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가 끝나고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병력에 막혀 "비켜서지 않으면 밤을 새우겠다"며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미디어스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가 24일 7시 30분 서울광장(시청광장)에서 열렸다. 안산에서 시작된 세월호 유가족들의 1박2일 100리 발걸음은 국회와 서울역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은 시민들의 추모물결로 발 딛을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세월호 참사 추모 음악회에서 김병권 위원장은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0일”이라며 “호소도 하고 걷기도 하고, 차가운 바닥에서 자기도 했다”며 지난 100일의 고난을 되짚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특별법에 대해 국회는 여전히 수사권과 기소권 여부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법 제정 약속 지키라”

김병권 위원장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며 “가족들의 뜻을 반영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한 대통령의 약속을 지킬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까지 천만 서명은 계속될 것이고 광화문 광장과 국회도 계속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의 모습ⓒ미디어스
그러나 김병권 위원장은 ‘단식’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종교인 등 사회 원로분들께서 함께 할테니 단식을 중단하라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가족들과 시민들의 뜻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도록 행동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서울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은 이 같은 김 위원장의 발언에 박수로 화답했다.

그리고 광장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비교적 씩씩했던 유가족들마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대에는 도종환 시인의 시 <엄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의 모습ⓒ미디어스

<엄마>
-도종환-

엄마!
내 목소리 들려요?
나는 엄마가 보이는데, 엄마도 내가 보여요?
엄마, 나 이제 여기를 떠나요.
너무 놀랐고, 너무 무서웠고, 순간순간 너무 견디기 힘들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를 소리쳐 불렀어요. 내가 이렇게 사고를 당한 것 때문에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봐 미안했어요. 아빠한테도요.
내가 아직 따뜻한 몸을 가지고 있던 그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나며 엄마를 생각했어요. 매일 잠에서 나를 건져내던 엄마의 목소리. 내 어깨를 흔들던 엄마 손의 보드라운 감촉, 매일 듣는 엄마의 달콤한 꾸지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던 봄바람, 내 살에 와 닿던 바람의 천 자락, 냉이 국이 끓는 소리, 햄이 프라이팬 밑에서 익어가던 소리, 계란이 노랗게 몸을 바꾸는 냄새, 그리고 부엌에서 들리는 딸그락 소리, 그것들이 아직 생생하게 제 몸에 남아 있어요.

엄마,
엄마가 그동안 나 때문에 너무 울어서, 나 엄마가 흘리는 눈물 속에 있었어요.
엄마의 눈물 속에 섞여서 엄마 얼굴을 만지고, 엄마의 볼에 내 볼을 부비고, 엄마의 손등에 떨어져 엄마 살갗에 스미곤 했어요.
나도 엄마를 떠나기 싫었어요. 이제 내 영혼은 더 이상 지상에 머물지 못하고 엄마 곁을 떠나야 해요. 그러나 자주 엄마의 눈물 속에 섞여서 엄마 곁으로 돌아오곤 할게요.
엄마가 나를 잊지 못하듯, 나도 엄마를 잊을 수 없어요.
내 영혼의 나이는 이제 열여덟. 언제나 열여덟일 거예요. 세월이 흐르고 엄마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많은 엄마가 되어도, 나는 열여덟 살로 있을 거예요. 언제나 엄마의 아들, 엄마의 딸로 있을 거예요.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고마웠어요.

우리는 결국 꽃 피는 사월의 제주에 가지 못했어요. 어느 생에 다시 몸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때도 유채꽃 노랗게 핀 사월이면 좋겠어요. 제주로 가는 푸른 바다가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다림의 끝이 환하게 터지는 웃음이면 좋겠어요. 성산 일출봉이, 올레길이, 수선화가 그때도 저와 제 친구들을 기다려주면 좋겠어요.
같은 배를 탄 어른들이 정직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믿을 수 있고,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때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어 있길 소망해요.

엄마 이렇게 떠나야 해서 정말 미안해요.
바다에서 몸을 잃어, 몸은 여기 없지만 엄마가 기도할 때마다 엄마 곁으로 올게요. 엄마 눈물 속에 눈물로 돌아오곤 할게요. 사월 아침 창가에 새벽바람으로 섞여오곤 할게요. 교정의 나무들이 새잎을 낼 때면 연둣빛으로 올게요. 남쪽 바다의 파도처럼 엄마에게 밀려오곤 할게요. 엄마가 팽목항으로 오시는 날이면 나도 빨간 등대 옆에 바닷바람으로 먼저 와 있을게요.
엄마 이렇게 떠나지만 나도 매일매일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의 소리, 엄마의 향기, 엄마의 그늘 옆에 있고 싶어요.
내가 얼마나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지 엄마가 더 잘 알잖아요.
엄마! 보고 싶은 엄마!
엄마라는 말은 안녕이라는 말이기도 해요.
그래서 안녕이란 말 대신 내 마지막 인사는 엄마에요.

엄마!

유가족들은 <엄마>의 한 구절 한 구절마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울음은 차라리 ‘통곡’에 가까웠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아이들이 끝까지 외쳤을 한 마디. 광장에 앉은 유가족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한 마디. “엄마”였다.

▲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의 모습ⓒ미디어스
▲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의 모습ⓒ미디어스
이승환, “국가는 ‘오늘만 넘기면 돼’라고 생각할 수도”

그 숙연해진 무대에 가수 이승환 씨가 올라왔다. 이승환 씨는 이날 무대에서 <가족>, <세월이 가면>,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그야말로 열창했다. 이승환 씨는 “(우리는)불쌍한 국민들”이라며 음악회에 참석했던 모든 이의 마음에 울림을 보탰다.

이승환 씨는 “심심한 말로 추모의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는)어느 순간부터 불쌍한 국민들이 되었고, 불쌍한 국민이 됐다는 것을 너무 알아 차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승환 씨는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고 혹은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 무심함과 무능을 알아차려버렸다”며 “국가가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아서 서글프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국가라고 불리는 부분은 ‘오늘만 넘기면 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국가는) ‘다시는 이렇게 안 모일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며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이승환 씨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밥을 먹고 지치지 않고 즐겁게 모여서 세월호 참사를 끝까지 잊지 앉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함께 힘내자는 의미로 <물어본다>라는 경쾌한 음악을 선사했다.

▲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에서 이승환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미디어스
세월호 추모 음악회는 그렇게 밤 10시 30분에 끝났다. 그리건 마지막 행진코스 광화문 광장을 향했다. 이미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은 청와대 앞에 있던 시각이었다. 하지만 유가족의 행진은 다시 경찰병력에 막혔다. 세월호 참사 100일, 약속했던 특별법 제정은 지키지 않으면서 정부는 또 다시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기’를 원했다. 가족들은 “청와대로 못 가게 하면 이곳에서 밤을 새울 것”이라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맞섰다. 힘겹게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나가고 있다.

▲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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