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히컵은 용맹한 아버지 스토이크처럼 남성성이 강인한 청년이 아니다. 융이 언급한 바 있는 ‘아니마’가 두드러지는 인물이랄까. 아들이 남자답게 강인하고 씩씩하기를 바라지만 차라리 히컵의 여자친구 아스트리드가 ‘아니무스’의 모습으로 표현될 정도로, 히컵은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여성성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히컵에게 있어 아니마가 발달했다는 건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머니의 얼굴을 모르고 마초적 성향이 강한 아버지만 보고 자란 터라 히컵은 자라면서 마초 기질이 충분히 발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히컵은 아버지를 닮기보다는 지금은 부재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여성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니마가 발달했을 것이다.

히컵 자신에게는 모자란 남성성은 남자 못지않게 적극적이고 용맹한 여자친구를 통해 보완됐으리라고 본다. 히컵 자신에게 결핍된 남성성이 반대로 여자친구에게는 많은지라 아니무스가 발달한 아스트리드에게 히컵이 끌렸을 가능성이 높은 게다.

이런 히컵의 여성성이 꼭 부정적인 요소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흑백논리로 사물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아버지는 대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아들 히컵이 아버지에게 드라고의 존재를 알리고자 아버지에게 대화를 요청하지만 아버지 스토이크는 부족을 위한 대소사를 해결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아들과의 대화는 뒷전으로 미루려고만 한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과 상의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히컵의 모습은, 만에 하나 그에게 남성성이 충만했다면 가능했을 일이 아니다. 아니마, 여성성이 히컵에게 발달했기에 가능한 능력이다.

<드래곤 길들이기2>는 마초 중심적인 세계관, 스토이크와 그의 아들 히컵이 바이킹과 드래곤 세계를 어떻게 현명하게 이끌어 가는가에 관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오히려 히컵의 여성성, 아니마의 능력이 마초 중심적인 사고관보다 탁월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만일 히컵이 아버지 스토이크를 붕어빵처럼 쏙 빼닮아 마초 성향이 강한 아들이었다면 히컵은 용맹했을지는 몰라도 대화의 기술이 부족함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데 있어 애를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가 마초이고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을 중요시했다면 아들의 세계관은 여성 중심적, 아니마의 가치관을 갖는다. 하지만 이런 히컵의 아니마적 기질은 결국 바이킹과 드래곤의 세계를 구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마초적인 아버지의 가치관보다 아니마적인 가치관이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다.

<드래곤 길들이기2>의 아니마 중심적인 세계관은, 앞으로 세상이 여성적인 성향이 돋보이는 아니마의 가치관을 중요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결과 중심적인 사고관,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수단시하는 가치관보다는 커뮤니케이션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여성적인 가치관이 존중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조로 말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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