ‘반성 프로그램’을 내놨다. 애초에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장급 이상이 매달려도 만들기 어려운 자사 반성 프로그램을 평PD가 제작했으니 말이다.

자사 부장과 보도국장 등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반성 프로그램에는 정작 오보 양산에 기여한 간부들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로비에 모여 반성의 눈물을 흘리던 젊은 기자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만들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KBS는 스스로 거듭날 좋은 기회를 잃어버렸다.

같은 내용을 취재하고 다큐를 만드는 입장에서, 다른 제작진의 결과를 이렇게 함부로 폄하하는 것이 예의 바른 행동이 아니라는 건 안다. 이런 글이 명백한 잘난 척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도 안다.

하지만 세월호에 대한 언론의 반성과 자정 노력은 피눈물을 흘리며 진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썼다. 내가 아는 한 <KBS 파노라마>는 지상파를 대표하는 다큐 프로그램 중 하나다. 우리 독립 다큐PD들 이상으로 다큐를 잘 만드는 ‘선수들’이란 말이다. 그래서 선수가 선수에게 따져 묻는 것이다. 과연 이게 최선인가, 하고 말이다.

▲ 세월호 유가족 정혜숙 씨는 "언론은 처음부터 잘못했지 않느냐.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진실을 밝히는 데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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