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집수렵사회인 구석기 사회에선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보통 일주일에 열일곱 시간을 노동했지만 농경사회에서보다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았다. 농경사회의 사람들은 18~19세기가 되어서야 구석기 시대의 조상만한 신체적 크기와 수명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이클 폴란, 잡식 동물의 딜레마 중에서)

인류사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인류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진보해왔다는 것이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후 이른바 '농업 혁명'이라고 평가할 만큼 생산물의 획기적 증대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산물의 증가는, 생산물의 불균등한 분배와 함께 탄수화물군에 치우친 인간 식생활의 편향을 낳았다. 오늘날 인간 문명이 가진 가장 부조리한 모순과 폐해, 부의 불균등한 분배와 편중된 식생활로 인한 건강 이상은 올곧이 농업 이후의 역사에 그 책임을 넘겨야 한다.

EBS스페셜 프로젝트는 위험 적신호에 빠진 7명의 사람들을 원시 구석기 시절로 회귀시켜, 그들의 건강을 구하고자 한다. 7월 3일부터 24일까지 방영된 '구석기인처럼 먹고살기'는 매주 목요일 4부작에 걸쳐, 현대 비만인의 구석기식 생존기를 보여준다.

살이 너무 쪄서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창피해 점점 더 방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히키코모리' 상태의 132kg 30대. 살이 찐 후 근무 시간에 자꾸 졸아서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던 109kg의 30대 남자. 살이 쪄서 아기가 생기지 않는 36살의 여자까지, 20대에서 60대까지 비만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7명의 참가자가 뽑혔다. 당뇨, 지방간, 고지혈증에 시달리는 그들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잠시의 체중 감소 후에 오는 그 이상의 요요 현상 등 계속되는 시도와 실패는,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었고 우울증까지 동반된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구석기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7명의 출연자들은 필리핀 팔라완 섬의 타투바투족 마을로 간다. 가는 데만 꼬박 2박3일이 걸린 이곳 필리핀 정글에서 그들은 ebs판 '정글에서 살아남기'의 주역이 된다.

20일간의 구석기 생활 체험의 요체는 곡류와 소금의 제한이다. 채집과 사냥에 의존했던,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구석기인들처럼 그들도 사냥을 하고 채집하여 수확한 채소와 살코기는 허용된 반면, 그 이외 가공된 양념과 곡류는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허용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한 끼의 식사 외에 정글에 던져진 이들은 스스로 먹거리를 구해서 생활해야만 했다.

스스로 먹거리를 구해야 하는 여정에서 당연히 곡류는 얻어질 수 없다. 하루 종일 정글을 뒤지고 얻어낸 것은 몇 개의 열매와, 하다못해 박쥐 고기조차 반가울 정도의 육류이다. 참가자들은 평소 체중 때문에 움직이지도 않았던 몸을 이끌며 먹거리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먹거리를 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도시의 거리조차 걷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몸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기 십상인 습한 필리핀 정글에서 더욱 애를 먹는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던 에너지원 탄수화물이 고갈되자 사람들은 어지럼증, 구토 증상을 호소하고, 신경조차 예민해져 함께 생활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적 상황까지 빈번하게 드러난다.

그 중 누군가가 포기하는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여섯 명의 출연자들은 조금씩 구석기식의 정글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체중과 허리둘레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그 중 복부 비만도 여부를 보여주는 허리둘레의 감소가 눈에 띤다. 아직 획기적인 몸매의 변화는 없지만, 놀라운 것은 다이어트를 통해서도 쉽게 감소되지 않던 내장 지방이 먼저 연소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7일간의 성공적인 구석기 체험을 겪은 여섯 명의 참가자들은 다시 두 팀으로 나뉜다. 필리핀에 남아 구석기 생활을 영유하는 팀과, 한국으로 귀국해 구석기처럼 생활하는 팀으로 생활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귀국하여 구석기처럼 생활한 3명의 참가자들은 그 이전에 비해 체중 감소가 한층 둔감해졌다. 제 아무리 구석기인처럼 생활한다 하여도, 마트에서 음식을 골라 조리를 하게 된 이들이 결국 소금 등의 양념을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필리핀에서처럼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정글을 누비던 것과 달리, 활동량 역시 한결 줄어든 것도 체중 감소의 정체를 불러왔다.

하지만 단 7일 간의 구석기 체험으로 변화된 3인은, 체중의 정체 사실을 알고 스스로 노력하기에 이른다. 조금 더 많은 신체적 움직임을 위해 주변 농장 등을 찾아가 일하기를 자청했고, 거리에서 맛본 음식에 경탄을 거듭한 것도 잠시 다시 본연의 구석기 식단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필리핀에 남은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어부의 가정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고기를 잡고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한 이들이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갖은 양념을 한 음식은 손도 대지 않고, 오로지 익힌 고기와 각종 과일만으로 한 끼를 때운다.

그 결과 여섯 명의 출연자들은 체험 첫날 측정된 각자의 몸무게에서 한결 줄어든 몸무게는 물론, 그들을 괴롭히고 있던 각종 병적 증상이 한결 감소된 평가를 받아들게 되었다. 또한 길지 않은 체험을 통해, 탄수화물과 소금이 제한된 식사를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탄수화물이나 각종 양념이 들어간 음식이 맛있는 건 알지만, 거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필리핀 정글을 누비고 농장 체험을 하면서 출연자들이 삶의 자존감을 되찾았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정글을 누비며 먹거리를 얻어내던 수확의 기쁨, 걷기도 힘들던 사람들이 자신의 터전을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것이 버거웠던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 나가면서 여느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특훈과는 다른, 인간적 자존감을 회복해 간다. 더구나 주어진 다이어트 식단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먹거리들을 통해 익숙해진 구석기 식단은, 다이어트와 요요를 반복하는 여느 다이어트 프로그램과 달리, 탄수화물과 소금기가 없이도 생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해준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구석기인처럼 먹고 살기 역시 고도 비만 출연자들의 체중 감소를 가져온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함의는 깊다. 현대인들의 왜곡된 식생활의 시초가 어디였는가를 짚어보며, 그 문제점의 해결에 프로그램의 관점을 놓치지 않았고, 현대식의 병리학적 다이어트가 아니라 자력갱생 프로그램을 운용했다는 점이다. 스스로 정글을 뛰어다니며 자신의 삶을 개척했던 그 며칠간의 시간이, 무기력했던 출연자들에게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뿐만 아니라 삶의 자신감을 되찾아 주었다.

내장 비만에서부터 획기적으로 변화된 출연자들의 신체 조건에서 보이듯, 살과의 전쟁이 아니라 사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우리 사회 비만과의 전쟁의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구석기인처럼 생활하기'는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 DNA는 바로 구석기 시절, 그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구석기인처럼 생활하기는 다이어트를 위한 편의적 선택이 아니다. 바로 인간 본연의 환경에의 회귀, 본향에의 복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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