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이 다 되어가는 이 즈음 경찰이 발표한, 신원이 밝혀졌다는 의문의 변사체. 설혹 변사체로 돌아온 게 유벙언이라고 해도, 그래서 검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더라도, 세월호 사태의 추이에 그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본질은 한 치도 바뀌지 않는다. 세월호는 구속된 선장과 선장들의 문제도, 공개수배된 유씨 일가의 문제도, 그리고 ‘구원파’의 문제도 애당초 아니었다. 비록 면피될 수 없는 사건의 당사자이고 책임이 큰 요소들이지만, 다수가 인식하고 주장하고 있듯이,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세월호라는 영원한 재난의 핵심은, 이익을 생명보다 중시 여기는 탐욕의 자본, 이들과 부정하게 야합한 정부부처의 책임에 있었다. 공권력을 야금야금 해체시켜버림으로써 인명구조능력 자체를 상실해버린 국가의 부정에 있다. 이 모든 현실의 근본적 조건이 되는, 사회 공공성 파괴의 주범인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상을 짚기는 커녕 진실을 은폐하고 선전으로 일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300여 목숨의 익사를 초래한 언론매체의 중대한 실패에 있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지부 이성주 위원장은 한 기자회견에서 MBC의 현 상황과 세월호 보도 관련 행태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기도 했다. (사진=미디어스)

재난보도가 가히 재난의 수준이었다고 다들 반성했다. ‘기레기’로 불리고 현장에서 쫒겨나는 게 너무나 부끄럽다고 머리 숙였다. 더 이상 그런 수모를 겪지 않기 위해 제대로 보도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장 기자들뿐만 아니었다. 보수신문들까지도 입을 모으고 나섰다. 시청자, 독자들에게 사죄했다. 오보를 연발한 데 대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데 대해 사과했다.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진실한 뉴스를 내놓겠다고 공언했으며, 세월호의 진상을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100일이 지났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가? 진상은 규명되고 있으며 진실은 구조되고 있는가? 신문과 방송은 얼마나 세월호 사태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더 이상의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해 왔는가? 진상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는 합의를 기꺼이 짊어졌으며, 국가의 책임을 고발하는 여론을 제대로 옮겼는가? 세월호 안전의 핵심인 평형수를 빼먹은 청해진, 불법 선체 개조를 일삼은 선박회사, 과적을 방임한 국가기관, 선주들과 결탁한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고발은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가?

아니다. 그러하지 않았다. 구조의 핵심 공권력들을 아웃소싱해버림으로써 사실상 구조능력을 상실해 버린 국가의 구조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수백명을 목숨을 앗아가버린 참사에 대한, 정권의 구조실패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책임있는 저널리즘 조명을 <한겨레>와 <뉴스타파> 그리고 대중들의 소셜 미디어 바깥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사태의 가장 근본적 바탕에 있는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문제, 사회 공공성 해체와 사유화 심화의 문제들을 의제로 설정하고 성찰의 주제로 제기하는 노력들은 극소수 진보매체 바깥에서 전무하다.

세월호 100일을 맞으면서 우리는 요지부동, 구제불능의 모습으로 일관하는 이 땅의 신문과 방송과 부끄럽게 마주한다. 난무한 반성의 구호, 요란한 약속의 언어들과 관계없이, 진실규명에 관한 한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하며 무책임한 미디어다. 신문과 방송은 여전히 세월호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실상을 말하지 않는다.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100일 전과 똑같다. 카메라는 여전히 세월호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며, 기자들은 현장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단순 중계하는데 그친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5월 22일 오전11시 프레스센터 앞에서 '현업 언론인 시국선언'을 가졌다. 이날 참가자들은 모두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미디어스

세월호와 관련해 이 땅의 저널리즘은 여전히 재난상태다. 사태의 진상을 자체적으로 파고드는 저널리즘의 본령이 전혀 복구되지 않았다. 탐사 취재와 추적 보도를 통해 실체를 드러내는 뉴스의 기본도 계속해서 망가진 상태다. 사건과 관련해 신문이나 방송이 새롭게 내놓은 사실, 새로이 발견한 진실이 지금까지 단 하나라도 있는가? 타당한 의문제기, 가능한 의혹제기 수준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변죽만 울린다. 하나마나한 소리로 일관한다. 표피를 뚫고 내려가지 못하고, 표면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불구의 모습이다.

여전히 ‘기레기‘의 못난 모습이다. 팽목항의 더딘 구조 상황을 가끔씩 카메라로 비추고, 공전을 거듭하는 국회를 찾아 여야의 답답한 정쟁을 중계한다. 기자회견하는 피해자 가족들의 유감을,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의 집회 모습을, 행진하는 생존자 학생들의 동정을 사이사이에 끼워넣는다. 그렇게 한가롭게 주변을 맴돈다. 이런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기레기’라고 대놓고 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한심한 기사를 내놓는 대다수 신문과 방송에 대해, 쓰레기 같지 않다고 봐줄 시청자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되자 신문과 방송은 파리떼처럼 발견 현장으로 몰려든다. 무더운 여름 얼마나 기막힌 기사감인가? 뉴스 지면과 시간은 유벙언 죽음과 관련된 온갖 미스테리로 들끓는다. 추측성 기사들, 해설들,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그 사이 세월호의 익사체는 더욱 백골화되어 간다. 공론의 장에서 더욱 밀려난다. 정확하게 세월호 초기부터 세팅된 프레임이다. 국가와 자본의 책임, 신자유주의와 공공성의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유벙언 일가, 구원파 집단은 더욱 또렷이 부각시키는 본질 전도.

▲ 지난 5월 8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KBS 김시곤 국장의 '망언'과 보도 행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KBS 앞을 찾았다. 이 항의는 결국 길환영 사장의 낙마로 이어졌다. (사진=당시 팩트TV 생중계 캡처)

현실 왜곡. 진실 은폐. 신문과 방송은 이렇게 캄캄한 심해에 거꾸로 쳐박혀 있다. 뒤집힌 자세에서 진상을 거꾸로 비춘다.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말 기관으로 전락한다. 세월호 100일의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한국호 미디어의 꼬락서니다. 재난은 이렇게 세월호 현장은 물론이고 세월호 관련 저널리즘의 현실에서도 계속된다. 국가의 선전욕망은 여전히 강고하고, 저널리즘에 대한 통제의지 또한 확고하다. 뉴스 검열과 보도 통제의 게이트키핑이 관료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구조적으로 위축된 저널리즘은 여전히 생기의 희망을 보이지 못하며, ‘기레기’는 그 존재의 무력증에서 전혀 탈피하지 못했다. 환멸과 냉소, 무기력과 무력감이 팽배하다. 세월호 진실 규명, 책임 규명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탓이다. 신문과 방송이 그 희망의 출구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까닭이다. 그게 냉정하게 세월호 100일의 현실이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도 직접 진실의 규명에 나선 교통대중들이 있어,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의 저널리즘이 있어 다행이라고 할 것인가? 세월호 100일, 과연 이 환멸의 끝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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