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은 서울 동작을과 경기 수원정(영통) 두 군데에 후보를 냈다. 수원정에 나온 정진우 후보는 출마 결심 당시 세월호 참사 추모 6.10 만인대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었다. 출마 결심을 한 정진우 노동당 후보는 '옥중출마'를 선언한 이후 보석 석방된다. 정진우 후보가 '삼성의 심장' 수원 영통에서 무엇을 하려는지에 대해서, 수원의 영통구 주민 최하나씨가 정진우 후보 선본을 통해 글을 보내왔기에 게재한다.

“재벌 기업 구조 해체, 삼성을 국민의 품으로!”

“기호 5번 정진우, 삼성을 사회화하겠습니다!” “재벌 기업 구조 해체, 삼성을 국민의 품으로!” 지난 24일, 삼성전자 앞에서 이색적인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당선을 바라는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운동이라고는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삼성과 맞서겠다고 내건 후보가 있다. 노동당 부대표인 정진우 후보다. 정 후보는 삼성의 사회화를 내세우며 속칭 ‘삼성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수원 영통에 출마를 선언했다.
수원 영통구 가운데에는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삼성디지털시티가 위치해있다. 아침마다 삼성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 수만 해도 결코 적지 않다. 이곳에 정 후보가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마 결심 당시, 정 후보는 세월호 참사 추모 6.10 만인대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었다. 그래서 정 후보의 ‘옥중출마’ 이유는 정 후보 없이 진행된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선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인간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의 한복판에 삼성이라는 거대한 문제가 존재하며, 삼성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정 후보 측의 주장이다.
▲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없애기 위해 삼성과 맞선다’ 현수막을 들고 선거유세 중인 노동당 정진우 후보 (노동당 정진우 후보 선본 제공)
삼성의 문제는 곧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할 만큼, 한국사회에서 굵직한 문제 중 삼성과 닿아있지 않은 것은 찾기 힘들다. 삼성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문제를 열거하자면 비정규직, 간접고용, 야간노동, 무노조, 산업재해, 불산 유출, 기름유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편법상속, 정경유착 등 그야말로 산적해있다.
실제로 올해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고용형태고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우 비정규직/간접고용 비율이 20%가 넘는다. 또 삼성전자서비스 같은 경우 고용형태고시에서조차 전국 176개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1만 명에 달하는 하청업체 서비스기사가 빠져있고,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와 직영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만 포함되어 비율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정 후보의 공약은 삼성을 비롯한 재벌 대기업에 일상화된 비정규직/간접고용, 야근 등 ‘나쁜 일자리’를 없애겠다는 것에 집중되어있다. 영통구 곳곳에 걸린 “간접고용, 비정규직 없애기 위해 출마 했습니다”는 현수막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 정 후보는 삼성의 사회화를 주장한다. 삼성과 같은 재벌 대기업이 소수 총수 일가와 투자자가 아닌,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품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이윤은 위로만 가고, 위험은 아래로 향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정 후보가 세월호 참사 투쟁에서 함께 외쳤던 “이윤보다 생명을”, “이윤보다 인간을”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글로벌 일류 기업’의 이면
출마 이후 보석 석방된 정 후보는 지난 24일을 ‘삼성 집중의 날‘로 잡고, 수원 영통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궂은 날씨에도 선거운동원들은 ‘삼성 사회화’ 피켓이나 야근과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피켓을 들고, 명함을 뿌리며 정문을 오가는 노동자들에게 호소했다. 삼성에서 나오던 한 이주노동자가 무슨 일인지 물으며 이 메시지를 잘 퍼뜨리겠다고 약속하는 일도 있었다.
삼성 앞 유세 발언은 용혜인 공동선대위원장(“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백혈병 피해 유족 정애정 씨, 한솔그룹 해고 노동자 정택교 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1996년 징계 해고를 당한 뒤 노조설립을 위해 삼성과 싸워왔으며 삼성으로부터 고발, 투옥되기도 했다. 정애정 씨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민웅 씨의 아내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 정택교 씨는 20년간 삼성에서 일하다가 외주화 과정에서 근무처를 옮기고 부당 해고당한 후 지금까지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 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의 이면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이날 삼성일반노조의 김 위원장은, 오가는 삼성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줄 든든한 버팀목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또 백혈병 피해 유족 정 씨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로 싸우면서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손가락질하며 비웃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삼성이 변해야 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이런 상식적인 공약을 많이 내놓는 후보들이 정진우 후보를 시작으로 생겼으면 좋겠다”고 지지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 삼성디지털시티 앞 선거유세에서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유족 정씨(왼쪽)가 정진우 후보(오른쪽)과 함께 발언하고 있다. (노동당 정진우 후보 선본 제공)
삼성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삼성과 날을 세우는 후보는 많지 않다. 제1야당은 물론 진보정당의 후보들도 삼성 문제에 대해 두루뭉술 넘어가거나 아예 언급을 꺼리는 편이다. 삼성백혈병의 진실이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치권과 언론의 외면이 있었는지가 이를 말해준다. 그만큼 삼성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 그리고 삼성이 사람들에게 구축해 놓은 이미지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언론은 이번에도 삼성과 맞서겠다는 정 후보의 메시지를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정 후보가 군소진보정당인 노동당의 후보인 점도 있지만, 광고 등을 통해 삼성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언론이 정 후보의 행보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추측 또한 가능하다.
정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는 “그래도, 희망”이다. 정 후보는 오늘도 ‘삼성공화국’에서 ‘그래도, 희망’을 전하기 위한 작음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이를 통해 7.30 재보궐 선거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득표를 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도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고질적인 비정규직/간접고용 문제나 산업재해 문제 등이 결국 정치적인 문제임을 호소하는 것이 관건인데, 삼성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이슈화조차 현실의 여러 조건에 가로막힌 상황에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여전히 삼성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로 거듭나는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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