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노회찬 정의당 후보가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의 야권연대를 공식제안했다. 노회찬 후보는 기동민 후보가 사전투표 전날인 24일까지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후보직을 사퇴하고 기동민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 7·30 재보궐 선거 '동작을'에 출마한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22일 서울 동작구 사당 3동 한 카페에서 인근 지역 초.중등 학교 학부모들과 교육 현안 등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회찬 결단, 후보 개인의 의지에서 나온 ‘배수의 진’으로 보여
노회찬 후보의 결단은 다각도의 상황을 고려한 ‘배수의 진’으로 보인다. 정의당 관계자들은 노 후보의 기자회견을 “당적 차원에서 나온 제안이 아니라 후보 개인의 의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의 전략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세 과시’라고 볼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국면에서 야권연대를 고려하지 않고 재보궐선거 전략을 짰다. 그런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정의당은 ‘교훈’과 ‘시련’을 주려했다. 2년 후 총선, 2016년 총선 때 새정치민주연합이 야권연대를 고려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은 야권연대라는 ‘덫’에 갇혀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양쪽 다 자신들이 지지율이 높을 때는 야권연대를 내세워 상대방의 사퇴를 종용하고 지지율이 낮을 때는 독자노선을 말하는 이중성을 보인다는 비난을 피하게 어렵게 되었다.
물론 후보단일화나 야권연대는 소선거구제라는 제도의 한계에서 기인한 전술이라는 측면이 있다. 상대방의 연합전술을 반칙이라고 비난하는 새누리당의 어이없는 비판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가 거듭될수록 ‘감동’의 요인이 된다기 보다는 권력분배의 협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온건진보 계열을 당내에 포섭하려는 전략 없이, 정의당은 진보정당 독자노선에 대한 고민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6년째 활동하고 있던 곳에 정의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가 출마하는 상황은 정의당이나 통진당 모두 진보정당 재편에는 큰 관심이 없고 권력분배의 협상대상인 새정치민주연합만 쳐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더라도 정의당은 협상의 대상이라도 될 수 있겠으나 통진당은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결코 협상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란 것이 주어진 현실이다.
▲ 7.30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나경원(왼쪽 부터),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통합진보당 유선희, 정의당 노회찬,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19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동양중학교에서 열린 동작구연합회장기 생활체육 배구대회에서 함께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의 기존의 그림을 수정·보완환 ‘노회찬 플랜’
그런 점에서 노회찬 후보의 판단은 기존의 정의당의 전술을 일부 이탈하고 수정하는 효력을 지닌다. 노회찬 후보는 당의 결정에 따라 해당 지역에 출마했다고 누차 밝혀왔다. 서울 동작을은 재보궐 선거에 포함된 유일한 서울 지역구이며, 여야의 거물들이 출동하는 ‘큰 판’이 되었다. 그런 곳에 정의당은 현역 의원이 아닌 이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내세운 것이다.
문제는 이 출마가 노회찬 후보 개인에게는 당선되지 못할 경우 너무 ‘손실’이 큰 선택이었다는 데에 있다. 노회찬 후보는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용산에서 동작으로 지역을 옮긴 그 2008년에 노원에 터를 잡았다. 노원에 별다른 연고는 없었지만 “저의 아버지는 노씨이며 어머니는 원씨이니 저는 노원의 아들”이라는 기가 막힌 입담으로 파고들었다. 마들연구소를 설립하고 지역에서 뿌리내리는 활동을 했다.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입장에서는, 2008년 총선의 석패와 2012년 총선의 완승의 차이를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이란 간판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야권연대의 무난한 성사와 함께 지역에서의 노력의 영향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X파일 폭로’에 대한 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의 보궐선거 때 안철수 의원이 파고들었다. 안철수 의원이 지역구를 바꿀 생각이 없다면 노회찬 후보의 자리는 사라지는 상황이 되었다. 노회찬 후보 입장으로는 안철수 의원이 대통령이라도 당선이 되어 지역구를 비워주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겠으나, 최근 안 의원의 기세는 예전같지도 않다.
