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조대현 사장이 28일 공식 취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격랑의 시기를 보낸 공영방송 KBS에 '낙하산'이 아닌(!) 신임 사장이 임명됐다는 점에서 조 신임 사장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중앙일보>는 29일자 <조대현 KBS 사장이 가야할 ‘공영의 길’> 사설을 통해 “신임 사장이 진정으로 공영다운 공영방송을 원한다면 적어도 두 가지 과제는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며 “하나는 국내 최대 방송사에 걸맞은 저널리즘의 틀을 확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영방송과 다른 공영방송의 경영 기조를 세우는 일”이라고 주문했다. KBS 신임 사장에 대한 원론적인 수준의 요구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민영방송'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장 '쎈' 언론사 가운데 하나인 <중앙일보>가 하는 주문이라 '덕담'으로만 볼 순 없다.

중앙일보, ‘또’ KBS 문창극 보도 문제삼아…“바로잡으라” 주문

분석할 것도 없이 <중앙일보>사설은 본색을 감추지 못한다. 중앙이 문제를 삼은 부분은 KBS의 문창극 전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교회강연 보도였다.

<중앙일보>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보도는 저널리즘 기본 원칙을 외면했다는 비난에 휘말렸다”며 “당시 각계 인사 400여 명은 성명에서 ‘KBS가 교회 강연의 일부만 인용해 (문 후보자를) 친일·반민족으로 몰아간 것은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너무나 중대한 잘못’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KBS 내부에서는 별다른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 사장은 이런 문제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7월 29일자 '중앙일보' 사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앙일보>가 인용한 각계 인사 400여 명의 성명의 실체이다. 해당 성명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대표적인 극우·보수단체들 중심이다. 권신웅 어버이연합홍보국장, 서경석 선진화시민행동상임대표, 이상진 반국가척결국민연합상임대표, 이계성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공동대표, 김춘규 자유민주국민연합상임대표, 김정수 바른교육전국연합대표 등이다. 대표적 뉴라이트 인사 조전혁 전 의원과 자신의 SNS를 통해 일베사이트 링크해 ‘차일베’라는 비난을 자초한 차기환 방문진 이사도 포함됐다.

해당 성명에 어떠한 성격의 인물들이 동조하고 있는지에 대한 소개 없이 단순히 ‘각계 인사 400명’이라고 뭉뚱그리는 것 자체가 <중앙일보>가 KBS에 제기하는 ‘짜깁기 왜곡’과 무엇이 다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상업광고 빼면 KBS는 온전한 공영성을 확보하나?

<중앙일보>의 훈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KBS에 공영방송다운 공영방송을 주문했다. 이 또한 원론적인 수준에서야 옳은 말이지만 <중앙일보>의 논조는 뭔가 앞뒤가 뒤섞여 있다.

<중앙일보>는 “KBS는 지금까지 공영과 민영 사이를 오가며 어정쩡한 경영 노선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영과 비슷한 포맷의 오락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상업 광고를 하면서도 수신료는 그대로 받아왔다”면서 “KBS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위해 지금의 수신료가 너무 낮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하지만 민영방송의 요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수신료만 올려달라고 하니까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앙일보>의 이에 대한 결론은 “조대현 사장은 KBS가 명실상부하게 ‘공영의 길’을 걷도록 분명한 입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상업 광고를 빼라는 말이다. KBS 수신료 인상,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KBS의 광고축소는 그동안 <중앙일보>가 끊임없이 주장했던 부분이다. KBS의 광고 축소가 <중앙일보>의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KBS는 한 달 이상의 사장 공백기를 겪었다. 그 시기 KBS는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친일사관 동영상 공개 등으로 인해 오랜만에 한국사회 여론을 주도한 매체로 '복귀'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와 유가족들의 입장 전달에 충실하려 노력했고, 삼성 무노조 경영에 대한 비판 리포트가 나가기도 했다. ‘KBS는 차라리 사장이 없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왔던 상황이지만 <중앙일보>는 역설적으로 이 시기 보도를 문제삼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명확할지 모르겠다. KBS 조대현 신임 사장에게 주어진 의무는 제작자율성 보장이 될 수밖에 없다. 부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조 신임 사장의 임기 말에는 KBS에 사장이 있는 게 더 낫다는 평가를 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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