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가 침몰했다. 대한민국은 다수가 수학여행가는 고등학생이었던 이 배의 승객 중 300여명을 끝내 건지지 못했다. 수색작업은 한국의 언론 환경 속에서 과도하게 생중계 되었고, 수많은 국민들이 깊이 상심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까지 우려하는 상황이 왔다. 그리고 100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어찌보면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라는 것이 ‘무질서’에 가까울 지라도 그만큼 완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니 말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한국 사회가 부정적인 측면에서라도 역동성이 크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지난 100일 동안 보여준 것은 한국 사회가 국내적으로는 ‘6.25 전쟁 이후 최악의 참사’, 국외적으로는 ‘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해상사고’라고 명명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 규명에 무력하다는 것이었다. 보인 것은 사고의 피해당사자 중 일부를 끝내 정치화시키고야 마는 한국 사회 특유의 당사자운동의 동학이었을 따름이다.
▲ 안녕하지 못한 100일이 흘렀다. 100일, 남은 실종자 10명. 아직 끝나지 않은, 헤아릴 수 없는 크기의 아픔이 하루하루 늘어만 간다. 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로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여전히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이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남아있다. 오늘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국회에서 힘겨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세월호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세월호 가족 대책위 단식 농성장 앞에 세워진 노란리본과 세월호 조형물이 비를 막기 위해 비닐로 가려져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가 그토록 한국 사회의 시민들을 상심하게 한 이유는 그 사건 자체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 동안의 상황은 사회문제에 대해 무력한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라 할 만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참사에 슬퍼했던 그 시민들의 외면과 비토도 큰 몫을 했다. 우리는 결국 유가족들과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투쟁의 주체가 되어 투쟁하는 모습을 본다. 치료받아야 될 사람들이 사회를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꼴을 보고 있다. 하지만 잠깐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한국 사회는 항상 이랬다.
참사 100일 동안, 정치세력은 무능했다. 청와대와 여당만을 비판할 일도 아니다. 어떤 야권의 정치세력도 실종자 가족이 기다리던 팽목항에 내려가 사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물론 그 시점에서 그런 의지를 보이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역풍’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치세력의 존립의의를 설명할 수 있는 대응이었을까. 관성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선거 하나도 건너뛰지 못하는 그들이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 대한 대응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렇게 세월호 참사는 ‘정치권이 대의하지 않는 의제’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다른 의제와는 달리, 온 국민이 다 아는데 정치권은 나서지 않는 의제가 되었지만 말이다. 정치권은 ‘국민이 모르는 의제’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다 아는 의제’에 나서는 것도 서툴렀다. 그런 상황에서 유가족 당사자들의 의중과 대응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은 “유가족들이 보상을 바란다”는 유언비어가 큰 힘을 발휘하는 상황이 왔다.
한국 사회 특유의 ‘당사자정치’의 발현이었다. 이런 참사 속에서도 사건의 피해자와, 지극히 추상적인 ‘시민’만이 존재했다. 그 중간의 매개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당 등 정치세력은 후폭풍이 무서워 숨었다. 그리고 피해자가 나서자 그들이 특권적 위치에 선다고 비판했다. 그들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것이 한국 사회의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대응이야 뻔했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의 위원장이기도 한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등은 유가족들이 지나친 보상을 바라고 있다는 카카오톡을 시민들에게 전송했다. “유가족들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야권과 진보언론의 공식적인 대응이다.
▲ 세월호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한 시민이 벽에 기원 메시지를 적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런 대응조차도 논점이탈이다. 투쟁하는 가족대책위말고도 유가족들은 많다. 그런 이들 중에서 보상에 치중하는 이들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들이 앞다투어 만들어낸 법안들은 어쨌든 누군가의 요구를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대신 보상이란 당근을 내세워 사람들을 관리할 정도로 세련된 체제가 아니란 건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모든 얘기가 논점이탈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모든 국민에게 상처가 됐다면, 그것은 이 사건의 양상이 이 사건이 그 피해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모두에게 알렸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언제든 나도 피해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렸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한다. 또 다시 국가의 이다지도 무력한 대응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국가는 이준석 선장과 세월호 승무원, 청해진해운, 그리고 구원파와 유병원을 책임당사자로 내세운다. 그리고 이들을 잡아가두는 걸로 국가는 책임을 다했다고 우긴다. 물론 ‘유병언 변사체’ 발견에서도 보듯, 이 과정도 철저하게 국가의 무능을 보여주는 소극으로 귀결된다. 그 와중에 유가족은 지나친 보상을 바란다는 풍문이 돌고,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피해당사자 중 사태의 귀추에 의해 급진화된 일부와 그들을 조력하기 위해 결합한 소수 사회운동세력 뿐이다.
대단히 익숙하지 않은가.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정치가 작동하는, 혹은 작동하지 않는 방식이었을 따름이다. 세월호 참사 100일, 한국 사회는 그 관습적인 대응을 반복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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