지역구를 옮기는 것은 6년의 노력을 무로 되돌리는 것으로,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당의 결정과 지역구를 옮기지 않을 수도 없었던 개인의 사정이 결합되어 여기로 왔다. 서대문을이 재보궐에 포함되었자면 적어도 기존의 진보정당 후보가 있는 지역구를 피할 수는 있었을 텐데, 그것조차 안 되었다. 정의당의 입장으로는 ‘세 과시’가 2년 후를 위한 투자겠으나, 노 후보 개인의 입장으로는 낙선의 손실이 너무 큰 상황이 되었다.
▲ 7·30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21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정문 앞에서 '통신비 인하'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노회찬 정의당 후보의 결단은 ‘승부수’로 봐도 괜찮고 ‘출구전략’으로서도 나쁘지 않다. 기동민 후보가 여론조사 단일화에 동의해준다면 노회찬 후보는 여론조사 경선에서 승리하고 본선에서도 승리하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노회찬 vs 나경원’의 구도가 되면 승산이 크다고 판단할 것이다.
‘새정치 퀄리티’로 ‘노회찬 플랜’ 수용이 가능할까
반면 새정치민주연합과 기동민 후보가 결단을 못 내려 노회찬 후보가 사퇴하는 수순이 되더라도 노회찬 후보는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노회찬 후보는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퇴하더라도 기동민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단일화 실패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책임이 되고, 노회찬 후보는 야권연대의 대의를 끝까지 지킨 것이 된다. 완주하는 것에 비해선 지역구를 다시 옮기기도 수월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떤 결단을 내릴까.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동민 후보는 22일 저녁에는 노회찬 후보의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23일 아침에는 어떻게든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 차원에서 뭔가 하긴 할 것 같다”라고 전한다. 기동민 후보는 ‘담판’을 제안했고 노회찬 후보는 이것이 사실상의 사퇴종용이라며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안하고 있다.
노회찬 후보는 기존의 정의당의 전술을 넘어, 자신의 결단을 통해 동작을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고, 이를 통해 전체 재보궐 선거의 판세를 바꾸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정의당의 전술이 ‘정의당과 연대하지 않으면 망하는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노 후보는 ‘자신과 연대하면 야권이 흥하는 그림’을 보여주려고 한다.
일각에선 “동작(서울 동작을)과 수원 영통(경기 수원시정)을 연동하는 협상이 진행 중이다”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정의당 후보들 가운데 가장 경쟁력이 높은 것은 노회찬과 천호선이다. 노회찬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거의 기동민과 비등한 지지율로 1강 2중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오고, 천호선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임태희와 박광온의 승부에 캐스팅보트 정도는 될 수 있는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 정의당과 노회찬 후보의 입장으로서는 “동작을 노회찬으로 단일화하고 영통은 박광온으로 단일화하자”라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러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노회찬의 그림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런 대국적인 시선을 보여준 적이 언제 있었느냐”라고 묻는다. 그 관계자는 “기동민 공천은 현 지도부의 판단으로 알려져 있고 그것이 큰 논란을 만들었다. 선거에 패배하면 지도부가 갈리지만 그 전에 기동민이 완주를 못해도 지도부가 갈린다면, 며칠이라도 더 살려고 하는 것이 지도부의 의지일 것”이라고 힐난했다.
▲ 7·30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왼쪽)와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23일 서울 서초구 현대 HCN방송국에서 열린 동작을 재보선 후보토론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노 후보는 전날 기 후보에게 야권 단일화를 전격 제안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이 시간만 끌면 노회찬 후보는 사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그림을 그리지 않고 그런 안이한 생각이나 하는 것이 ‘새정치 퀄리티’라는 시선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실제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의당의 존립의의에 대한 의문제기도 가능해
또한 정의당과 노회찬 후보 역시 “언제부터 야권연대가 진보정당의 대의였느냐”라는 운동사회의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후보는 트위터에 “선민후당(先民後黨) 국민이 먼저이고 당은 다음입니다”라고 썼다.
이 발언은 정확히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를 사퇴하면서 “당심과 민심이 다를 경우 지도자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 심상정 의원(당시 진보신당 후보)의 발언에 포개진다.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노회찬 후보는 완주했고 심상정 의원의 선택을 만류했다. 이처럼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제1야당의 종속변수로 전락할 때, “그럴 바에야 차라리 큰 정당 내의 한 분파로서 활동해 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외부의 비판에 무슨 수로 대응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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