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대한 환상은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기능을 줄이는 방법은 순기능을 확대하는 것이다."

11일 오후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주최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전부개정 공청회에서 김성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정보통신망법에 대한 비판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으나, 김 실장의 이날 발언은 이 법에 대한 업계의 부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11일 오후 코엑스에서 방통위 주최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 공청회가 열렸다. ⓒ정영은

김 실장은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방통위가 서비스제공사업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니터링 의무부과 조항(개정안 제124조)' 등을 예로 들며 "사업자에게 광범위한 정보들에 대해 검열하라는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면 메신저의 대화도 모니터해야 하는 것인가? 불가능하다"면서 "서비스제공사업자가 콘텐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음에도 권한을 주니 상당히 난감하다"고 밝혔다.

개정안 124조 제2항에 따르면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불법정보의 유통 방지를 위해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되는 정보에 대하여 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한다. 또 개정안 119조 제2항 및 145조 제17항에 의해 서비스제공자는 삭제요청을 받으면 즉시 삭제 등 임시조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등 벌칙이 부과된다.

미디어 및 인권 시민단체들은 지난 10일 방통위에 낸 의견서에서 이들 조항을 '최대 독소조항'으로 꼽아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문제의 조항들은 사업자들에게 이용자의 표현을 과도하게 규제하도록 해, 사적검열을 부추긴다"면서 "정부가 비판여론을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조중동 광고중단 게시물 삭제 관련 '위헌 논란'이 불거진 '방통심의위의 심의결정 및 방통위의 삭제명령권' 조항도 사법부 판단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참조 기사 : “정보통신망법, 정부 비판 통제하려는 꼼수” )

김성곤 실장은 "정부가 사업자들에게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정부차원에서 인터넷을 위한 교육을 통해 순기능을 강화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인터넷서비스제공 사업자들에게 사전검열을 할 권한을 주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정종기 방통위 네트워크기획과장이 '정보통신망 전부개정안'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정영은
이에 대해 나현준 방통위 네트워크윤리팀장은 "오늘 방청석 질문지를 보니 개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이용자들을 위축시켜서 결국 인터넷사업 활성화를 저해시키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다수인 것 같다"면서 "이번 개정안은 인터넷의 역기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측면의 법안이다. 걱정하시는 '표현의 자유 제한'은 나타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공청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 홀에는 정보통신업계 관계자 등이 자리를 가득 메워 성황을 이뤘다. 이런 분위기는 이번 방통위 개정안이 각종 인터넷 관련 규제에 따른 벌칙조항을 새로 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방청석 서면 질의 시간에도 각종 사업자 의무조항과 관련해, 명예훼손 등 손해배상 소송에서의 책임 소재 및 과실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황창근 홍익대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형사처벌 및 과태료 부과 등 벌칙조항이 너무 많다"면서 "정보통신망법은 행정법이지 형법이 아닌데 벌칙조항이 너무 많다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다. 다른 행정법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방통위의 개정안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 취지는 무색해지고 사실상 인터넷 규제를 강화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91개 시민단체는 이번 공청회의 패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날 공청회는 정종기 방통위 네트워크기획과장이 발제를 맡았고 이형규 한양대 교수의 사회로 조영훈 방통위 개인정보보호과장, 정준현 단국대 법대 교수, 이상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팀장, 정순원 통신사업자연합회 부장, 나현준 방통위 네트워크윤리팀장, 황찬근 홍익대 법대 교수, 백대용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김성곤 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 서울 YMCA 한석천 간사 등의 패널이 참석해 4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번 방통위의 정보통신망법 전부개정안은 지난 9월 1일 입법예고를 했고 법제처 심사 및 국무회의를 거쳐 11월 중 국회에 제출된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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