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권력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밝히기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300여명의 탑승객들이 말 그대로 수장됐다. 온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봤다. 많은 사람들은 해경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곧 구조될 것’이라고 믿었고, 유가족들 역시 ‘전원구조’라는 보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구조자는 없었다. 온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본 명백한 '인재'였다. 끊이지 않는 추모행렬 속에서 누구나 세월호 참사가 이후 대한민국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참사 100일이 지나도록 한국사회는 말 그대로 별 일 없이 돌아간다.
“당신이라면 보상금과 자식을 바꾸겠습니까?”
24일 오후4시 세월호특별법이 멈춰져 있는 국회를 지나 유가족들은 다시 발걸음을 서울역으로 옮겼다. 광명에서부터 함께 했던 국회의원들과 KBS, MBC, SBS 주요 언론사들의 카메라도 빠진 채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었지만 유가족들은 가슴과 등에 아이들의 이름을 새기고, 달고 걷고 또 걸었다.
유가족들은 “당신이라면 보상금과 자식을 바꾸겠습니까?”라고 정면으로 물었다. 유가족들 주위에는 함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와 반대로 언젠가부터 사회는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100리 도보행진을 하면서 유가족들이 가장 반가워 한 건, “잊지 않겠습니다”, “힘내세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돼야 합니다”라는 시민들의 인사 한마디였다.
그만큼 유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오후 5시, 한 시간 가량을 걸어 마포대교를 건너자 시민들은 입에 호루라기를 불며 유가족들을 맞아주었다. 이들은 유가족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유가족들을 응원했다. 호루라기를 불던 한 여학생은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참던 울음을 터뜨렸고, 함께 있던 학생이 그를 위로하기도 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울시민이 마중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흘린 땀이 <안전한 나라>와 <민주주의>의 결실을 맺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_한 어르신이 들고 있던 피켓
유가족들을 맞이한 시민들 “잊지 않겠습니다” 응원
건너편 도로에서는 신호에 선 차량에서 창문을 내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손을 흔들며 응원했고, 서울역으로 가는 육교에서는 시민들이 ‘진상규명특별법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 유가족들에게 힘을 주었다. 이 같은 모습에 유가족들 역시 손짓으로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가족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시민들의 관심이었다.
5시 30분 다시 서울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서울역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삼보일배단과 만나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김병권 위원장은 기자들을 향해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 반성 좀 합시다”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진행된 결의대회에서 박래군 국민대책위 공동대책위원장은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새누리당은 조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는 전례가 있었는가?”라고 되물었다.
박래군 공동대책위원장은 또한 “법과 사회체계 근간을 흔든다고 반대하고 있는데, 과연 사회체계를 흔드는 이들은 누구이냐”면서 “검찰을 믿을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린 굳이 이 같은 특별법을 만들자고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 유가족들과 함께 끝까지 광화문까지 가자”고 독려했다. 그렇게 유가족들의 발걸음은 다시 시청광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