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의 사퇴로 촉발된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의 선거연합이 보수언론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5일자 <조선일보>는 <野 또 후보 맞교환 거래, 아예 정치 장사꾼으로 나섰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두 당 사이에 수도권 선거구를 놓고 2대1 맞교환하는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라면서 “유권자를 손톱만큼이라도 무섭게 안다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비판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 25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같은 날 <중앙일보> 역시 <유권자 우습게 보는 기동민·천호선>란 제목의 사설에서 “유권자 선택권과 정당정치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추악한 야합’이 아닐 수 없다”라면서 “자신의 가치로 승부하지 않고 상대방을 떨어뜨리는 게 최상의 목적인 미움과 부정의 정치문화가 또 활개치게 됐다”라고 비판했다.
또 <동아일보> 역시 <결국 기동민 사퇴로 막 내린 새정치식 전략공천 쇼>란 제목의 사설에서 “24일까지 야권연대가 안 되면 사퇴하겠다고 ‘셀프 단일화’를 선언했던 노회찬 정의당 후보의 정치적 승리이자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사실상 패배다”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그나마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단일화 자체를 비판한 다른 보수언론 사설보다는 말이 되는 얘기를 했다.
▲ 25일자 중앙일보 10면 기사
난감한 것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에 대한 비판이 대중이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들은 정당정치의 신봉자가 되어 무조건적인 독자 완주를 주문한다. 이를테면 정의당이 새누리당보다도 오른쪽인데 새정치민주연합과 연합했다면 그런 비판의 내용이 조금은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의 정책적 거리가 새누리당과 기타 정당의 그것에 비해 가깝다는 게 아닌가. 핵심은 새누리당 같은 독재정권 세력을 계승한 극우파 정당이 ‘조중동’처럼 그것을 옹호하는 신문들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상당수 유권자들이 그들을 지지한다는 데에 있다. 이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라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데 갑자기 수준높은 정당정치를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당리당략을 드러내는 것 밖에 안 된다.
▲ 25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만일 야권단일화가 꼼수라면 새누리당과 조중동의 존재 자체가 꼼수일 것이다. 조중동은 나꼼수와 같은 대안언론과 SNS를 비판해왔지만 문제의 핵심은 주류언론이라는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이 ‘SNS 괴담’과 비교해도 차별성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일 테다. 그들은 야권단일화를 구태정치로 몰고 가지만 야권단일화는 기껏해야 2002년 이후 12년의 수명을 가진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구십년도 더 된 언론이다. 과연 그들에게 구십년을 지탱할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에게 비판할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선 야권연대의 원칙이 불분명하다거나, 정의당 같은 온건좌파들을 당내에 끌어들일 전략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정의당에 대해선 제 진보정당들과의 연대보다 권력을 배분할 수 있는 제1야당과의 협상에만 치중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야권연대가 필요하지 않을 선거제도의 개편이겠으나 이는 진보정당들이 언제나 말해왔던 바다.
‘조중동’이 그토록 허접스러운 근거로 야권연대를 물어뜯는다면 그들에 대해선 왜 너희들은 구십년을 허송세월하며 세패로 나뉘어 있느냐, 매체를 하나로 합치고 발행부수를 십분지일로 줄이고 인력을 반으로 줄여도 되지 않느냐고 물어도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한다면 그 주장엔 아무런 논거도 없고 단지 그들을 싫어하는 감정만 실려있을 뿐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야권연대를 물어뜯는 그들의 사설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다.
근 십년동안 진보진영에선 “조중동이 싫어하는 일이 진보다”라는 잘못된 조류조차 있었다. 이를테면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를 비판하다가 그것이 성사되자 “조중동이 비판했으므로 적들에게 위협을 줬으니 맞는 밀이다”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물론 그런 이들 중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 등에 조중동이 찬성했음을 말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비논리적이고 황당한 견해가 나오는 까닭은 자신들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란 것을 ‘조중동’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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