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심지어 그것이 불효가 될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모든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사랑의 치명상을 주기를 노리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헌데 조선총잡이라는 서부극스러운 제목의 드라마에서 간만에 가슴 저미는 사랑을 겪고 있다. 이준기와 남상미, 그들의 처음은 시대적 배경이 조선이라는 사실을 잊었나 싶을 정도로 빠른 신세대의 사랑을 보였다.
그러나 풋풋한 사랑은 깊이 빠질 새도 없이 시대에 의해 이별을 강요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만났으나 만난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이가 맞은데 아니라고 하니 수인은 죽을 맛이다. 그러나 그렇게 답답한 편이 차라리 나았다. 윤강의 방에서 나침반을 발견하고, 연하의 탈출 이야기를 듣고는 왜 윤강이 하세가와 한조여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 후 수인은 더 아프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못하는 수인은 몰랐을 때보다 더 힘겹다.
그러고 보니 윤강 역시 정체를 숨기고 남원땅을 밟은 이도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 비극적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킨 주인공이 윤강 자신이 아니라 고종이라는 사실이 달랐지만 춘향전의 결말과 꼭 닮았다. 사실 우리 고전이라서가 아니라 춘향전은 정말 뛰어난 연애소설이 아니던가. 그것을 이토록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조선총잡이에서 발견한 춘향전 오마쥬는 대단히 기쁜 일이었다.
복선 이야기가 나온 김에 또 하나의 의심(?)스러운 전개가 이어졌다. 바로 윤강의 원수이자 숙적인 최원신(유오성)에게 생긴 변화다. 수구파의 핵심인 김좌영으로부터 모멸감을 받은 최원신은 살기를 품은 표정을 지었다. 당장은 권력에 맞서 싸우겠다는 각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섬뜩한 표정은 어떤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으로 읽어도 충분했다.
물론 이것은 스포일러도 아니고, 추측도 아닌 바람일 뿐이다. 이준기는 또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면서 희열을 얻는다는 말을 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자신의 정신과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가면서 느낀 결말이라면 충분히 개연성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이준기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자신도 결말을 모른다는 것이지만 이것이 작가와의 이심전심이 통한 것이라면 아주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과연 어떨지 결말까지 긴장해야 할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