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이하여 대부분의 언론들이 “100일 동안 변한 게 없다”고 지적했지만 <조선일보>만 ‘변화’를 얘기했다. <조선일보>는 시민들의 의식이 자발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것은 더 이상 정권의 책임을 묻기 싫어하는 보수진영의 알리바이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이한 1면 편집에서 몇몇 언론은 제목에서부터 변화가 없는 답답함을 언급했다. 24일자 <경향신문> 1면은 <세월호 100일, 달라진게 없다>는 탑 기사를 올렸고 <한국일보> 역시 <세월호 100일… 국가개조 한발도 못나갔다>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도 <한국의 시간은 4월16일에 머물고 있다>란 제목으로 “대한민국의 시간이 2014년 4월16일 이전과 이후, 즉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구분돼야 한다는 것은 국민적 합의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의 시계는 어디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4월16일에서 한 눈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24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 24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보수언론의 기조 역시 사설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세월호 100일, 할 일은 안 하고 소리만 요란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대(大)참사 직후, 사회 각계각층은 세월호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 100일간 우리가 뭘 했나 돌아보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사회 전반의 안전불감증 역시 나아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역시 <세월호 100일, 대한민국은 과연 안전해졌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달라질 가능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이 든다(...) 본보 기자가 전문가와 함께 동승해 점검해본 연안 여객선의 안전 실태도 이전과 그대로인 것이 적지 않았다. 화물차량의 고박은 여전히 부실했다”라고 비판했다.
오로지 <조선일보>만이 남달랐다. <조선일보>는 1면과 13면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안전해졌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잘했다고 하기엔 민망했는지 업주와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1면 기사 <세월호 100일… 그들의 희생이 安全의식 깨웠다>와 13면 기사 <예전엔 “왜 우리만 安全점검?” … 이젠 “우리도 安全점검”>을 통해 참사 이후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남달라졌음을 소개했다.
일면 <조선일보>의 행태는 다른 보수언론에 비해 정치적으로 기민한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계류되는 정국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무언가가 변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조차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선박안전도 개선된 바가 없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조선일보>의 진단은 대단히 생뚱맞아 보인다.
▲ 24일자 조선일보 13면 기사
물론 <조선일보>가 말하는 바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상승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기구와 공적 영역에 대한 막대한 불신의 심화를 의미한다. <조선일보>식 ‘정신승리’에 동의한다면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굴러 떨어질 지경이다.
공적 영역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안전의식 향상’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그 뻔뻔스러움은 <조선일보>의 허술한 당파성 뿐만 아니라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인 대한민국 사회의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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