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청해진해운, 유병언 전 회장, 구원파 관련 보도가 도배되는 것도 ‘물타기’에 가까웠다. 국가기관의 무능이 희생자 수를 늘렸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사건에서 참사 초기 해경이나 청와대 등 정부 대응을 조사해 보지 않고 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언론이 청해진해운, 유병언, 구원파로 도배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태도였다. 청해진해운은 물론 책임질 것이 있었겠지만 이 역시 국가기관의 관리감독 책임과 함께 규명되어야 할 진실이었다. 참사의 진실이 정부기관의 치부가 드러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는 판단이 섰다면, 언론은 가족대책위가 나서기 전부터 수사권과 기소권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세월호 특별법과 같은 대책 마련을 촉구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 28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원론’이 무의미한 메아리로만 들릴 만큼 참혹하다. 28일 오후까지 언론은 ‘박수경 팬클럽’이란 팬카페가 개설되었다는 보도를 100여개 이상 쏟아내었다. 청해진해운도, 유병언도, 하다못해 유대균도 아닌 박수경에 대한 이 지극한 관심을 어찌 받아들여야 되는지 모르겠다. ‘박수경 팬클럽’이 병리현상이라 진단한다면, 굳이 이 사안을 보도하는 언론은 ‘병리현상’인가 ‘변’인가.
더 기가 막힌 것은 언론의 ‘박수경 팬클럽’ 보도가 일종의 도덕적 질타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의 일반적인 형식은 ‘박수경 팬클럽’을 도덕적으로 질타하며 누리꾼들이 그것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 28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서울신문, ‘쓰레기’ 생산하고 훈계도 하다
심지어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 황색저널리즘이 원인이었다거나 그것에 대한 패러디라는 시선까지 기사화 되었다. <서울신문>은 28일 오후 온라인판에 올라온 <‘미녀쌈짱 박수경 팬클럽’ 등장? 엇나간 외모지상주의, 언론 책임은 없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그러나 이런 엇나간 동경에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 분석 및 근본적인 대책 문제를 외면하고 유병언·유대균 부자 잡기 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한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라고 썼다.
<서울신문>은 같은 날 오후 온라인판에 올라온 <‘미녀쌈짱 박수경 팬클럽’ 등장? ‘잘못된 동경’이냐 ‘황색저널리즘 풍자’냐>란 제목의 기사에선 “그러나 한편에서는 세월호 사고의 원인 분석 및 대책 마련에 관심을 두는 대신 ‘유병언 유대균 부자’ 검거 이슈만 부각되는 현실을 비꼬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박수경 팬클럽’이란 키워드가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조회수 장사’라 비판받아야 한다면 <미디어스> 기사 역시 ‘노이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신문>의 문제제기가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같은 날 오후 두 편의 비슷한 기사가 쓰여졌다는 점은 이 보도의 취지를 순수하게만 보지는 못하게 한다.
▲ 28일 오후 서울신문 온라인 기사 화면 캡쳐 사진
정작 <서울신문> 스스로 26일에 올라온 <유대균 박수경 검거, 박수경은 유대균의 여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포함하여 주말 동안 70여건의 온라인·오프라인 기사를 양산했으며 이 중에서 적어도 절반 정도 기사의 제목은 그들이 비판한 ‘황색저널리즘’ 그 자체였다. <서울신문>이 다음 이슈에선 과연 황색저널리즘을 벗어날 수 있을까. 군소매체에는 더욱 가혹한 온라인 저널리즘 환경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하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노이즈’를 생산하여 ‘어뷰징’을 일삼는 언론이 이젠 ‘훈계’까지 하는 판국이다.
경향신문은 언제까지 선정성 경쟁에 합류할 것인가
‘박수경 팬클럽’ 보도에는 주요 일간지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뿐만 아니라 진보언론으로 불리는 <경향신문>마저 합류했다. <한겨레>와 <한국일보> 정도가 금도를 지켰다. 가장 선정적이었던 것은 <동아일보>로, 이 신문은 심지어 이 보도를 8면 지면 기사에 싣는 ‘미친 짓’을 감행했다.
