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연예계에는 3대 에너자이저가 있다. 이경영, 이보영, 그리고 바로 진세연이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좔좔 흘러나오는 수돗물처럼 이른바 틀면 나오는 아리수 같은 세 사람.

이경영은 작년과 재작년 필자가 인상 깊게 본 한국 영화의 목록을 대부분 다 차지하고 있어 경악스러웠던 배우다. 이보영은 정말 사이보그가 아닌가 싶을 만큼 쉴 새도 없이 많은 작품을 연달아 찍어댔었다.

한국 드라마 현장이 워낙 척박해서 연기력 이상으로 배우의 체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라 조금의 텀도 없이 작품을 갈아 치우는 이보영은 365일 돌려도 끄떡없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 인간 에너자이저라고 불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보영을 지겨워하지 않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연기력이 좋은 배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내 딸 서영이’에서 그녀는 서늘하고 섬세하며 내면에 상처를 가진 비밀의 여인 서영이를 입체적으로 소화해 큰 호평을 받았다.

전작 ‘적도의 남자’에서부터 시청자의 눈도장을 찍은 배우 이보영의 존재감은 비약적으로 성장해 2013년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배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이후 차기작 ‘신의 선물’은 딱히 홍보를 하지 않아도 출연진이 이보영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청자의 기대감을 자극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토록 쉬지 않고 연달아 작품을 찍어대면서도 지겨움이 아닌, 매번 새 작품의 소식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되는 건 오로지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였다.

최근 드라마 ‘닥터 이방인’을 끝낸 배우 진세연의 인터뷰가 네티즌의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그녀는 작품을 마치고 지난 논란을 회고하며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2014년 3월, 드라마 ‘감격시대’와 ‘닥터 이방인’의 촬영이 겹치면서 생긴 겹치기 논란에 대한 변이다.

그녀는 ‘닥터 이방인’의 촬영차 헝가리 스케줄을 소화하고 한국에 돌아왔더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를 채운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에 남겨진 무수한 메시지에 크게 당황을 했다고 한다. ‘겹치기 출연이라니……’ “이야기가 안 된 거였어요?”라고 오히려 되물었다는 진세연은 이미 다 협의된 문제가 새삼 논란이 되다니 놀랍고 속상했다며 당시의 심경을 밝힌다.

엄밀히 따져볼 때 진세연의 겹치기 출연 논란은 기존 의미의 겹치기 출연과는 좀 다르다. ‘닥터 이방인’의 첫 방송일은 2014년 5월 5일이고, ‘감격시대’의 마지막 회는 4월 3일에 방영되었다. 한마디로 두 방송의 방송 일자가 무려 한 달이라는 기간을 사이에 둔 겹치지 않는 시기였다는 말이다.

진세연의 겹치기 출연은 정확히 명명하자면 겹치기 촬영이다. 어차피 현장에서 뛰지 않는 시청자야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건 브라운관에 내비추지 않는다면 사연을 알 겨를이 없고 안다고 해도 딱히 참견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세연 겹치기 출연이 그토록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 배우에게 가진 대중의 석연치 않은 찜찜함과 지겨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예능 프로 ‘나 혼자 산다’에서 제2의 전성기를 얻게 된 배우 김광규가 오래전 영화 ‘친구’에서 한 말이 새삼스레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말은 신인의 승승장구가 석연치 않은 대중의 의문을 한마디로 응축해서 쓰인다. 오죽하면 노다메의 최종 확정 여배우는 진세연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이 다 나올까.

경험도 인지도도 없이 툭 하고 떨어진 신인이 느닷없이 안방극장의 모든 출연 리스트를 독차지하며 활개를 친다. 차라리 자다 일어나보니 남자 신데렐라가 되어있었던 차인표 신화처럼 시청자 모두가 함께 지켜본 명확한 증거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시청자는 도무지 이 사람이 가진 커리어의 배경, 전개를 모르겠는데 데면데면하게 큰 존재감 없이 작품 몇 개의 주연 배우가 되어 활약하는 이들은 심지어 매력도 없고 가장 중요한 연기력 또한 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보며 묻는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하고.

진세연은 이미 겹치기 출연 논란 이전에 오랜 연기력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던 배우다. 시청자는 특출 난 매력도 재능도 없는 이 배우가 느닷없이 짠! 하고 나타나 각종 드라마의 여주인공 역할을 독차지한다는 사실이 영 꺼림칙하고 못마땅한 것이다. 진세연은 발랄하게 “그래도 제가 봤던 기사나 시청자 반응 가운데에는 센 내용은 없었어요. 있었다면 저도 뭔가 확 느끼는 게 있지 않았을까요?”라고 회답한다.

진세연을 상심하게 하는 센 댓글이 없었기 때문인지 ‘닥터 이방인’ 내내 그녀는 아쉬운 연기력으로 시청자를 시험했다. 완성도 또한 그리 높지 않은 드라마였기 때문에 대본의 부실한 개연성만큼이나 신경을 돋우는 진세연의 연기에 시청자는 염증을 느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나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그저 남주인공 이종석을 찬양하게 하는 증거였을 뿐.

사실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던 ‘겹치기 출연 논란’은 정확히 말하자면 진세연의 부족한 연기 그럼에도 갖는 무수한 기회를 향한 대중의 불만을 방증한 것이다. 물론 연예계 3대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젊은 배우가 많은 작품의 경험을 갖지 않고 몸을 사리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연기력과 매력이 없는 배우가 갖는 무수한 기회와 다작의 경험은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비리로 재인식된다. 더불어 좋은 작품을 이 배우 하나 때문에 피해가야 하거나 억지로 시청해야 하는 것 또한 시청자의 기회를 뺏는 고문이다. 진세연이 출연할 기회를 하나 가질 때 시청자는 기회를 하나 잃게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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