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결말로 날아올랐던 <드래곤 길들이기 1>

2010년에 개봉했던 <드래곤 길들이기 1>의 여파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동화의 틀을 전복시키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빚으면서 디즈니의 라이벌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던 <슈렉>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왜 드림웍스가 애니메이션에서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는지를 전 세계에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픽사를 제외한 디즈니의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시기라서 의의는 더욱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드래곤 길들이기 1>의 참신한 결말은 <슈렉>이 보여줬던 발칙한 치기를 이어받으면서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자 도박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내부에서도 우려했던 그 결말은 사실 <드래곤 길들이기 1>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습니다.

4년이 흘러 개봉하는 <드래곤 길들이기 2>를 기대하는 이유도 이 영향이 클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제게도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탄복시킬지 궁금한 걸 당연스레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바람에 비해 우리보다 먼저 개봉한 북미에서의 시원치 않은 흥행은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관객과 평단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기에 더더욱 그랬는데, 조금 전에 제 눈으로 직접 <드래곤 길들이기 2>를 보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안정성과 전형성으로 추락한 <드래곤 길들이기 2>

한마디로 말해서 <드래곤 길들이기 2>는 전편의 신선한 발상과 이야기를 버리고 전형적인 성장기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히컵이 투슬리스를 타고 벌이는 활공만큼은 상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전편과 비교하더라도 <드래곤 길들이기 2>에서의 그것은 눈에 띄게 발전하고 강화됐습니다. 이젠 혼연일체가 된 투슬리스와 히컵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관객을 창공으로 초대합니다. 심지어 둘이 하나가 되어야만 날 수 있었던 전편과 달리 히컵은 윙수트를 입고 투슬리스와 나란히 하늘을 누비기도 합니다. 둘 덕분에 다른 친구들마저 드래곤을 타게 된 버크 마을에서는 드래곤 레이스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드래곤 길들이기 2>의 세계는 더욱 커졌습니다. 히컵은 투슬리스와 함께 버크를 벗어나서 지도를 그리며 더 넓은 세상을 맘껏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간적으로 굉장히 폭을 넓혔으나 <드래곤 길들이기 2>의 이야기가 가진 시야는 매우 좁아졌습니다. 전편은 마치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 다뤘던 세계에 전하는 해법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소재만 놓고 보면 새로울 게 없지만 그걸 도입해서 엮은 이야기와 주제는 달랐습니다. 즉 소재의 진부함을 이야기의 참신함으로 넘어섰던 것입니다. 전편에서의 히컵과 투슬리스는 드래곤과 인간이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갈등과 반목에 시달리던 걸 대견하게도 극복했습니다. 평화와 공존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것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몸소 실현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둘은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서 불거진 오해와 소통의 부재가 일으킨 논리와 편견을 종식시켰습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보수적이고 안이하며 편협한 사고에 갇힌 기성세대를 신세대가 일깨우고 올바른 길로 선도한다는 정치적 관점으로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부합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물이었던 히컵이 전통과 관습에 굴종하는 대신, 용기를 갖고 도전하여 과감하게 그것을 깨뜨리고 자신의 능력과 진면목을 증명한다는 것에서도 <드래곤 길들이기 1>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꼬리 날개와 발을 각각 하나 잃으면서 불완전하고 비정상인 투슬리스와 히컵이 만나 비로소 누구 못지않은 경지에 도달했던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캐릭터를 통해서 우리는 화합과 융화의 필요성을 보았고, 이런 것들은 <드래곤 길들이기 1>이 아동만이 아닌 성인까지 사로잡은 비결입니다.

설계에 실패한 딘 데블로이스

반면에 <드래곤 길들이기 2>는 정말 의아하게도 상당히 고루하고 식상한 데다가 무성의하게도 보일 정도의 이야기로 점철됐습니다. 전편의 작가진이 사라지고 딘 데블로이스가 혼자 각본을 쓴 것으로 인한 부작용일까요? 전편과 비교할 것까지도 없고 <드래곤 길들이기 2>만 놓고 따져도 이야기의 깊이는 상당히 얕아졌습니다. 속편에 이르러 히컵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버크를 다스리는 족장을 대물림해야 하는 운명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방황합니다. 이 과정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나약한 의지에서 오는 자괴감인 동시에, 당연스레 여기던 혈통을 거부한다는 데서 <드래곤 길들이기 2>가 전편의 도전의식이나 기성세대의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것이 여기에서 멈추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2>는 히컵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성장기의 단골소재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끌어들였습니다. 이만큼 효과적인 소재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드래곤 길들이기 2>는 전편이 보여줬던 통찰력과 창의성을 상실했습니다. 비교적 이른 시점에 나타나는 어머니와의 재회는 히컵의 자신에 대한 확신과 정체성을 찾는 계기보다는, 불필요하게 과도한 가족주의를 심는 데 몰두하도록 부채질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맥락을 벗어난 듯한 가족주의의 반영은 <드래곤 길들이기 2>의 리듬을 망치고 몰입을 저해하게 만든 주범이었습니다. 끊임없는 할리우드 작품 속 가족주의라는 소재에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드래곤 길들이기 2>는 주제와의 유기적인 결합에 소홀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도출했다는 것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남편과 아들을 떠났던 사유도 설득력이 적잖이 결여됐다는 걸 보더라도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마 <드래곤 길들이기 2>의 결말이 어떨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흡사 <매트릭스>의 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히컵은 자신을 찾고 방황을 끝내면서 족장으로 등극합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드래곤 길들이기 2>에서 가장 실망스러웠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거부와 저항이 능사는 아니니 히컵이 통치자로 올라서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전편과 달리 지극히 일반적이고 얌전한 행보만을 거듭한 끝에 일어나는 형국을 수긍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드래곤 길들이기 2>는 이런 결말을 위해 이분법적인 사고로 손쉽게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맺었습니다. 히컵도 자라면서 세상의 논리를 습득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별다른 갈등 없이 악을 처단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악으로 상정한 캐릭터는 보잘것없는 수준에서 그린 탓에 관객의 이해와 동정을 삭제시켰습니다. 히컵과 투슬리스의 참된 우정을 강조한 것도 역부족에 그치면서 <드래곤 길들이기 2>를 디즈니의 대안으로 보기엔 무리가 됐습니다. 지금은 전편이 애써 다리를 놓았던 인간과 드래곤의 관계마저도 거의 일방적인 것으로 퇴색시키고 말았습니다.

★★★☆

덧 1) 전편의 결말을 의식한 듯한 장치가 있습니다만 전혀 와닿지를 않습니다. 두 가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서 거기에 엮인 심리와 해소를 공들여 묘사할 필요가 있었으나 대충 수습하고 지나갑니다.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일까요?

덧 2) 드림웍스의 작품을 북미에서 배급하는 곳이 <크루즈 패밀리>부터 파라마운트에서 20세기 폭스로 바뀌었네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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