▲ 28일자 동아일보 8면 기사
<동아일보>가 지면에서까지 팬티를 벗었다면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경향신문>의 경우 온라인 대응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그간에도 온라인 지면에서는 사실상 진보언론으로 보기 힘든 선정성을 보여주었다. 가령 과거 SNS 등에서 지탄을 받은 2012년 9월 11일 <경향신문> 기사의 제목은 <음란비디오 보던 절도범, 성폭행 시도하다 덜미>로, 이는 <경향신문>이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송고할 때 보수언론에 맞먹는 선정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27일 오후 경향신문 모바일 화면 캡쳐사진
27일 일요일 <경향신문> 모바일판 ‘오늘의 뉴스’ 탑엔 <‘호위무사’ 박수경, 결혼 전 유대균 옆에서…>란 제목의 기사가 걸렸다. 이 기사의 내용은 사실상 박수경씨가 결혼 전 유대균의 수행비서였다는 것 뿐이다. 이 기사는 <TV조선> 등 종편의 방송 내용을 보고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타 보수언론의 '낚시 기사'와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이다.
<경향신문>의 한 평기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온라인이 신문의 미래라고 하면서, 온라인은 지면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함량미달의 다양한 기사를 걸어놔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며 <경향신문>의 온라인 대응을 비판했다.
그 평기자는 “지면에서 아무리 기사를 잘 만들어도, 온라인에서 선정적인 기사가 하루 종일 걸리면, 혹은 탑에 걸리지 않아도 그 링크가 SNS에서 돌고 돌면 사람들이 (<경향신문>이 그간) 열심히 했던 것은 다 까먹는 것이 실정인데 데스크가 이를 알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그 기자는 “온라인이 신문의 미래이며 매체의 대세라면서도 온라인에서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비판했지만… 언론은 이미 거대한 자연재해일까
<경향신문> 이외에도 다수 언론들은 금요일에 유병언 씨의 장남 유대균 씨가 검거된 후 유대균 씨와 박수경 씨의 관계를 묻는 선정적 보도를 주말 내내 지속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 보도에서도 비판이 되었다. 28일자 <한겨레>는 <참사 본질 흐리는 ‘언론 플레이’와 ‘선정 보도’>란 제목의 사설에서 “25일 잡힌 유대균씨와 그의 도피를 도운 박아무개씨에 대한 언론 보도가 길을 잃고 있다. 이들이 마치 세월호 참사의 핵심 책임자인 양 떠들썩하게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수사당국의 태도부터 여론 호도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지만, 이에 편승해 피의자의 인권을 아랑곳하지 않는 선정적 보도는 더더욱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가리는 왜곡이다”라며 언론 보도를 비판했다.
<한겨레> 사설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경영비리 의혹에서도 유대균씨는 검찰로부터 ‘곁가지’로 판단되었고, “돌아보면 유씨 일가 경영비리 수사 자체가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한겨레> 사설은 “언론은 무엇보다 유대균씨 등의 체포가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것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물었어야 했다. 그러기는커녕 일부 방송과 신문, 인터넷매체는 유씨와 박씨의 남녀관계 따위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 보도만 쏟아냈다. 박씨의 얼굴을 가리거나 익명 처리하지도 않았다. 곁가지라는 유씨를 숨긴 박씨에게 범인도피 혐의가 인정된다 해도 이렇게 공개할 만한 사회적 필요나 법적 정당성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식의 선정 보도는 언론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자해일뿐더러 언론이 추구해야 할 진실을 되레 흐리는 범죄적 행위이다”라며 비판했다.
▲ 28일자 한겨레 3면 기사

<한겨레>는 28일자 3면 기사에서도 그 기조를 이어갔다. <한겨레> 기사는 “박씨는 이날 오전 인터넷 포털업체 네이버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네이버에서 박씨와 유대균씨 이름을 넣어 검색하면 불과 24시간도 채 안 된 짧은 시간 동안 박씨에 대한 1000건이 훨씬 넘는 기사가 쏟아졌다. 도대체 우리가 왜 그의 이름에 이렇게 큰 관심을 갖는 걸까? 그가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라며 세태를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언론 참사… 방송만이 문제는 아니다
신문이 독자의 구독료가 아니라 기업 광고로 운영되는 시대, 온라인 대응은 클릭수를 끌어와야 광고가 붙는 시대의 ‘노이즈’와 ‘어뷰징’의 문제는 복수의 진보언론과 매체비평지에서 누차 지적되어 왔던 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들의 인터넷 대응은 그 자체가 ‘참사’라 봐도 무방할 만큼 흉측한 몰골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의 보도에서도 언론은 자정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자정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언론들 스스로가 말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자연재해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감마저 든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이곳저곳을 수습해야겠지만 그중 큰 부분이 언론이란 사실이 또 한번 확인되는 부분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 문제가 되는 것은 공중파방송이나 종편 뿐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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