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떠도는 말에 비해 유독 체감 지수의 편차가 큰 것 중에 하나가 이른바 '명절 경기'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 가정 경제의 당당한 주역이 아니므로 차례상은 받아(!) 먹으면 될 뿐이요, 간간히 누군가 건네주는 선물 세트를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면 그럭저럭 깔끔하게 '기브&테이크'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이 사회는 4인 가족 기준의 가장들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요, 아들, 형제, 며느리 다 모여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아침 댓바람부터 분주함을 떨어야 하는 가족들만을 위한 나라도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명절을 그저 그렇고 그런, 많이 성가시고 다소 못 마땅한 '빨간 날'로 쉬어가고 있다.

이렇게 고향이 없는, 살갑게 모일 가족이 많지 않은 그저 그렇고 그런 이들이라고 해서 추석이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휴 이브(달력의 빨간 행렬이 시작되기 하루 전 까만 날)를 자축하는 폭음과 오랜 만에 동네 친구들 모여 여유로운 수다와 함께 때때로 살벌하게 공을 굴리는 노름(!)의 쾌락으로 후딱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재미가 바로, 리모컨을 학대하는 즐거움이다. 명절은 일 년에 딱 두 번뿐이다. 이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할 뭔가. 바로 특선영화, 특집 기획, 특별 편성이다.

세월은 하수상하고 유난히 짧기까지 하여 더없이 마음이 허한 올 추석이지만, TV만은 결코 을씨년스럽지 않을 것이다. 장담한다. 당신만의 당신을 위한 내 멋대로 뽑은 <TV, 추석을 부탁해> 이다.

▲ CSI 마이애미

특집 드라마 없으면, 드라마 데이 보면 되고.

이번 추석 편성의 특징적인 것 중에 하나가 추석을 겨냥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드라마가 없다는 점이다. 아마도 토, 일에 걸쳐 있어서 그랬지 싶고 사실, 명절 특집 드라마의 경우 시청률이 환영할 만한 수준이 못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은 없다. 케이블 TV가 볼만하다.

OCN은 9월 12일~14일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CSI>데이’를 편성했다. <CSI 뉴욕> 시즌 4 중 13~21회, 13~17회, <CSI 마이애미> 시즌 6 중 13~21회, <CSI 라스베이거스> 시즌 8 중 13~17회 및 각 시리즈의 베스트와 에피소드를 연속 방송한다.

채널 CGV는 9월 13일~15일 낮 12시에 <터미네이터 2.5>를 보여준다. <터미네이터> 2편과 3편 사이의 사건을 그린 <터미네이터 2.5>를 3일 동안 3편씩 연속 방송하는 것이다.

XTM 9월 14일 ‘<로스트> 데이’를 편성했다. ‘<로스트> 시즌 1~3 완전분석’과 <로스트> 시즌 4 전편을 연속 방송한단다. 화제만발 '미드'에 관한 당신의 이해력을 한 차원 달리할 절호의 찬스이다.

상업성, 대중성 아니 영화는 작품성이다.

▲ '시티즌 독' 포스터
만연한 다운로드와 영화 관람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따라, 이젠 누구도 TV에서 틀어주는 명절 특선 영화를 기다리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선 영화는 얻어걸리는 맛이 있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올 추석 특선 영화 편성을 정리하자면 MBC는 대중성에 주력한 모습이다. 굵직한 두 편의 영화가 눈에 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미션임파서블3>(12일 밤 9시 40분)과 비교적 최신작인 김명민, 손예진 주연의 <무방비도시>를 방영한다.

SBS는 역시 상업방송다운 편성을 했다. <바르게살자>(13일 밤 11시 20분), <배트맨비긴즈>(14일 오전 1시), <마파도2>(14일 밤 11시 20분), <매트릭스2>(15일 오전 1시), <식객>(15일 밤 9시 40분)까지 가히 오락의 롤러코스터스러운 편성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편성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건 KBS이다. KBS의 선택은 대중성이고 영화가 만연한 시대에도 잘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보는 희소성으로 만개한 편성이다.

KBS는 추석특집 독립영화관과 아시아영화관을 편성하여 <아스라이>(KBS1, 14일 밤 0시 50분), <말할 수 없는 비밀>(KBS1, 14일 밤 11시 40분), <시티즌 독>(KBS1, 15일 밤 12시)을 띠 편성했다. <아스라이>는 인디포럼 2007 폐막작으로 선정됐던 수작이다. 주변부 청춘들의 어쩔 수 없는 패배와 나아감에 대한 기록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대만 최고의 스타 주걸륜이 연출하고 직접 출연한 영화로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아름다운 배경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시티즌 독>은 태국 영화인데, 제 17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평론가들이 수여하는 ‘남토시코’상을 수상하였고, 부산국제영화제와 CJ아시아인디영화제의 전회 매진 기록을 세웠던 영화이다.

허파 디비지는 유쾌한 추석 즐기소서

이 밖에도 일일이 다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각종 예능 특집들이 상투성과 화제성 사이의 줄타기로 당신의 허파를 자극할 것이다. 이번 추석 편성 역시 당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의 편성이다. 낮에는 주로 재방송들이 저녁 시간에는 오락이 9시에는 변함없이 뉴스가 그리고 시청률이 괜찮은 드라마는 살아남고, 심야 시간에는 영화가 배치되어 있다. 익숙한 배치의 뷔페, 그 만찬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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